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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상과 허상 Oct 18. 2024

마음을 이끄는 여정(旅程)

정보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여러가지 명상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좋은 내용들이 많은 것이 좋기는 하지만, 실제 어느 것이 나에게 잘 맞고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완벽한 방법을 구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시간적으로나 효과적으로나 이것저것 모두 다 해 볼 수는 없다. 


자기성찰(省察)

마음의 어짐을 구하고 덕을 쌓는 길이 그리 달콤한 길만은 아니다. 명상을 얼마간 하다 보면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또는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된다. 굳건한 믿음 뿐 아니라 주위의 격려와 멘토와의 대화가 필요하다.

본인에게 적합한 명상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무엇을 구하는지가 확실해야 한다. 가족 관계의 개선을 원하는지,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지, 진리를 구하는지 본인의 성찰이 첫째이다.

명상의 원리에 기본을 둔 마음 다스리기와 마음 비우기에 대한 내용을 멘토와 함께 나누며, 자신에게 잘 맞을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한다. 마음 비우기는 오랜 수련이 필요하지만, 순간의 마음 다스리기 수양과 병행할 수 있다. 마음의 수양 방식은 필요에 따라 본인에게 적합하게 조정할 수 있으며, 멘토와의 의견 교환이 중요하다.


여정(旅程)의 동반자

진행 경과 모니토링은 마음 다스리기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진도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자꾸 다른 쪽을 보게 된다. 가장 효과적인 모니토링은 본인이 직접 경과를 모니토링 할 때 이루어진다. 이때 진행상황에 대해서 멘토와의 의견 교환이 중요하다. 

멘토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일 수도 있고, 반려자일 수도, 친한 친구일 수도, 경험 있는 선배나 후배일 수도 있다. 멘토는 듣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같이 느껴주는 사람이다. 


멘토의 역할

멘토(mentor) 라는 단어가 낮 선 단어이면서도, 웬 지 부담 없고, 삶에 대한 지혜를 배우고, 마음의 어려움을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에 호감이 가는 단어이다. 


멘토 이야기

멘토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어려운 결정을 앞둔 어느 나라의 수상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늦은 밤시간에 자신의 멘토를 찾아간다. 멘토는 그 수상이 찾아온 이유를 알지만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다. 멘토는 차 한 잔 하겠느냐고 물었고, 수상은 사양한다. 멘토는 늘 즐기던 피아노로 그를 안내하여 피아노 곡을 연주한다. 수상은 옆 자리에 앉아 피아노 악보를 넘겨준다. 30분쯤 지나서 멘토가 더 머물겠냐고 물어보고, 수상은 괜찮다고 사양하고 집을 나선다. 추후 수상은 그 집을 나설 때 자신의 마음이 고요하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덕성(德性)의 개입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을 기독교에서는 영성(靈性)을 이야기한다. 불성(佛性)과 영성(靈性)이 본래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본성이라고 한다면 덕성(德性)은 가꾸고 일구어서 얻는 마음의 덕이다. 덕성은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덕성을 이해하고 덕(德)을 갖추어 덕을 행할 수 있으면 의로운 인간관계가 이루어진다. 

덕성의 개입은 의로운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도록 덕성을 기르며, 힘들고 지친 마음이 본래의 마음상태로 되돌아가도록 도와주는 마음 비우기의 여정이다. 덕성의 개입은 마음챙김 명상, 참선, 단전호흡, 타이치, 요가 등의 방법을 이용하며, 수행 방식에 있어 호흡이나 집중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벗어나 영원한 현재의 순간을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수련한다.


덕성(德性)의 안내자

덕성(德性)을 가꾸고 기르는 마음의 수양은 인간 관계, 특히 가족 관계의 어려움을 지혜롭게 이겨 나가도록 인도한다. 이러한 마음 수양의 안내자인 멘토는 어려움을 지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듣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듣는 마음은 어려움을 듣고 어려움을 같이 느껴주는 마음이다. 충고나 조언은 듣는 마음을 어지럽힐 뿐이다. 본인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멘토의 기본 역할이다. 어려움을 가진 본인과 멘토가 하나되어 느낄 때가 멘토 역할의 시작이다.

듣는 마음은 지혜로운 마음이다. 이스라엘 다윗왕으로부터 12살의 어린 나이에 형들을 제치고 왕권을 물려받은 솔로몬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 한밤중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으시는 주님께 듣는 마음을 간청한다. [참고: 열왕기 상권 3:5,9]

듣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듣는 마음은 성령칠은(聖靈七恩)의 배려하는 은사와 함께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참는 마음을 가지고 구할 때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듣는 마음의 능력을 받을 수 있다.


영성(靈性)의 개입

영성(靈性)의 개입은 덕성(德性)을 기르며 마음을 열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이끌어 주는 마음 비우기의 여정이다. 복잡한 인간 관계에서 감정 폭발 등으로 쌓인 마음의 상처와 분노 등이 심해진 경우, 평소에 잘하던 명상이 더 이상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실제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본인의 의지와 훈련으로 이룰 수 없는 상황이 많이 있다. 우리는 종종 인간의 한계를 넘어 갈 수 있는 영성의 도움이 필요하다.

영성의 개입이나 덕성의 개입 등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다. 갈구하는 마음으로 끊임없는 수련이 필요하다. 영성의 개입의 수련은 감사와 찬미 속에서 드리는 묵주기도, 성가, 선행 등 많은 방법이 있다. 영성의 개입은 우리가 우리의 한계에 달할 때, 즉 도저히 더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느낄 때, 마음의 짐을 주님께 맡기고 감사하는 생활을 할 때 주님의 응답이 이루어진다. 


영혼의 세계

시간과 공간의 굴레 속에 있는 물질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내면의 세계가 있다. 이 내면의 세계에는 정신 세계, 사유와 명상의 세계, 마음의 세계, 무념무상의 세계, 초월의 세계, 영혼의 세계 등 다양한 차원이 존재한다. 내면의 세계는 주관적이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한다.

영혼의 세계에는 영성이 있고, 영성의 본질은 영혼이며, 인간은 영혼의 개체이다. 영혼은 그 자체로 존재하며, 영원하고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는다. 영혼은 정신과 마음을 일컫는 스피릿(spirit)의 원점이며, 스피릿은 영혼의 원점을 중심으로 마치 나무의 결처럼 자라며 영혼의 세계를 이룬다. 영혼의 세계는 영원하며,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이다.


현존하는 하늘나라

하느님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지식으로 이해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계시는 하늘나라를 선포하신다. 하늘나라는 구름위에도 마음속에도 있다고 한다. 어린아이에게는 구름위의 세계가 하늘나라이고, 젊은이들에게는 마음속의 세계가 하늘나라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예수님 계시는 곳이 하늘나라이다. 예수님이 마음속에 있으면 그 곳이 하늘나라이고, 예수님이 가난한 이웃과 함께 계시면 그 이웃이 하늘나라이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계시면 우리 마음이 하늘나라이지만,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은 마음일 뿐 하늘나라는 아니다.


빈마음

마태 28:1-8, 마르 16:1-8, 누가 24:1 -12, 요한 20:1-10에서 증거하는 예수님의 빈 무덤은 예수님 부활의 상징으로, 이 세상과 하늘나라의 연결 고리이다. 마찬 가지로 빈 마음은 삶의 불안, 걱정, 근심, 고통 등의 고뇌가 평화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우리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실제 마음을 비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우리가 마음을 비웠다고 하더라도 빈 마음으로 매일의 생활을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비워진 마음은 옛 마음으로 다시 채워 지기 마련이다. 빈 마음속에 좋은 마음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자연 현상에 비유한다면 물리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공명 상자 튜닝포크(아래 그림)와 비슷한다. 공명 상자가 비어 있을 때 하나의 소리 굽쇠 튜닝 포크에서 나오는 소리는 옆에 놓여 있는 다른 공명 상자의 소리 굽쇠를 울려서 같은 주파수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이 실험에서 중요한 사실은 공명 상자가 비어 있어야 공명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소리 굽쇠 튜닝 포크에서 나오는 소리를 좋은 마음이라고 할 때, 비어 있는 옆의 상자로 좋은 마음이 전달된다.

    

기쁨의 삶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문제없는 삶은 없다. 문제없는 삶은 죽은 삶 뿐이다. 길가의 나무도 숲 속의 짐승에게도 날씨 먹이 등 삶의 문제가 항상 따르게 된다. 실제로 문제는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진짜 문제이다.

힘들고 가슴 아픈 어려운 문제를 지혜와 슬기와 용기로 이겨 나갈 때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마치 죽음의 수렁에서 허물을 벗고 탈바꿈하여 새로 태어나는 생명의 힘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쁨의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얻어야 하는 것이다. 공부를 할 때는 학습 의욕이, 일을 할 때는 동기 부여가 있어야 하듯이, 기쁨의 삶은 이를 추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생명의 힘을 일구어 우리를 진정한 기쁨의 삶으로 인도한다.


영성명상의 예

영성명상은 수행 방법에 있어 일반 명상과 유사하지만, 그 목적에서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화살기도

화살기도는 시간에 구애 없이 하느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순간 순간 느껴지는 간절한 소망을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화살과 같이 방향성을 지닌 화살기도는 시간을 다투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특히 고통받는 이웃을 위하여, 엄습해 오는 불안, 초조, 또는 마음이 끓어오를 때 자신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느님, 저의 어머님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지극히 거룩한 예수 성심이여, 저의 마음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등이 있다.

화살기도는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기도이기도 한다. 사탄의 유혹은 뱀의 형태로 인류의 시작과 함께한다. 이러한 사탄은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 나타난다. 사탄은 마치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보며 기회를 노리듯이 호시탐탐(虎視眈眈) 생각의 사슬로 우리의 마음을 묶으려고 유혹한다. 이러한 사슬의 유혹의 생길 때마다 그때 그때,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탄아, 물러가라' [마태 4:10] 라는 화살기도를 바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마태 10:4] 에서의 말씀처럼 발의 먼지를 '탁탁' 털어버리는 화살기도를 바칠 수도 있다. 또한 세례 성사와 세례 서약 갱신 때 '여러분은 마귀를 끊어 버립니까?'의 질문에 서약한 '끊어 버립니다' 역시 강력한 화살기도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성호의 기도도 좋은 화살기도이다. 우리의 생할 속에는 말이 이루어 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어, 멀리 떠나는 자녀가 보이지 시야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난 바로 직후의 순간, 수술실로 옮겨가는 친구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바로 보는 순간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순간에 긋는 성호의 화살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고 편안하도록 도와준다. 

살면서 어이없고 기막히는 경우를 당할 때가 있다. 억울하고 분한 경우도 있고, 배신당하는 때도 있다. 너무 힘들어 잠도 이루지 못하도 터져 오르는 가슴을 누르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역부족이다. 우리를 괴롭히고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이러한 경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우리의 삶 속에는 이러한 어려운 경우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혼자의 힘으로 이겨 나가기에는 쉽지 않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 아이들이 무섭거나 공포에 질릴 때 울며 뛰어 도망가면서 외치는 소리가 '엄마'이다. 슬픔과 괴로움에서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모든 눈물을 '엄마'처럼 성모님께서 받아 주신다. 단지 한 말씀 '성모님' '도와주세요'를 반복하는 화살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화를 준다.

화살기도는 하느님과 대화의 통로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드리는 짧은 찬미(讚美)와 감사(感謝)의 화살 기도는 우리의 삶을 감사의 삶으로 승화시키며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도와준다. 예를 들어 '찬미 예수님, 오늘 하루도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등이 있다.


성가기도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가는 두배의 기도'라고 고백한다. 성가가 우리의 마음 속에서부터 울려 나올 때, 우리의 마음 속에 계시는 성령이 역사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한다. 

마음의 평화를 주는 성령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내시어 그들에게 불어넣어 주신 성령이다. 요한 복음서 20장 19-23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신 후 그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면서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묵주기도

도미니코(1170-1221) 수도회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묵주기도는 중세기를 거치면서 그 형식을 갖추게 되는 묵주기도는 복음에 바탕을 두고, 그리스도의 갱생, 수난, 영광, 복음을 묵상하는 기도이다. 묵주기도는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으로 구성하여,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묵주알에 따라 반복하며 환희, 고통, 영광, 빛의 다섯 가지 신비를 묵상한다.


렉티오 디비나 (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

십자가의 요한(John of the Cross, 1542-1591)은 3세기의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184-253)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렉티오 디비나 수련 방식을 소개하였다. 렉티오 디비나의 4단계는 독서(Lectio), 묵상 혹은 명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상(Contemplatio) 이며, 이는 베네딕트회 수도회의 영적 수행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묵상 (Christian Meditation)

베네딕트회 수사 존 메인(John Main, 1926-1982)은 1955년 말레이시아에서 일할 때 힌두교의 가르침에 친숙해 졌다. 그후 그는 4세기경 유럽의 수도원 전통, 이집트 사막 수도자들의 수행을 익힌 요한 카시아누스(360-435)의 가르침, 그리고 힌두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1974년 영국의 런던에서 '그리스도교 묵상'을 시작했다. 지금은 로렌스 프리먼(Laurence Freeman)이라는 베네딕트회 수사의 지도 아래 120여개의 나라 사람들이 이 수련 방식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묵상은 '마라나타 (아라메아어: 오소서, 주님 예수님Come Lord Jesus의 뜻)'를 만트라로 사용하면서 내면의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과 애착, 그리고 모든 근심과 걱정, 억눌림, 두려움 등에서 벗어나 주님의 현존을 발견하는 묵상기도 방식이다.


 그리스도교 묵상의 방법

1.    편안한 자세로 자리에 앉아서

2.    몸을 바로 세우고 

3.    눈을 지그시 감고 

4.    조용히 거룩한 단어 만트라 '마라나타'를 마음으로 가져와서

5.    '마라나타' 단어를 4개의 음절로 나누어 천천히 반복하기 시작

6.    호흡은 자연스럽게 하면서, 음절은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서 천천히, 확실히, 부드럽게, 조심스레, 단순하게 반복하며

7.    단순함이 명상의 기본임을 알아 같은 단어를 항상 사용하고

8.    단어를 반복할 때는 소리를 듣되 형상을 그리지 말고

9.    모든 생각과 형상과 단어들을 버리고, 마음에 생각이 생길 때마다 단어의 음절을 반복하여 말하고, 산만해짐을 알아 차릴 때는 바로 다시 거룩한 단어로 돌아가 반복하고 

10. 매일 아침과 저녁에 20분에서 30분씩 반복한다. 그러나 몸에 배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며 명상 모임의 참여를 권장한다.



맺음말

과학과 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지구촌 문화를 형성하고, 현대 사회의 변화하는 모습은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옛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사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는 어려움도 따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가족제도 등을 이끌어 가던 전통 문화는 복합 또는 혼합 문화주의와 만나고, 어느 사이에 부모와 자녀의 세대 차이를 마음의 갈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하는 한국의 현대 정신문화는 네(4)개의 기둥이 뒷받침하고 있다. 이 네 개의 기둥은 전통 문화를 이루는 유불선(儒佛仙) 3교와 20세기에 들어서 새로운 정신문화를 이끄는 기독교(基督敎), 즉 기유불선(基儒佛仙) 4교의 기본 사상이다. 크게 볼 때, 불교는 마음, 기독교는 영혼, 도교와 유교는 정신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었다. 이러한 4교의 기본 사상이 우리의 마음 속으로 들어올 때 혼돈스러운 점도 있지만, 고기와 나물 등을 한 솥에 넣고 푹 끌여 국물을 내어 온 식구들이 다 같이 먹는 곰탕, 설렁탕, 갈비탕, 삼계탕 등 탕(湯)의 음식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복합 사상을 소화시키기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복합사상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마음의 멋과 맛을 가꾸는 '마음 다스리기'와 '마음 비우기'를 통한 마음의 수행법이 문화와 세대 차이에서 생기는 마음의 갈등을 이기고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굳게 유지하는데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땅에서 매어지고 풀어지는 인간 관계는 하느님과의 관계와 연결된다. [참고: 마태 16:19] 우리의 주변에는 인간 관계, 특히 자녀와의 바람직한 관계를 이루기 의해서 전문가 상담, 명상법 등 여러가지 방식이 제시되고 있고, 혼자의 힘으로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우리의 전통 문화에 바탕을 둔 마음의 수양을을 보다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안내자 또는 멘토의 도움이 필요하다. 멘토는 본인의 경험과 여러가지 명상법에 대한 지식을 적절히 활용하여 마음의 수행법이 우리의 생활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해주고 우리의 마음을 이끄는 여정의 동반자이다.

끝으로 본 글의 내용은 방대한 정신문화를 빙산이라 할 때 그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부족하고 미비한 점이 많음을 알면서도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실상과 허상'의 조화라는 시각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글을 정리했으며, 본 글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 특히 자녀관계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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