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꽃을 만지던 아이, 흙을 만나는 길로
나는 원래 꽃을 만지던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예술을 꿈꿨던 것도 아니고, 도자기를 하겠다고 결심했던 것도 아니다.
그 시작은, 솔직히 좀 어이없기도 하다.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약간 여장부 스타일이셨다.
단단하고 똑 부러지고, 남 앞에서 절대 기죽지 않는 성격.
내 성격이 할머니를 많이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보니, 나처럼 센 성격을 가진 아이를 바라보는 게 그리 편하지만은 않을 때도 있었다.
아마 우리 할머니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할머니는 나에게 좀 더 여성스럽고, 정적이고, 고운 취미를 가지라고 하셨다.
그게 바로 ‘꽃꽂이’였다.
할머니가 떠올렸던 건 아마도 선 하나하나의 여백과 흐름이 중요했던 동양꽃꽂이였을 것이다.
꽃꽂이 학원을 알아보라고 하셨지만, 내가 알아본 건 유러피안 스타일의 화려한 꽃꽂이였다.
게다가 알아본 학원은 자격증도 준비하고, 기능경기대회에도 나가고, 거대한 작품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조형예술로서의 꽃이었다.
중학생의 어린아이였던 나는 몇 년간 꽃을 배우며 당시로선 꽤 규모 있는 학원에서 정식으로 커리큘럼을 배우고, 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은 다 해봤다.
그 시절의 나는 꽃을 만지며 형태와 감정을 연결하는 방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감정의 선을 읽고, 공간과 움직임을 이해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진로를 준비할 시점이 오자, 내 앞에 놓인 건 원예과뿐이었다.
내가 하던 ‘화훼’와는 전혀 다른 종목. 식물을 키우고 관리하는 일로써의 진로뿐이었다.
그 길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미술을 시작했다. 조금은 돌고 돌아서라도, 내가 하던 것과 감각이 맞닿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
공예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공예과만 골라 원서를 넣었고, 그중에서도 흙을 만지는 ‘도예’를 전공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꽃에서 흙으로 건너왔다.
도예과에 들어간 나는, 또 한 명의 ‘할머니 같은 존재’를 만나게 된다.
딱딱하고 무서웠지만, 한편으론 너무도 강렬하게 존경스러운, 실력으로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른 교수님들.
그들은 내가 어릴 때부터 봐온 ‘단단하고 강한 존재’들과 닮아 있었지만,
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를 압도했다.
나는 도예의 매력에 아주 빠르게 빠져들었다.
물레 앞에 앉은 교수님의 손놀림은 마치 춤을 추듯 자연스러웠다.
무심하고 담백한 몸짓인데, 그 속엔 수십 년의 시간이 녹아 있었다.
그 모습은 퍼포먼스처럼 보였다. 아무 말도 없지만, 그 움직임 자체가 언어였고 감정이었다.
또 한 교수님은 사다리에 올라 자신의 키보다 큰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흙을 올리고 내리고, 마르고 덧붙이며 사람의 한계를 넘는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인간이 아닌, 어떤 의지 그 자체처럼 보였다.
또 다른 교수님은 엄청나게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을 했다.
흙이라는, 모든 흔적을 기억하는 재료에 단 하나의 떨림도 없이
자신의 감정을 밀어 넣듯 조심스럽게 빚어갔다.
그 손끝엔 언어로는 담을 수 없는 감정이 있었다.
그 시절 도예과는 전통도자, 조형도자, 산업도자 셋으로 명확히 나뉘었고,
나는 그 각각의 세계가 주는 로망에 매번 새로운 눈이 떠졌다.
선배들은 여리여리한 외모와 달리 커다란 항아리를 번쩍 들고,
조금의 티만 생겨도 “이건 B급”이라며 망설임 없이 부숴버리곤 했다.
그 모습은 진짜 ‘장인’ 같았고, 두렵기도, 부럽기도 했다.
그 속에서 나는 열심히 따라가고 싶었다.
진심으로 잘하고 싶었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뜨거운 선망과 함께 지쳐 있었다.
기술의 세계는 끝이 없었고, 완성도는 한없이 높은 기준으로만 다가왔다.
나에겐 ‘왜 이걸 하고 싶은지’가 중요했지만, 그 물음은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용히 내 안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 흙 앞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일까?’
‘완성보다 진심이 더 중요한 나의 방식은, 틀린 걸까?’
그 질문은 아직도 내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때 그 시절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분들을 존경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고 싶었던 그때의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