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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가족사진 17화

우리 집으로 가자

by 김종열

‘우리 집’이라는 노래가 있다. 아무도 모르게 우리 집으로 가자는 젊은 친구들의 사랑 노래인데, 어쩌다 한 번 흘려들었던 그 노래의 ‘우리 집으로 가자’라는 소절이 귀에 착 감긴다. 그래서 가끔 흥얼거린다. ♬우리 집으로 가자♪


기억으로 남는 것과, 남지 않는 것과의 차이는, 그 기억에 부여하는 의미의 차이일까? 아니면 좋았거나 혹은 힘들었거나의 강도 차이일까? 첫사랑의 추억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고, 군대의 기억이 오래가는 걸 보면 의미의 부여일 수도 있고, 사건의 강렬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건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렇게 저렇게 남은 기억의 조각들은 ‘우리 집으로 가자’라고 하여 우리 집에서 일어 난 일이거나. 다른 누군가의 우리 집에서 있었던 일들이니, 삶의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잡다함과 세세한 삶의 흔적을 보이는 그 사소함이 어쩌면 큰 의미일 수도 있겠다 싶다.


커서 무엇이 될래?라고 물으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통령이 되겠다던 동갑내기가 있었다. 집도 이웃하고 있어서 무람없이 네 집 내 집을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 그 집에서 보았던 정말 맛있어 보이던 노란 수수밥의 정말 맛없음의 기억.


컴컴하게 내려앉은 무거운 구름이 하루 종일 추적추적 비를 내리던 날, 키 작은 봉창 하나인 어두운 골방에 둘러앉아 노래자랑을 하고 무슨 무슨 동요를 함께 불렀던 어린 기억.


군불로 뜨끈뜨끈한 사랑방. 이불속에 발을 넣고 둘러앉아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할 거라고, 무엇이 될 거라고, 손에 잡히지 않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희망을 얘기하던 소년의 기억.


‘우리 집으로 가자’든 친구의 크고 넓은 기와집에 두런거렸던, 또 다른 친구네의 정갈함에 움츠렸던 학생의 기억도 있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크지도 정갈하지도 않지만 뭐 어때하고 ‘우리 집으로 가자’도 했다. 어머니는 바쁜 틈에도 라면을 끓여 자식의 친구를 대접했고, 아버지는 자식의 친구가 왔는데 라면이 뭐냐고 호통이었다. 꽤 긴 세월이 흐른 후, 우연히 만난 친구가 그때 그 라면을 얘기할 때, 아! 이런 사소함이 기억으로 남는구나, 싶기도 했고.


늦은 밤, ‘우리 집으로 가자’로 아내를 당황스럽게 한 젊은 날의 취기와 치기도 종종 있었는데, 그때 함께 한 사람들은 그때의 라면과 그때의 술상을 지금껏 얘기한다. 사소함의 기억은 길기도 길다.

계모임도 집에서, 집안 모임도 집에서 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과거엔 그랬었다. 그러나 이젠 ‘식사는 식당에서, 차는 카페에서’의 세상이 되어 누군가의 우리 집을 방문하는 일이 없어져 버렸다. 우리 집의 사소함이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아 아름다운 추억이 될지라도 어쩌겠는가? 세월의 흐름대로 살아야지.

최근에 집 근처에서 지인들과 식사하고, 우리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우리 집에 가자’를 하였다. 이 방 저 방과 부엌을 둘러보고, 베란다의 화분 품평을 하고, 다과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함께했다. 카페보다 조금 더 화기애애한 것 같은, 이전보다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건 혼자만의 느낌이려나?

어쨌건,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고, 초청하는 건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마음을 여는 행위 아니겠나? 그래서이겠지? 가끔 이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건. ♪우리 집으로 가자♬


샤갈-꽃이 있는 인테리어.jpg 샤갈-꽃이 있는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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