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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가족사진 18화

살아가는 건,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여정

by 김종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직장에서 물러나는 일 또는 직업을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다. 생계의 문제일 수도 있겠고, 생계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넘쳐나는 시간의 처리 문제와, 맺어왔던 인간관계의 변동도 적잖이 혼돈을 준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이라고 서두를 쓴 건, 나 역시 그랬다는 것이고…. 그러나 또,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은 그 상황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낸다.


신기하게도 시간의 처리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무엇이 되었건 시간을 보낼 거리를 찾아낸다는 거다.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는 건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이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맞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인간관계는 이전보다 더 폭넓을 수도 있고 깊을 수도 있다. 직업에 매이지 않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니 넓어질 테고, 뜻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니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유가 생긴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건강도 챙기고자 운동 동호회에 가입하였다. 아는 사람도 있고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다. 아는 사람은 알아서 편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은 새로워서 좋다. 나이가 조금 많은 분은 푸근해서 좋고, 조금 젊은 사람은 젊은 만큼의 활력이 좋다. 이런 경력을 가진 분은 이래서 좋고, 저런 직업을 가졌던 사람은 저래서 좋다. 뭐지! 이 열린 마음은? ……. 아마 이런 것 아닐까? 비즈니스라는 장막을 걷어내 버린, 좋아하는 걸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동질감 같은 거.


차를 준비해온다. 이런저런 군것질거리도 등장한다. 손이 많이 가는 먹을거리를 가져오기도 한다. 텃밭의 푸성귀도 나누고 살아온 세월의 얘기도 나눈다. ‘카더라’ 방송으로 활발한 정보교환을 하더니 ‘좋다카는’ 물건을 공동구매 하기도 한다. 그렇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건 좋은 일이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


살아가는 건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싶다.

고무신을 구겨 만든 자동차로 흙 놀이하던, 무엇에 쓰려고 그렇게 열심이었는지 모를 딱지 따먹기를 함께하던, 보자기 망토에 나무 칼로 정의의 사도가 되었던, 여름엔 물놀이를 겨울엔 썰매를 달리던 어릴 적 친구도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었고.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의 희망을 나누던, 우정을 변치 말자던, 누군가를 향한 연정을 수줍게 털어놓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 달린 친구들도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이라는 걸 시작한다. 이끌어 주는 사람이 있다. 밀어주는 사람도 있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사람이 생긴다.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하는 사람도 만난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있다. 만나면 즐거운 사람이 있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타고 지나온 여행길의 후반부에 늦게 만난 좋은 사람들도 있다.


물론, 살다 보면 싫은 사람도 있다. 나와 맞지 않아서 불편한 사람도 있고, 가끔은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의 수보다 싫은 사람의 수가 현저히 적고, 또 좋은 사람들 얘기하는데 굳이 등장할 이유도 없으니 논외로 하자.


좋은 사람이 언제까지나 좋은 사람일 수도 없다. 사람 사이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갈등의 정도가 강하지 않고, 그 내용이 치사하지 않고, 관계에 윤활유가 되는 건강한 것이라면 언제나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집을 나선다. 좋은 사람을 만나러.


Antoine Blanchard-Porte St. Denis, Winter.jpg Antoine Blanchard-Porte St. Denis,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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