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회전목마의 데드히트에 수록된 구토 1979의 스케치 인터뷰를 인용하여 소설형식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나는 여자와 자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친구의 애인이나 아내와 자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섹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도덕적 해이라던가 윤리적 배반이라는 수사와는 터무니없이 거리가 먼 것이다. 일종의 놀이.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수반하는 유희. 그 유희를 통한 친밀감 형성. 따분한 일상으로부터의 짜릿한 일탈로 귀결되는 아찔한 여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이런 식의 섹스를 선호한다고 이야기하면 두 가지의 반응을 보인다. 첫 번째는 이건 미친놈인가?라는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우는 인간이 있고 두 번째는 남의 여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논리적인 이해를 이끌어내는지 궁금해하는 인간이 있다. 도덕적 우월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다른 화제로 돌린다. 그들도 딱히 듣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아마 속으로는 자신도 한 번쯤은 겪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마음의 문에 노크를 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내면에 숨어있는 추악함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더러운 추악함을 애써 숨겨야만이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밀려나지 않는다는 걸 그들 역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억눌러야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그들을 나는 가엾게 바라볼 뿐이다.
여자에게 논리적 이해를 구하는 방법을 궁금해하는 이들은 그래도 솔직한 편이다. 난 솔직한 이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알려줄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결국 그녀들은 대부분 이 행위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그녀들의 남편이나 애인은 즉 내 친구들은 나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고 나보다 머리가 좋으며 나보다 잘생겼고 나보다 페니스가 클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에겐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그녀들은 상대가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성실하고 적당한 이해심을 가졌으면 그걸로 오케이다.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애인이니 부부니 하는 어떤 정적인 틀을 넘어 동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된다. 물론 표면적인 동기를 앞세울 때도 있다. 예를 들면 남편이 바람피운 것에 대한 보복이라던지, 길게 이어지고 있는 관계가 권태롭다던지, 자신이 여전히 남편 아닌 다른 남자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는 자기만족 등이 있다. 이런 걸 재능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녀들의 얼굴만 봐도 대충 알 수 있다. 논리적 이해나 여자를 다루는 노하우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들의 눈빛과 내뱉는 호흡에서 맡게 되는 냄새가 나를 이끄는 것이다. 나는 친구가 샤워하는 사이, 술을 사러 잠깐 나가는 사이, 업무적인 통화를 해야 하는 사이, 심지어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초대했을 때에는 그가 담배를 피우러 1층에 내려갔다 오는 사이에도 그의 아내와 섹스를 했다.
얼마 전에는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위스키를 마셨는데 술꾼들의 거대한 위장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고 집에 있는 술이 모두 동이 나는 바람에 친구가 편의점에 가서 사 오겠다며 잠시 나갔다. 나는 친구가 잠시 나간 사이에 그녀와 짧은 섹스를 했다. 옷을 거의 입은 채로 되도록 빨리 끝냈다. 요새 섹스는 좀 길고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편인데, 반대로 서둘러서 짧게 끝내면 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관점만 바꿔도 동일한 행위에서 색다른 재미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친구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나는 그녀의 볼에 키스했다. 그녀는 처음에 약간 놀란 듯이 쳐다봤지만 내가 입술에 키스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녀의 롱스커트 안으로 내 손이 들어가는 순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들키면 어떡해요."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팬티를 내리며 말했다.
"이건 단순한 섹스잖아요. 들키지만 않으면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일은 없어요."
그녀는 겁이 나서 물어본 게 아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안도감을. 난 여전히 매력 있는 여자다라는 무언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 물어본 것이다. 나는 그 질문에 적합하게 대답을 했고 그녀는 내 대답에 만족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생각보다 너무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