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구약의 폭력

“죄인은 모두 죽여라?”

by 신밧드

구약성경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건 폭력의 규칙이다.
하나님은 명령하고, 인간은 복종한다.
복종은 곧 축복이고, 불복종은 곧 죽음이다.

이 단순한 공식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도구였고,
동시에 수많은 죽음을 정당화하는 장치였다.

그 시절엔 천국도, 지옥도 없었다.
하늘의 보상과 영원한 형벌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던 시대,
신의 심판은 지금-여기, 이 땅에서 집행되었다.
거룩은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실의 질서였고,
그 질서를 지키는 방법은 폭력이었다.


십계명의 얼굴과 그 이면

십계명은 흔히 인류 최초의 보편 윤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분위기는 다르다.

“너는 다른 신들을 네 앞에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너는 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이건 종교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조항이다.
그리고 그 계명을 어기면?
답은 명확하다. 죽음.

우리는 살인이나 도둑질 같은 사회적 범죄만 생각한다.
그러나 구약의 범주는 훨씬 넓었다.
안식일을 어기거나, 부모에게 불손하게 굴거나,
심지어 우상을 만든 것조차 살인과 같은 ‘살인죄’였다.
악과 부정, 그리고 단순한 금기를
모두 같은 무게로 묶어 버린 것이다.


“돌로 치라”의 사회

성경을 읽다 보면 “돌로 치라”는 구절이 쉼 없이 등장한다.
안식일에 장작을 모은 사람은? 돌로 치라.
간통한 여인은? 돌로 치라.
부모를 욕한 아들은? 돌로 치라.

살인은 어느 시대에나 중죄였으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를 욕했다고 아들을 죽여야 할까?
사춘기 때 부모 말 잘 듣는 아이가 세상에 어디 있나.

이 법은 자비로 다스리지 않았다.
법은 공포로 사람을 길들였다.
하늘이 열리지 않은 시대,
공포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통치였다.


정결과 부정, 그리고 악

구약성경은 세상을 정결과 부정으로 나눴다.
정결한 것은 신에게 속하고,
부정한 것은 죽음으로 몰아야 했다.

살인은 정결을 더럽히고,
간통은 가정을 더럽히며,
돼지고기를 먹는 일은 몸을 더럽혔다.

그 결과, 도덕적 악과 단순한 금기가
모두 같은 ‘죽음형’으로 묶였다.
부정을 저지른 자는 곧 악인이 되고,
악인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했다.

정결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은 곧 사회의 붕괴였다.
그래서 구약의 폭력은 잔혹이 아니라 질서 유지의 기술이었다.
신앙은 도덕의 언어이기 전에 치안의 언어였다.


오늘날이라면

오늘 이런 법이 시행된다면 어떻게 될까?
안식일에 일했다고 사람을 죽이고,
부모를 욕했다고 아이를 죽인다면,
우리는 그것을 종교적 테러라 부를 것이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그것이
신이 직접 내린 거룩한 법이었다.
공동체는 그 법에 복종함으로써
자신들이 **‘선민’**임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그 법에 희생된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은 ‘거룩’이라는 이름으로 덮였다.


나의 질문

나는 어릴 적 교회에서 이런 구절을 들을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부모에게 불순종하면 돌로 치라.”
그렇다면 나는 이미 수없이 죽었어야 했다.

하지만 교회는 이 구절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땐 그랬다.”
“구약은 율법이고, 지금은 은혜다.”
그렇게 넘어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이 책을 거룩하다 믿었고,
그 법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단순히
‘옛날이야기’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결론

구약성경은 신앙의 뿌리이자, 거룩한 율법서로 숭배받는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폭력의 규칙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 독을 삼키는 셈이다.

독은 언제나 달콤한 술을 닮았다.
질서라는 이름으로, 정의라는 외양으로,
거룩의 향기로 입에 들어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퍼져 나간다.

하늘이 아직 닫혀 있던 시대,
신의 정의는 피로 증명되었다.
이제 그 피의 기록을 따라가며
‘거룩’의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의 얼굴을 들여다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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