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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 Apr 12. 2023

MBTI가 뭐예요?

훗, 난 통찰력 있는 선지자, 인프제라고요.

‘mbti가 뭐예요?’

지금은 그 열기가 좀 식었지만 한때 누군가를 만나기만 하면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었다.


전 세계 70억 인구를 고작 16가지로 분류해? 그냥 혈액형의 상위호환일 뿐이잖아. 이런 유사과학에 심취할 만큼 내가 어리숙하지 않지. 하지만 재밌을 거 같으니까 찍먹 해볼까? 라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mbti가 전 세계의 1.5% 미만 극소수의 귀하디 귀한 infj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역시 난 유니크한 사람이었어. 하고 좋아했고, 어디 가서 mbti를 물어보면 훗, 전 인프제라고요. 처음 봤죠? 으스대었다. 내가 mbti에 가스라이팅 당하게 된 서사는 대략 이러하다.


과거 mbti의 조상님이었던 혈액형이 유행하던 시절, 난 내가 A형이라는 게 약간 컴플렉스였다. 아니 뭐만 하면 A형은 소심하다며 날 쫌팽이 취급하는데, 많은 A형들은 아마 공감할 것이다. 여기서 내가 억울한 맘에 항의하면,


'ㅉㅉ.. 역시 A형은 소심하다니깐.'


하면서 날 연민하고, 내가 관대하게


‘훗, 누구나 소심한 구석이 있죠.’ 하면

‘거봐, 본인 인정. A형 소심한 거 맞잖아.’


이러는 통에 난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소심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거다. 우쒸.


사실 나의 컴플렉스는 A형이 아니라 소심함이었을 것이다. 나야 늘 담대하고 대범한 사람이고 싶지만 난 곧잘 타인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속으로 흔들릴 때가 많았다. 눈치 보는 것과 배려하는 것을 구분하기 힘들었고,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절묘한 마이웨이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사람들과 모여 농담 따먹기나 하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쾌활하게 웃고 떠들던 한 동료를 보다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색함을 느꼈다. 분명히 얼굴은 꺄르르 박장대소하고 있는데 눈은 슬픈 것이다. 코와 입을 가리고 눈만 쳐다보면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눈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동료에게 휴대용 티슈를 주고 일어섰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혼자 남은 동료는 남몰래 펑펑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었을까. 알 수 없다. 나의 소심함이 거기까지 다가가진 못했으나 그 이후로 그 동료는 줄곧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옆에서 힘을 보태주었다.


누구에게나 남에게 쉬이 내색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그걸 남들에 비해 빨리 캐치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남의 눈치를 보는 나의 소심함이 타인의 기색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섬세함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남들보다 소심한 내가 남들보다 섬세한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글을 쓰다 보면 장점과 단점, 그리고 매력은 다른 언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가진 장점이 모든 상황에서 어김없이 장점일 수는 없다. 단점 또한 그렇다. 어떤 순간에서는 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한다. 장점만이 매력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정말 반사회적인 치명적인 단점이 아니라면, 단점이 매력이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일상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나의 단점과 닮은 누군가를 보며 동질감을 느낄 수도, 응원하게 될 수도, 어쩌면 사랑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나의 소심함이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매력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난 나의 소심함을 예뻐해 주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소심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난 캐릭터를 만들 때 가끔 mbti를 정해 본다. mbti는 혈액형보다 세분화되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각 성향에 대한 설명이 꽤 자세하고, mbti를 즐기는 사람들의 증언들도 워낙 생생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mbti를 정하면서 장점과 단점을 하나씩 모아 본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렴. 주문을 외우면서.


주인공은 인프제로 해야지. 고럼 고럼. 하면서 인프제 팩폭이라는 글을 봤는데 상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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