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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초이 Madame Choi Dec 03. 2021

Ep8. 걸어가는데 자꾸 책이 말을 걸어온다.

<호치민 책방골목 산책>

 달달하고 포근하고 향긋한 책 냄새...

여러분들도 좋아하실 거라 생각한다.

호치민의 어느 골목엔 이 향기로 가득한 곳이 있다. 바로 '호치민 책방골목'.


1군의 우체국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범상치 않은 곳이 있다.

푸르르고 무성한 타마린드 가로수길을 쭈욱 따라 개성이 가득한 서점들이 늘어서 있다.

서점들이 단층 건물들로 가로수보다 낮게 지어져 가로수 푸른 잎 때문에 마치 거대한 나무 터널에 들어온 듯하다.

나는 그 싱그러움들 사이로 지나가 본다.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자꾸 책들이 말을 걸어온다.

새책도 있고, 중고책도 있고, 베트남 국내 서적들도 있고, 외국 서적들도 있다. 마치 보물창고 같다.

각자 다른 이야기, 각자 다른 신비함, 각자가 다른 향기들을 뽐내며 멈춰 서서 얘기 좀 나누자 한다.

그럼 또 나는 마음이 약해져 걸음을 멈춰 서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마음먹어 본다.

그런데 좀 곤란하다... 베트남어다..... 하하하하하하

듣고 싶은데... 들어줄 수가 없다.

책 표지에서부터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너무너무 궁금한데 이 베트남어 까막눈은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책을 한참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내가 들어 볼 만한 이야기들을 찾아본다.

일단 가로수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냥 뭔가 포근하고 싱그럽다.

아이들이 웃으며 날리는 비눗방울이 타마린드 가로수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반사시켜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 무지개 빛 비눗방울 사이로는 아이들 책이 보인다. 베트남어 동화책, 영어 동화책, 귀엽고 앙증맞은 스티커북들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들이 있다.

 

베트남전 여성 전쟁영웅 초상화와 업적을 기록해 놓은 전시

 거리의 한가운데에는 항상 전시회가 열린다. 베트남의 아름다움을 담은 사진이나 예쁜 그림들이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그 또한 이 골목의 매력이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작품들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걸어가다 보면 발에 무언가가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그 정체는 바로 타마린드 열매. 생김새가 꼭 커다란 땅콩 같기도 하고 응가를 닮은 것도 같은 그 열매는 우리가 밟으면 바스락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는데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우리를 넘어지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또 몇 걸음 걷는데 커피 향기보다 더 그윽하고 솜사탕보다 포근하고 달콤한 향기에 두리번거려본다.

그곳엔 노천카페도 있었고 솜사탕 파는 아저씨도 계셨지만 분명히 커피 향기와 솜사탕 냄새는 아니었다.

나는 그 향기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걸어본다. 점점 그 향기가 더 풍성해진다.

그 향기가 내 주변 모든 공기를 감싸길래 걸음을 멈춰보니 역시! 그곳엔 오래된 고서적을 파는 고서점이 있다. 그 책을 소중히 읽었을 누군가의 손때와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책 표지를 넘겨보면 황금빛으로 바랜 책장들이 이젠 바스러질 듯이 되어 또 다른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커피도, 와인도 빈티지가 주는 특별한 그윽함이 있듯이 고서적도 마찬가지다. 난 그 살짝 찌꺼분함을 그윽함이라 부르겠다. 그리고 그 달달한 냄새를 너무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고서점

그곳에서 한참을 머무르다 어느새 새까매진 내 손을 보며 살며시 웃음이 난다.

그리고 딸을 위해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한 권을 샀다. 누군가의 마음에서, 두 손에서 소중히 읽혔을 그 책을 우리 딸 또한 소중히 읽어 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이제 반대편으로 한 바퀴를 돌아본다.

초록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시지만 새로 시작되는 이 길에 대한 설렘으로 마음이 더욱 부시다.

첫 번째로 나를 반기는 건 중고 요리 책들이다. 소문난 요리 똥 손인 나는 요리는 못하지만 요리책 보는 것은 너무나도 좋아한다. 그 그림과 사진들만 봐도 그 요리들을 이미 내가 다 먹은 듯 황홀해지고 배가 불러오는 듯하다.

그리고 예쁜 꽃들로 가득한 화보집과, 인테리어 서적들... 그냥 마구 설렌다.

나는 거기 멈춰 서서 눈 호강을 실컷 하고 간다.

책방 골목과 그 입구의 예쁜 언니의 향초가게

그렇게 마치 연애하는 기분으로 마냥 설레고 달달하게 혼자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한 바퀴 돌아 다시 골목의 입구에 다다랐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누군가 그랬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책방 골목이 시작되는 지점, 에펠탑을 건설한 귀스타프 에펠이 지은  아주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레몬색의 호치민 중앙 우체국의 옆 자락에 초록색의 예쁜 프랑스풍의 너무 귀여운 작은 부스가 있는데 그곳엔 예쁜 언니야가 언니의 미소를 닮은 귀여운 엽서들과 향초를 팔고 있었다. 레몬그라스 향이 가득한 향초에 기분이 상큼해진다.


 이렇게 책방 골목 산책은 끝이 난다. 하지만 고서적의 그윽한 향기와 레몬그라스 향은 아직도 머릿속에 영롱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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