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에 필요한 개인주의
"그렇게 많이 먹으니까 살이 찌지."
생각만 해도 열받는 말이다. 화면 속의 먹방 유튜버들은 엄청나게 먹는데도 날씬하다. 대식가라는 모 가수는 부모님이 엄청나게 음식을 해줘도 깔끔하게 먹어치우지만 날씬하고 잘생겼다. 억울하다. 물론 나도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많이 먹지만, 저 정도로 먹지 않는데 왜 저들보다 뚱뚱할까. 오늘도 많이 먹는다고 면박주는 가족과 주변인들한테 울컥 화가 나지만, 뚱뚱한 나는 이미 죄인이기 때문에 반박하지 못한다.
탄수화물은 1g당 4kcal라고 한다. 지방은 9kcal, 단백질은 4kcal. 먹은 칼로리에 비해 소모한 칼로리가 적으면 살이 찐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나는 억울해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같은 것을 먹는다고 같은 똥을 싸진 않는다. 우리의 성격이 다르고, 외모가 다른 것처럼, 우리의 내장기관도 다르고, 소화기관 내벽의 흡수율, 몸속에 머무르는 시간, 에너지를 소모하는 방식, 그 모든 것들이 다르다. 과학에서 말하는 에너지 대사는 평균적인 계산치이며, 그것은 인구통계학적인 규모의 집단을 대상으로는 맞을지언정, 개인의 특성을 반영하진 않는다.
로션 하나를 사더라도, 나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 지성이니 건성이니 수부지니 하면서 많은 것들을 따지고 피부의 특성을 고려하는 게 요즘이다. 위상학적으로 볼 때, 우리의 피부와 소화기관의 내벽은 같은 면에 존재하는, 신체 내부와 외부의 경계면이다. 음식물에서 잘게 분해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소화기관의 내벽을 통해 흡수하는 정도는, 피부 타입보다 더 많은 경우의 수로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누군가는 100을 먹고 10만 흡수할 수도 있고, 20을 먹었는데 15를 흡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흡수한 영양소를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 또한 사람의 얼굴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모두가 다를게 분명하다.
정말 단순하게 생각해 봐도, 우리가 동일한 음식을 먹을 때 소화기관의 흡수 타입, 영양소별 시간당 흡수율, 소화기관에 머무르는 시간, 소화기관의 길이, 소화 효소의 배출량, 장내 미생물의 분포 등 너무나 많은 요소들로 인해 몸에서 흡수하는 칼로리는 달라진다. 흡수된 칼로리가 체온을 유지하고, 호흡을 하고, 활동을 하고, 저장되는 비율 또한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우리 모두는 다른 조건, 다른 구조의 바이오 기관이고, 동일한 투입이 동일한 출력을 보이는 기계식 엔진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뚱뚱한 사람이 단순히 많이 먹고 안 움직여서 살이 쪘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편견은 대부분 무지와 게으름에서 온다.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최대한 단순화하고,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저 사람이 어떤 구조적인 차이로, 생화학적인 시스템으로, 경제적인 이유로, 사회학적 이유로 살이 쪘을지 다방면으로 고려하지 않고, 저 사람은 많이 먹고 안 움직여서, 게으르고 탐욕스러워서 살이 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다고 만나는 상대마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사정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현재 저 사람일 뿐이고, 속사정에 대해서는 아무리 내가 이해하려 한다 한들, 알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가 개인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의 출발점이다. 잘 모르는데, 알고 싶지도 않으면, 신경을 끄면 된다. 본인이 가진 잣대로는, 본인 스스로만 판단하면 된다. 어떤 사람이 가진 직선형 자로 곡선을 잴 수 없고, 삼각형으로 원을 측정할 수 없다. 어차피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함부로 판단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MZ라면서 세대적 특성을 규정하는 것에 젊은 세대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성세대는 젊은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대하려 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권위적으로 변하면서, 상대방을 규격화하고, 집단적 특성으로 판단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취한다. 자신이 만난 한 청년의 특성을 세대적 특성으로 규정하여 다른 청년에게도 적용한다면, 들어맞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함에도, 귀찮으니까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투표하고 싶다면 세금을 내라는 것처럼, 잔소리를 하고 싶으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기초는 체형에도 적용된다. 뚱뚱한 사람이 친하지도 않은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뚱뚱한 사람이 본인의 여러 이유로 남들보다 식욕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안타까워하고, 위로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 뚱땡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체형에 대한 무관심이다. 그저, 우리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조금 더 건강해진다면, 그 노력에 대한 칭찬은 환영한다. 그런 칭찬은 기부다. 얼마든지 해도 되고, 한없이 감사하고, 존경받을 행동이다. 나는 이렇게 오늘도, 모두가 서로의 체형을 있는 가치중립적으로 받아들이는, 말도 안 되는 세상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