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누차 강조하지만, 항상 돼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르거나 날씬하지는 않았던 것도 맞다. 먹는 즐거움은 어느새 인생의 3할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마르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처음 다이어트를 했던 건 16살이 되었을 때였다. 슬램덩크를 보고 농구에 빠져서, 더 잘하고 싶어서 매일 밤마다 코트에 나가서 슛과 드리블 연습을 했다. 경기를 뛸 때마다 체력이 더 좋고 몸이 더 가벼우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여서, 여름방학 때 하루에 토마토 하나만 먹고 밤에 운동장을 뛰었다. 2주 정도 했을 때 장거리 달리기 기록은 눈에 띄게 좋아졌고, 어디 가서 실력으로 빠지지 않게 농구를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첫 번째 다이어트에 성공했기 때문에, 다이어트는 별 거 아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생을 막살기 시작하게 된 거다.
이후에는 군대 가기 전 20kg 증량 및 군 복무 중 15kg 감량, 고시 생활 하면서 20kg 증량 및 고시촌을 떠나면서 10kg 감량, 점점 수지가 안 맞아갔다. 체중의 평균치가 우상향 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안정적인 100kg대의 몸무게로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다. 종종 결혼한다고 90kg가 되기도 하고, 코로나 재택근무의 여파로 110kg가 되기도 하는, 그런 웅장한 몸무게를 자랑하고 있다.
살은 왜 빼야 할까. 평균에서 벗어난 삶은, 평균을 공략해야 가장 많은 수요층을 커버할 수 있는 기성제품의 세상에서는 살아가기 쉽지 않다. 나는 110 또는 그 이상의 옷을 입어야 하는데, 일반 브랜드에서는 찾기 힘들고, 격조 높은 브랜드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다리가 굵어서, 스타일리시한 슈트 브랜드에서는 가장 큰 사이즈도 종아리가 안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에서는 서서 가는 게 편하고, 버스는 1인석이 나지 않는 이상 앉으려 하지 않는다. 만원 엘리베이터에서는 항상 죄책감과 불안감이 엄습하고, 여러 명이 같이 승용차를 탈 때 내가 하급자임에도 뒤에 낑겨앉지 않고 조수석에 앉아야 하는 현실이 민망하다.
딱 그 정도이다. 사실 큰 옷을 입으면 되고,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이니 대중교통 탈 때라도 서 있으면 조금이라도 튼튼해질 거다. 엘리베이터 다음 거 타면 그만이고, 차도 나눠 타면 된다. 사회적으로 내가 살을 빼야 하는 이유는 없다.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말은 다들 쉽게 공감할 것 같지만, 이 말에 공감하는 순간, 결혼식장에 손 잡고 들어가는 통통한 사람, 혹은 나 같은 뚱땡이의 배우자는 얼마나 거대한 역선택을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성에게 잘 보이려면 날씬해야 한다는 것이 자연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라면, 뚱뚱하지만 행복한 연인과 날씬하지만 외로운 솔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세상 모든 이가 캡틴 아메리카, 블랙핑크의 몸매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노력은 대단하고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건 그들이 월드스타가 되기 위해 그래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만 치면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고 합리화로 하루를 마치는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나에게는 먹는 즐거움을 포기한 채 비싼 명품 브랜드로 치장하고 전용기를 타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삶보다, 친구들과 을지로 뒷골목에서 뼈다귀에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삶이 더 좋다.
내가 다이어트를 하는 것은, 이러다가 아프기라도 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다. 일례로 나는 자몽을 너무 좋아하는데, 심혈관 질환 관련 약을 먹는 사람은 자몽을 함께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심폐능력 관리를 위해 격주에 한 번 3km 달리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생 자몽을 먹고 싶으니까. 내 다이어트의 이유는 그 정도이다. 날씬한 몸이 더 가치 있고, 뚱뚱한 몸이 더 보잘것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다분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 낸 줄 세우기, 그리고 그 줄 세우기에서 자존감 박살 난 하위 사람들이 상위 사람들을 선망하며 돈을 쓰게 만드는 질서에 편승할 생각이 없다.
여러분도 다이어트를 한다면, 한 번쯤 다시 이유를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 더 예쁜 옷을 입고 싶고, 더 잘 생겨지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라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예쁜 옷은 왜 입어야 하는가, 내가 만나고 싶은 이성이 내가 더 살이 빠진 것을 원해서인가. 아니면 단순히 사회적으로 날씬하면 예쁘다고 해서인가. 어떠한 결과를 지향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을 빼고 싶다면,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서 우러난 욕망인지, 아니면 사회가 만들고 주입한 가치에 영혼 없이 끌려가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다이어트라는 것은 굉장히 고되고, 어려운 길이다. 내가 온전히, 간절히 원한 길도 아닌데 고되고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은 너무나 불행할 것이 뻔하다. 내가 나의 의지와 욕망으로 선택하는 길을 가기도 바쁜 세상에,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시간 낭비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