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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필 May 07. 2024

개만도 못한

   그녀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비숑치고는 지나치게 통통해 돼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녀의 애완견은 어묵을 좋아한다. 구불구불하게 꼬치에 꿰인 어묵을 펴서 작게 잘라 주면 귀엽게 냉큼 물어간다.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 정문을 빠져나오면 이름만 봐도 같은 재단인 초, 중, 고교가 나란히 보인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 대학의 정문이 위치해 있고 그 반경 내에 몇 개의 고만고만한 유치원들과 더 많은 수의 학원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그리고 분식집은 세 곳이 있다.


   한 곳은 마라떡볶이를 비롯해 '마라'가 붙어 있는 메뉴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녀도 한 번 가 보았지만 일인 분 세트가 만오천 원에 가까운 가격이었는데 이건 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매운맛이 아니었다. 접시가 놓이자 떡볶이를 먹기도 전에 기침이 났다. 캅사이신 분자인지 마라 분자인지가 힘껏 던진 다트핀처럼 공기 속을 날아 콧속에 냅다 꽂혔다. 콜록콜록 눈물까지 찍어 낸 그녀는 김치 국물같은 뻘건 액체 속에 잠겨 있는 떡과 어묵과 중국당면을 보자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련이 남아 먹어 본 튀김에도 후추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가 책장의 먼지처럼 뽀얗게 내려앉아 있어 결국 쿨피스만 잔뜩 마시고 일어섰다. 그녀는 다시 가지 않았지만 마라떡볶이는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어 보였다.


   다른 곳은 퓨전떡볶이가 전문인 것 같았다. 짜장떡볶이, 로제떡볶이, 카레떡볶이, 궁중떡볶이 등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떡볶이가 있었다. 파스텔 톤의 레이스 식탁보가 덮인 테이블과 각종 인형 소품들이 떡볶이보다는 스파게티에 어울릴 법한 블링블링한 분위기를 풍겼고 사이드 메뉴도 감자튀김이나 치즈볼, 콘슬로우처럼 햄버거 집에 더 어울릴 법한 것들이 가득했다. 여기는 떡볶이를 1인분씩 접시에 담아 주는 것이 아니라 최소 2인분 이상을 시키면 중앙에 떡과 어묵을 넣고 그 주변을 밀푀유처럼 양배추로 겹겹이 둘러싼 커다란 냄비를 테이블 위에서 보글보글 끓여 주었다. 떡볶이도 맛있고 어묵보다 쫄깃한 심심한 물떡 메뉴가 떡볶이와 찰떡궁합이었지만 그녀가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고 값이 비쌌다. 데일리로는 아니고 좀 특별한 날에 올 법한 고급스러운 떡볶이집이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그녀가 정착한 떡볶이집은 가장 평범하고 무난하며 전형적인 학교 앞 떡볶이집이다. 유치원생부터 대학생, 젊은 엄마아빠들까지 북적이는 집이다. 접시에 비닐을 씌우고 1인분씩 담아 주는 떡볶이에는 토막 낸 야끼만두 한 개와 달걀 반 개가 포함되어 있다. 죽부인처럼 길쭉하게 생긴 기본 어묵과 구불구불 겹겹이 접혀 꼬치에 꿰어 있는 어묵은 평범해서 믿음직스럽다. 매콤한 어묵을 먹고 싶으면 떡볶이 국물을 끼얹은 빨간 어묵을 주문하면 된다. 오징어, 고추, 달걀, 고구마, 단호박, 야채 등 튀김도 스탠더드 하고 돼숑이가 특히 좋아하는 해쉬브라운도 있다. 가게 앞에 서서 얼른 먹고 갈 수도 있고 가게 안에 들어와 느긋하게 먹을 수도 있다. 익숙한 메뉴에 가격도 착하다.  또 가게는 얼마나 청결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분식집 중에 가장 깨끗하다고 그녀가 보증을 설 수 있을 정도로 가게 어디에도 말라붙은 떡볶이 국물 따위는 없다. 튀김용 기름도 매일 보숑보숑하고 오와 열을 맞춰 튀김을 놓아두는 진열대 역시 부스러기 하나 없이 반질반질하다. 친절하고 깍듯한 주인장의 매너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분식집이다.   


   그러나 그녀의 단골 떡볶이 집이 단연 인기를 끄는 결정적인 요인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인기 비결의 핵심은 바로 애완견 동반 입장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요즘 일부 카페에서 사람과 애완동물의 디저트 메뉴를 동시에 팔듯이 이 떡볶이집도 그렇다. 애완견들도 조용히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들만의 메뉴가 있고 원한다면 사람이 먹는 메뉴를 애완견에게 먹일 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도 한다. 그녀의 돼숑도 꼬불이 어묵을 특히 좋아하는데 가위로 작게 잘라 접시에 담아 주면 날름날름 숨도 안 쉬고 서너 개는 먹어치운다. 오픈하고 학교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몰려들기 전까지는 애완견을 데리고 온 손님들이 가게를 채운다. 근처 오피스텔의 독신 가구나 아이들이 학교나 어린이집에 간 동안 여유로운 젊은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늦은 오후에 땀내를 폴폴 풍기는 시끄러운 중고등학생들이 쓰나미처럼 가게를 휩쓸고 지나가면 주인장은 한 시간 브레이크 타임을 갖고 가게를 정비한다. 그러고 나면 문 닫기 전까지 다시 애완견을 동반한 젊은 남녀들과 가족들로 북적인다. 오픈부터 마감 때까지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가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가 애완견들이 개들의 메뉴나 사람의 메뉴를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나가버리는 손님들도 있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 주인장은 개의치 않는다.


   오늘도 그녀는 돼숑이와 함께 떡볶이와 어묵을 먹고 있다. 그녀 외에 애완견을 데리고 온 남자 손님, 역시 애완견을 데리고 온 남녀 커플, 아마도 아이들의 하교를 기다리는 젊은 엄마들로 가게는 제법 북적인다. 그때 친절한 주인장이 테이블마다 종이 한 장씩을 디밀었다.


   '6월 1일부터 저희 가게는 노키즈 존으로 운영됩니다. 어린이 손님들 때문에 제가 겪은 어려움이 너무 커  일 년 정도 고민하고 내린 결정입니다. 어린이 손님들이 가게 안을 왔다 갔다 하다가 다른 테이블의 음료나 음식을 쏟는 것 때문에 손님들 간 다툼이 많았습니다. 특히 테이블 위의 휴대전화가 망가지면 큰 싸움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또 어린이 손님들이 어묵 국물에 데기라도 하면 치료비를 변상해 달라는 부모님들의 요구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경찰서에 불려 간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피치 못하게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희 가게를 사랑해 준 어린이 손님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주인장 마음이 단번에 이해되었다. 그녀 역시 돼숑이를 함부로 만지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는 부모들 때문에 마음이 상한 적이 꽤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테이블 옆을 지나갈 때면 그녀도 움찔 긴장이 되곤 했다. 실제로 한 아이가 옆 테이블을 쳐서 콜라가 쏟아졌는데 그 콜라가 최신 휴대전화를 덮쳐 보상의 액수를 두고 싸움이 벌어진 광경을 본 적도 있었다. 아이 부모는 수리비를 물어 주겠다고 했고 휴대전화 주인은 산 지 열흘밖에 안 된 거라며 새것을 사달라고 했다. 그녀와 돼숑이가 떡볶이와 어묵을 다 먹고 나갈 때까지 싸움이 끝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묵 국물에 데면 치료비를 달라고 하는 손님이 있는 줄은 몰랐다.


  "사장님, 그렇다고 분식집이 노키즈 존을 하는 건 너무하지 않아요? 이런 경우가 얼마나 된다고, 이 가게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데 이래 가지고 장사하시겠어요?"

젊은 엄마 목소리에 가시가 돋쳤다.

  "네,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일 한번 겪을 때마다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속이 상해서 가게를 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지난 번에 며칠 문 닫은 것도 아이가 손 덴 거 치료비 안 물어준다고 고소당해서 경찰 조사받고 앓아누워서 그랬어요. 저도 매출 엄청 줄어들 거 각오하고 결정한 거예요. 죄송합니다."

  "가게 하다 보면 별별 손님 다 있는 거 저도 알아요. 애아빠도 식당 하거든요. 진상 손님들 수두룩해요. 그렇다고 그런 손님들 다 못 오게 하진 않아요. 그리고 아이들은 진상 손님도 아니잖아요. 간혹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부모들에게 미리 주의를 주거나 부탁을 하면 될 일이죠. 여기 개도 들어오게 하면서 애들을 못 오게 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녀는 젊은 엄마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거기서 '개' 이야기가 왜 나오는가. 돼숑이와 돼숑이 친구들은 아이들처럼 가게 안을 왔다 갔다 하거나 다른 손님의 테이블을 쳐서 음식과 음료를 쏟지 않는다. 애들과 비교될 만큼 잘못을 하지 않는다. 감히 누굴 누구와 비교하는 거지? 그리고 노키즈 존을 하든 노도그 존을 하든 영업의 자유 아닌가.


  그녀가 회원권을 끊어 공부하는 스터디 카페에도 얼마 전부터 '중학교 3학년 미만은 이용 금지'이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학생증을 검사하나 잠깐 의아했지만 그건 사장님이 알아서 할 일이고 어쨌든 속이 다 후련했다. 어린 학생들이 스터디카페에 와서 공부는 하지 않고 음료수와 과자만 잔뜩 축내면서 휴게실과 화장실을 어지럽히는 일에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었다. 게다가 스터디실에서 휴게실, 화장실로 얼마나 들락날락하는지 아무리 문소리가 나지 않는다 해도 정신이 사나워 그녀도 회원권 기간이 끝나면 스터디카페를 옮겨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다. 근처의 새로 생긴 스터디카페는 아예 대학생과 성인들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 스터디카페가 오픈하고 나서 늘 보이던 회원 몇이 사라졌다. 어른들은  누가 시켜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떠들거나 동영상을 보며 키득거리지 않는다. 볼펜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책상 위와 바닥에 지우개 가루를 시커멓게 떨구지도 않는다. 다이어트나 건강 문제 때문에 과자를 몇 봉지씩 아작내지도 않는다.   


   또 그녀가 다니는 헬스 클럽에도 얼마 전부터 '아줌마 출입 금지'라는 다소 자극적인 안내문이 붙었다. 아줌마들을 무시하는 거냐는 소동이 한바탕 일자 작은 글씨의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 '아줌마'가 모든 기혼여성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표현은 아니라며 출입이 금지되는 '아줌마'의 정의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샤워실에서 빨래를 한 바구니씩 한다든지, 드라이기나 수건을 슬쩍 가져간다든지, 샤워하면서 노란 소변 물줄기를 흘려보낸다든지 하는 설명 말이다. '아줌마'라는 표현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있고 기분이 나쁘다며 그만 두는 회원들이 생겼지만 그녀는 사장님의 결단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쪽이다. 예전에 수영장, 에어로빅 클럽에 다닐 때도 항상 겪었던 일인데 아줌마들은 '여기는 원래 내 자리다'라는 말을 당당하게 했다.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들에게 특히 자주 했다. '원래'라니? 아파트처럼 전세라도 냈나 따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노키즈 존'인 분식집, '중학교 3학년 미만은 이용 금지'인 스터디카페, '아줌마 출입 금지'인 헬스 클럽. 그녀는 다행히 어디에서도 금지당하지 않는 우수 고객이지만 뭔가를 금지하는 곳이 자꾸 늘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그녀는 헬스 클럽에서 출입 금지, 막내는 분식집에서 출입 금지, 큰애는 스터디카페에서 출입금지를 당하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 보았지만 그녀는 그런 아줌마가 될 리가 없고 그녀의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이 될 리가 없다는 상쾌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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