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무한리필 초밥집을 갈 때면 두 가지 원칙을 꼭 지킨다. 첫째는 꼭 그녀를 데려간다는 것. 그는 초밥을 너무 좋아하고 그녀는 초밥을 너무 싫어한다. 둘째는 도장 깨기 방식으로 방문한다는 것. 최근에 오픈한 초밥집을 선택하고 웬만하면 두 번 다시 가지는 않는다. 이 두 가지 원칙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오늘도 그는 그녀를 대동하고 번화가에 새로 문을 연 무한리필 초밥집을 찾았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회전바의 규모가 대단히 커서 많은 손님들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고 한 시간 반 동안 원하는 초밥만 골라 먹어도 절대 눈치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장점으로 홍보하는 것을 보고 결정했다. 무한리필 집에서 그 두 가지는 매우 중요하다. 줄을 서서 가게 안을 째려보는 통유리 너머의 대기 손님들, 제 손으로 달아 놓은 무한리필이라는 간판의 의미를 종종 망각하는 주인장들의 비매너는 무한리필을 사랑하는 그를 불편하게 한다.
오픈런까지 할 필요도 없는 규모의 무한리필 초밥집이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가다 보니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가게는 사진으로 본 것만큼 넓지는 않았지만 매번 사진발에 속았던 그로서는 그러려니 했다. 큰 회전바 안에 다섯 명이나 되는 셰프들이 흰 모자와 앞치마를 착용하고 서 있는 것이 믿음직스러웠다. 셀 수 없이 많은 앙증맞은 초밥 접시들이 그를 기다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어제저녁부터 비워 놓은 위장이 길거리에서 악을 쓰는 아이들처럼 보채기 시작했다.
그녀는 익히지 않은 음식을 절대 먹지 않는다. 그래서 초밥은 그녀에게 최악의 음식이고 그가 식사비를 낸다고 해도 따라다니는 것이 고역이다. 그럼에도 늘 그와 초밥집에 동행해 주는 것은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가 그녀에게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 거나 조금만 먹으면 된다. 웬만한 식당의 일인 분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탓에 늘 배고픈 그를 위한 인류애, 기부 광고에서 굶어 죽는 이들을 하도 본 탓에 갖게 된 음식 쓰레기 주범으로서의 죄책감도 그와 밥을 먹는 이유다. 그는 뭐든지 많이, 남김없이 먹기 때문에 그녀의 죄를 사해 준다.
그와 그녀는 서수남과 하청일처럼 환상의 콤비다. 특히 무한리필 초밥집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그녀는 좀처럼 선택받지 못하고 언제까지고 무대 위에서 빙빙 돌 운명인 계란, 유부초밥만 먹는다. 마끼조차도 날치알이 버석버석해 먹지 않는다. 인기가 없고 싸구려로 통하는 그 초밥들은 한 접시에 두 점씩 담겨 있다. 반면에 그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사랑해 무대 위에 머무를 틈이 없는 각종 활어 초밥만 먹는다. 특히 광어초밥에 대한 공략은 집요하다. 그가 먹는 초밥들은 한 접시에 한 점씩 담겨 있다.
"여기는 원하는 것만 골라 먹어도 된대."
첫 월급을 탄 신입사원처럼 달뜬 목소리로 그가 속삭였다. 누가 보면 초밥집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줄 알겠다.
"무한리필 초밥집은 다 그래."
"아냐, 니가 몰라 그렇지 비싼 것만 골라 먹으면 주인장들이 엄청 눈치를 줘. 째려본다고."
"그럼 여기도 눈치 주겠네."
"아니지, 여기는 골라먹어도 된다고 광고까지 하니까 안 그러겠지."
그녀는 대만카스텔라를 얹어 놓은 듯한 폭신폭신한 계란초밥을 두 접시 먹고 딱히 특별하달 게 없는 유부초밥을 한 접시 먹었다. 여섯 개를 먹으니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 사이에 그의 옆에는 접시가 스무 개쯤 쌓였다. 아직 팔십 개 정도의 접시가 더 쌓여야 그는 일어설 것이다. 어쩌면 최고기록 경신에 도전할지도 모른다. 기울지는 않았지만 쌓여가는 접시들은 피사의 사탑처럼 보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여기 접시 좀 치워 주세요."
부지런히 간장과 락교, 초생강을 채워 주고 된장국을 리필해 주는 종업원에게 그녀가 말했다. 셀프인 곳도 많은 일을 종업원이 해 주어 그녀는 편하다고 생각했다.
"저희는 중간에 접시 안 치워요. 다 드시면 치울게요."
그와 그녀가 종업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니 의도가 담긴 말을 의도가 없는 것처럼 해야 하는 사람의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보였다. 지금도 그의 접시 높이가 일등이니 조금 있으면 압도적 일등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야, 접시를 안 치워 준대잖아. 좀 적당히 먹어. 창피하다, 창피해."
"무슨 상관이야. 네가 안 먹잖아. 그러니까 우린 평균이야, 평균."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농담반진담반으로 말씀하셨던 평균 깎아 먹는 애가 된 그녀는 평균을 한껏 올리고 있는 그를 흥미롭게 구경했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초밥이 들어갈까. 밥통 하나쯤의 밥알이 뱃속에 그득하겠네. 생선도 몇 마리는 꿀떡 한 셈이네. 물과 된장국도 엄청 마셨고 간장도 종이컵 하나 분량은 찍어 먹었을 것 같고 락교와 초생강도 거의 백 개씩은 집어 먹었겠군...... 그런 것들이 마구 뒤섞인 장면이 떠오르자 갑자기 그녀는 속이 메슥거려서 황급히 녹차물을 마셨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부른 배를 안고 일어섰다. 그녀는 왠지 만삭의 임산부에게 이야기하듯 조심히 움직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는 아쉽게도 신기록 경신에는 실패했지만 평소 실력만큼은 충분히 발휘했다. 그가 계산하는 금액을 보니 지난번에 갔던 무한리필 초밥집보다 팔천 원을 더 냈다. 눈치를 안 본 대가로 내는 금액치고는 괜찮았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한 그는 사탕을 두 개 집어 입 속에 쏙 넣었다. 사탕도 평균이다. 카드를 되돌려주며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아무리 무한리필이라도 상도덕이라는 게 있는 겁니다. 손님처럼 드시는 분들 있으면 우리 같은 가게는 망해요. 죄송하지만 다시는 오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