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국물은 천 원, 큰 국물은 이천 원인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네?"
휴대전화로 저녁에 먹을 배달 음식을 고르며 짬뽕을 먹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 수밖에 없는 대화였다. 다른 테이블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일제히 고개 업.
"짬뽕 국물도 돈 받아요?"
"네. 오늘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배달은 이번 달 1일부터 벌써 그렇게 했고요."
아까 지나온 골목길에 맨홀 뚜껑이 열려 있고 공사 도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는데 사람은 안 보이더니 거기서 일하다 온 인부들 같았다. 테이블을 보니 두 명은 짬뽕밥, 한 명은 볶음밥을 시켰다. 볶음밥이 문제였다.
"아니, 중국집에서 볶음밥에 짬뽕 국물 좀 주면서 돈 받는 건 처음 보네. 이게 말이 돼요?"
"저희도 원래는 서비스로 그냥 드렸었는데 오늘부터 유료로 바뀐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냐고요? 짬뽕 국물 좀 주면서 돈 받는다는 게!"
"손님한테는 조금이지만 저희한테는 그렇지 않아요. 요새 식자재 값이 너무 올라서 이제 짬뽕 국물 돈 받는 데 많아요."
짬뽕 국물에 돈을 받기로 한 첫날, 주인아주머니는 공짜 국물을 요구하는 아저씨를 지긋이 바라보며 이 정도의 저항은 예상했다는 듯 일말의 동요도 없이 또박또박 말을 뱉고 있었다. 설득력이 느껴지도록 신중하게 멘트를 고쳐 가며 오늘 첫 볶음밥 주문이 들어올 때까지 수없이 연습했을지도 모른다.
식자재 값이 올랐다는 건 확실하다. 그가 자주 배달시키는 프랜차이즈 분식집에도 칠천 원짜리 김밥이 등장했다. 아무 수식어가 없는 기본 김밥도 사천 구백 원이 되어 있었다. 그는 김밥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올라도 많이 올랐다는 생각은 했었다.
"볶음밥에 짬뽕 국물 따라오는 게 당연한 건데 어떻게 돈을 받아요? 그럼 백반집도 국에 돈 받아야겠네."
마지막 문장에는 비아냥거림이 얹혔다. 시뮬레이션 때 비아냥거림이 등장하는 상황은 없었던 걸까. 드디어 주인아줌마 목소리의 데시벨이 상승했다.
"백반은 국이 당연히 포함돼 있는 세트죠. 하지만 짬뽕 국물은 다르잖아요. 짬뽕은 엄연히 돈 받고 파는 메뉴니까요. 볶음밥에 서비스 국물 몇 개 내면 짬뽕 한 그릇 분량이에요."
"볶음밥에도 당연히 짬뽕 국물이 포함되는 거 아닌가? 세트로. 요 옆 콩나물국밥 집에서 비빔밥 시키면 국물 주거든요. 그 국물도 엄연히 돈 받고 파는 콩나물국밥 국물이에요."
"그 집이 그런다고 해서 저희 집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니죠. 그리고 그 집도 아마 곧 돈 받고 국물 주게 될 걸요."
"아니, 다른 중국집에서는 다 서비스로 그냥 주는데 왜 여기만 돈을 받아요?"
"다른 중국집이 다 서비스로 주는지 손님이 어떻게 아세요? 요새 배달 때는 돈 받고 짬뽕 국물 추가로 주는 집 많아요. 그리고 짬뽕 국물은 분명히 '서비스'였잖아요. '서비스'는 말 그대로 '서비스'지 당연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삼대 일로 싸우는 데 주인아주머니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이제 주인아주머니는 수비에서 공격으로 선회하기까지 한다.
"예전에는 배달시키면 숟가락 젓가락 당연히 줬었지만 이젠 그것도 달라고 할 때만 줘요. 고깃집에서 상추 더 먹으려면 추가 요금 내는 집도 진짜 많다고요. 세상이 변하면 변하는 거지 당연한 게 어딨어요?"
"그래서 숟가락, 젓가락 달라고 하면 돈 받고 줘요? 그냥 주잖아요! 상추도 처음부터 돈 따로 받진 않잖아요. 추가로 더 달라고 할 땐 돈을 받을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돈 받는 건 너무하잖아요. 차라리 볶음밥 가격을 아예 올려서 써 두든가요."
"볶음밥 먹는 손님들이 다 짬뽕 국물을 먹지는 않아요. 서비스로 드려도 손도 안 대는 손님들이 꽤 있다고요. 그렇게 아깝게 버려지는 국물도 많아요. 그런데 가격을 올리면 짬뽕 국물 싫어하시는 분들이 손해 보잖아요."
"그렇게 남기는 사람들이 많으면 손님들한테 물어보고 달라는 사람한테만 주면 되겠네. 짬뽕 국물 안 먹는 손님들이 많다면 달라는 사람한테만 서비스로 줘도 별로 손해 볼 것 없지 않아요?"
그가 짬뽕을 다 먹을 때까지 국물 전쟁은 이어졌다. 그는 자신이 김밥과 볶음밥을 좋아하지 않고 애초에 국물이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 퍽이나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