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식당에 텔레비전을 왜 두는 것일까? 혼자 온 손님은 휴대전화를 보고 여럿이 온 손님들은 서로들 대화하면 될 것을.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고 화는 더 많다. 튀김이 지저분한 기름을 듬뿍 머금고 있듯이 자기가 옳다는 오만함과 고집에 절어 있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아저씨는 너무 흔해서 딱히 흠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너무 말라서 보기에 딱할 정도인 여자들이 더욱 비쩍 마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것처럼,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극단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그도 점점 더 극단적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는 점이다.
'지양'과 '지향'이 정반대의 뜻을 가졌음을 그녀가 지적했을 때 그는 살아오면서 자신이 그 단어들을 몇 번이나 혼동해서 잘못 썼을까, 몇 번이나 상대방의 비웃음을 샀을까를 한동안 고민했다. 어쩌면 두 단어의 발음이 비슷하니 여간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알아챘다 해도 두꺼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으로 알려진 그이니만큼 실수를 한 거라고 여겼을 확률이 높다. 또 그가 모르는 것을 알 만큼 똑똑한 이들이 다행히 그의 주변에는 없다. 그래서 그의 고민은 곧 사라졌다.
대신 그에게는 새로 습득한 정치 뉴스를 남들에게 설파하기 전에 스피치 연습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지극히 상식적인 단어를 어이없게 틀리게 구사해서 지식의 깊이를 의심받게 되면 자신의 올곧은 정치적 신념까지 의심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스파링 상대는 그녀다. 한쪽은 공격을 하고 한쪽은 공격을 받아주기만 하는 스파링처럼 그는 핏대를 올리며 정치 이야기를 하고 그녀는 묵묵히 그 이야기들을 들어준다. 그의 말에는 허점이 많아 마음만 먹으면 그녀는 한 방에 그를 넘어뜨릴 수 있지만 스파링 상대의 역할은 그게 아니다. 밍밍하고 순한 언어를 구사하는 그녀는 그가 맵고 짠 언어를 퍼부을 때마다 한때 성행했다는 물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힘들지만 자고로 고문의 목적은 죽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려고 하면 멈추는 법이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깔딱깔딱한다.
스피치 연습을 끝낸 그는 즉각 실전에 돌입한다. 그녀로서는 같은 내용으로 당하는 두 번째 고문인데 주무대는 바로 식당이다. 늘 점심을 먹는 단골 식당에 들어가면 그는 일단 리모컨부터 찾는다. 그리고 그의 성향과 똑 일치하는 뉴스를 내보내는 채널을 튼다. 솔로를 하기에는 아직 실력이 부족한 그는 판소리 공연에서 주인공인 창자에게 북을 쳐 주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고수처럼 앵커나 기자에게 주인공 역할을 맡기고 자신은 코러스 역할을 맡는다. 그의 덩치가 커선지 그 멋대로 채널을 돌려도 드라마나 예능, 스포츠 프로를 보고 있던 손님들 중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긴 그들도 그냥 눈을 둘 데가 없어서,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보고 있었을 뿐 텔레비전에서 봉산탈춤이 나온들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검찰은 뭐 하는 거야? 저런 놈 하나 쳐 넣지 못하고. 정권 바뀌면 지들부터 모가지 날아갈 줄 모르고. 지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잡아 쳐 넣어야지. 아니, 검사면 없는 죄도 만들 수 있는데 요새 검사 새끼들은 있는 죄도 어떻게 하지를 못해. 한심한 것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저 놈이 말이야......"
그의 스피치 원고는 유튜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저 놈'에 대한 온갖 가십성 정보들은 그와 생각이 같은 극성 유튜버들의 입에서 나불나불 나온 것들이다. 그런 유튜버들이 한 번은 뒷발질로 뭐 잡은 적이 있어 그녀를 놀래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발길질은 누가 봐도 안짱다리 헛발질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우는 아이에게 뭐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유튜브 세계에서도 통하는지 제발 봐달라고 헛발질을 요란하게 하는 채널일수록 구독자 수가 많다. 또 운동회 때 바글바글한 아이들이 던지는 콩주머니에 맞아 박이 퍽 하고 터지면 그 안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종이조각이 우수수 떨어지듯 생방송 중 슈퍼챗이 뭉텅뭉텅 쏟아진다.
그녀는 그의 스피치를 두 번째 듣기 때문에 가장 듣기 거북한 클라이맥스가 어딘지 이미 알고 있다. 그의 스피치가 그 근처까지 왔을 때 밥 먹는 속도를 늦춘다. 원만한 소화를 위한 자연스러운 조치다.
"정 안 되면 저 놈 여자관계라도 터뜨려야지. 반반하게 생겨가지고 여자가 그렇게 많다는데 하나 찾아내서 인터뷰시키면 좀 좋아. 서울의 스피커 알지? 거기서 까발린 여자만 해도 다섯 명이 넘어. 술집 마담이 섹스 동영상도 갖고 있다는데, 그거 공개되면 저 놈 얼굴 들고 대한민국에서 못 살 거라는데, 그거 하나를 못 까발리나? 저 놈 자식들도 공부라곤 못하기로 대치동에서 유명했다는데 백 프로 입시 비리지, 입시비리야. 저 놈하고 마누라 하고 모두 한국대 나왔으니 한국대 교수들도 다 한 패거리인 거지. 저거 수사만 하면 다 밝혀질 텐데. 우리나라에서 군대 문제랑 입시 문제는 건들면 그냥 다 터지는 건데 그걸 못해?"
항상 그렇듯 독백체로 혼자 꿈틀거리던 그의 스피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바뀐다. 그리고 텔레비전 화면이 다음 뉴스로 바뀌자 그도 다음 스피치 원고를 떠올리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도대체 택시 기사들은 왜 정치 프로를 틀어 두는 것일까? 사연을 읽는 시간만큼 협찬 소개가 긴, 노래를 틀어 주는 프로도 많은데.
그녀가 가끔 혼자 가는 김밥집은 항상 찬송가를 틀어 둔다. 김밥을 먹으며 회개를 해야 할 것 같은 거룩함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지나친 비트와 가사가 넘쳐나는 요즘 노래들보다는 덜 거북하다. 가끔 궁금하기는 하다. 맛있고 저렴한 김밥에 비해 손님이 너무 적은 것이 찬송가 때문은 아닐까. 다른 종교를 믿는 손님들에게는 소금을 뿌리는 격이고 종교가 없는 손님들 중에서도 주인장이 손님들 생각은 않고 자기 취향에 심취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실제로 그녀가 김밥집을 다니는 동안 문을 열고 들어 왔다가 아무 말 없이 곧장 나가는 손님들을 여럿 봤다. 어딘가 목탁 소리나 경 읽는 소리를 틀어 두는 김밥집도 있을까.
식당은 들어갔다 곧장 나올 수 있지만 택시는 다르다. 엉덩이를 뒷좌석에 붙이고 택시가 출발하고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나면 시사 프로그램이 귀에 들린다. 택시에서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저씨, 이런 프로 듣지 마세요. 저거 다 생거짓말이에요. 사실은 저 놈들이......."
뒤에 이어지는 열변은 이미 유튜버에 의해 가공된 팩트를 다시 대담하게 변형시킨다. 택배 상자를 뜯다가 작은 칼에 손가락을 벤 것이 열 명의 깡패와 맞짱 뜨다가 회칼에 옆구리를 찔린 것으로 무럭무럭 자라난다. 택시 기사 중 열에 아홉은 그의 지적을 받으면 수긍하든 아니든 '아 예, 알겠습니다.'하고 채널을 바꾸거나 라디오를 꺼 버린다. 물론 그녀는 택시 기사가 아예 라디오를 꺼 버리는 것이 좋다. 안 그러면 '소리 좀 줄여 주세요'라는 그의 짜증 묻은 목소리가 한 번 더 발사된다. 라디오 볼륨을 줄여야 택시 기사를 상대로 한 정치 평론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발사된 미사일은 반드시 날아서 목표물을 타격해야 하는 법이지 공해상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좁은 택시 안에서 억눌려 있던 강력한 정치적 신념을 펼 기회만 노리는 택시 기사가 열에 하나는 있다. 바닥에 짜부라져 있던 거대한 사람 모양의 풍선 같던 택시기사의 정치적 소신은 그를 만나 벌떡 일어서서 두 팔을 마구 휘젓는다. 다행히 둘의 정치적 성향이 일치하면 하차할 때까지 택시 안은 록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로 달궈진다. 그녀는 중학생 딸을 따라가 비싼 티켓값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던 헤비메탈 콘서트장을 떠올리며 택시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최악은 그와 택시 기사의 정치적 성향이 서로 다른 방향의 양 극단일 때다. 둘은 각자가 신봉하는 서울의 스피커니 한국의 보이스니 하는 유튜버들을 근거로 온갖 말들을 쏟아낸다. 그녀는 불개미가 호랑이의 허리를 물고 북해를 건넜다는 시조를 떠올린다. 그 시조의 화자도 그랬다. 님아, 님아, 제발 그런 헛소리 좀 믿지 마세요.
"아니, 아저씨,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어가지고 이상한 소리를 해요? 손님들한테 그런 거짓말하지 마세요. 저 놈이 어떤 놈이냐 하면 입만 열면 거짓말에....."
"아니, 손님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말 하지 마세요. 저분이 어떤 분이냐 하면 항상 나라와 국민을 위해....."
운전자가 흥분하면 택시도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하고 그녀는 좁은 택시 안에서 날아다니는 온갖 미사일에 올라탄 것 마냥 불안해진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해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려서 택시 문이 쾅 닫힐 때까지 둘의 설전은 끝나지 않는다. 상대방의 심장에 꽂기 위해 마지막으로 날린 비수 같은 문장은 닫히는 택시문에 두 동강이 나 버린다. 택시 기사 따위를 완벽히 제압하지 못했다는 분함에 식식거리던 그가 말한다.
"아, 국민들이 개돼지면 정말 어쩔 수가 없어. 나라의 미래가 정말 걱정된다, 걱정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