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맞는 모자

by 김진필

지긋지긋한 이놈의 건물. 황금알을 낳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 늙어 똥만 싸지르는 건물. 처음으로 건물이 똥을 싸지른 건 이 년 전 한겨울이었다. 몇 십 년 만이라나 기상 관측 이후 처음이라나 아무튼 어마어마한 혹한이 겨울 바닷바람과 동맹을 맺고 도시를 덮쳤을 때였다. 이십 년도 더 된 싸구려 싱크대 바닥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전체 수도관을 교체하지 않으면 언젠가 큰일이 터질 거라고 누군가 경고했던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구석구석 쌓인 누추한 살림을 다 들어낼 엄두가 안 났었다. 또 곧 건물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갈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사람도 아닌 건물의 고장 예방을 위해 쓰는 돈이 너무 아까웠다. 일흔다섯이 될 때까지 고질병인 체증으로 며칠 씩 굶었던 적이 부지기수여도 영양제 한 번 안 맞고 끝끝내 버텼던 나 아닌가. 대가는 혹독했다. 어디서 관이 터졌는지를 쉬이 찾지를 못해 여기저기를 다 깨부수는 며칠 동안 보일러가 멈춘 것은 물론이고 밥 해 먹을 물과 세수와 양치를 하고 변기를 내릴 최소한의 물을 길어 오기 위해 삼층 계단을 몇 십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작 가장 부아를 돋운 것은 인내심 없이 터진 관도, 실력이 없어 보이는 기술자도, 전기장판을 켜고 짤짤 끓는 침대 위에서 텔레비전만 보는 남편도 아니었다. 바로 쓰레기보다 조금 나은 초라한 살림살이들을 남에게 내보이는 것이었다. 공사하는 사장님이 오기 전에 내 나름 짐작하여 몇 군데를 치우고 싹싹 닦아놨지만 신기하게도 사장님은 내가 가장 보이기 싫은 부분의 바닥을 정확히 가리키며 깨보고 싶어 했다. 사장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맨손으로 땅굴을 파듯 쭈그리고 앉아 살림살이들을 파내는데 홀딱 벗고 있는 것처럼 온몸이 부끄러웠다. 진작에 정리해서 버릴 건 버릴걸. 그렇게 후회하면서도 막상 공사가 끝나면 한 번이라도 더 쓸 일이 있을까 아까워 절대 버리지 못할 거라고 이미 생각하는 내가 답답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몇 곱절 나를 섭섭하게 한 것은 바로 아들이었다.

카톡. 수리하는 사람이 뭐래?

내가 이해한 범위 내에서 답장을 하긴 했지만 제대로 이해를 못 했으니 전달은 더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카톡. 아니, 엄마! 무슨 말이야. 다시 물어봐. 수도관을.......

아들의 질문 역시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사장님, 아들한테 온 카톡 좀 봐주세요.

아, 이거요? 아, 아드님한테 일단...... 다시...... 마지막으로....... 할 거라고 하세요.

까먹기 전에 부지런히 아들에게 카톡을 보내면서도 사장님의 말을 내가 제대로 옮기고 있는지 자신은 없었다. 사장님의 말은 병원의 의사 선생님 말 같았다.

카톡. 뭔 말이야? 답답하네. 다시 한번 물어봐........

물론 월급쟁이가 회사에서 집안 일로 수화기 붙들고 있기가 힘들다는 거, 이해한다. 그럼 저도 늙은 엄마가 전문 용어를 구사하는 사장님의 말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우여곡절 끝에 수리를 끝내고 다시 덮은 장판 위를 트리오 칠을 해서 닦아 내는데 닦아도 닦아도 트리오 거품은 자꾸 나왔다. 마치 늘 상냥하고 친절했던 아들이 며칠간 짜증을 내며 나를 타박했던 것이 자꾸 생각나는 것처럼.


그렇게 속을 썩였던 수도관은 다음 해 겨울 다른 곳에서 또 터졌다. 집 앞의 초등학교 애들이 하는 너구리 오락 같았다. 한 놈 머리통을 내리치면 다른 놈이 머리통을 내밀고, 그놈을 내리치면 또 다른 놈이 메롱하듯 머리통을 내밀며 약을 올리는 오락말이다. 날씨가 영하로 내려갔으니 밤에 지하실부터 삼층까지 물을 쫄쫄 틀어놔야 한다고 그렇게 성화를 부려도 아들은 이 정도 추위에 절대 수도관 얼어터지지 않는다, 괜히 물세만 잔뜩 나온다, 자기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좀 가만히 있으라 했었다.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하는데? 아들은 하루 종일 직장에 가 있지, 잘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남편은 하루 종일 전기장판 위에 앉았지, 바닥을 깨기 전에 잡동사니 물건을 치우고 발을 동동거리며 물을 길어 오고 수리하는 사람이 뭐 가져오라 그러면 갖다 주고 어디 보고 오라 그러면 보고 오고 어디를 잠그라 하면 잠그고 다시 열어라 하면 여는 건 다 내 일이었다. 삼층집과 지하실 사이의 계단 어디쯤에 서서 아들의 카톡을 확인하고 사장님의 대답을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여 듣고 아들에게 전달하기를 반복하며 연신 쿠사리를 먹는 것도, 마침내 공사가 끝나면 시멘트 가루로 뒤덮인 온 집안을 대청소하는 것도 다 내 일이었다. 청소는 또 얼마나 힘든가. 다 끝나고 나서 며칠을 끙끙 앓는 바람에 설날 차례상도 못 차릴 뻔했다. 남편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정리하라 하고 아들은 주말에 자기가 정리를 도와주겠다 했다. 하지만 남편은 말뿐이지 조금도 도와줄 능력이 없고 일주일 내내 돈 번 아들은 주말에 쉬어야지 않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 성격이 일을 펼쳐놓고 느긋할 수가 없다. 오늘 할 일은 새벽에 해야 하고 내일 할 일도 오늘 해야 하고 모레 할 일도 오늘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


여든이 넘은 남편보다 쌩쌩할 뿐이지 나도 일흔보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다. 두 해 연속 수도관 때문에 생지랄을 하고 나서는 이놈의 건물에 오만정이 뚝뚝 떨어졌다. 무엇보다 일 년에 삼백 오십 오일 간 효자스러운 아들이 열흘 정도 짜증을 내고 닦달을 하는 게 생각만 해도 섭섭했다. 이놈의 건물 당장 팔아치우고 조그만 아파트라도 사서 나가면 소원이 없겠다. 벌써 가을이다. 올 겨울에는 어디가 또 터질까 하는 걱정으로 일 년 내내 노심초사했는데 날씨가 선선해지니 명치끝이 턱턱 막히고 안 그래도 잦은 체증이 더 기승을 부린다. 실현된 적은 별로 없는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을 못 자 불면증 약을 처방받아먹고 있지만 이렇게 가을이 되면 그것도 소용이 없다. 곧 긴긴 겨울이 올 테고 수도관이 확실히 터질 거라는 불안감에 내 가슴이 먼저 터질 것처럼 두근두근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요즘 틈만 나면 이사 타령이다. 올 겨울에도 반드시 수도관이 터질 거라고 확신한다. 터지는 위치까지 정확하게 짚겠다 싶을 만큼 자신에 차 있다. 그러나 엄마 소원처럼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엄마 걱정이 사라질까. 절대 아니다. 엄마는 아파트에 꼭 맞는 걱정을 발굴해 낼 거고 계속 체증과 불면증에 시달릴 거다. 처음 수도관이 터졌을 때 얼어서가 아니라 낡아서 터진 거라고 수리하는 사장님이 그렇게 말했건만 다음 해 겨울이 되자 영하로만 기온이 내려가면 지하부터 삼층까지 밤새도록 수돗물을 틀어 뒀다. 수도세가 아까웠지만 그 정도는 엄마 마음이 편해지는 비용이라 생각했다. 대관령 바람이 사시사철 몰아치는 도시에서 바람만 좀 불면 뭐가 떨어지고 날아갈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니까. 어디서 간판이 떨어져 누가 죽고 어디서 표지판이 넘어져 누가 다쳤단다. 바닷물이 쓰나미로 덮치거나 북한이 쳐들어올 걱정은 왜 안 하는지 원.


엄마는 똥만 싸는 건물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월세가 나오는 건물이다. 한 달에 백만 원이 좀 넘는 금액이니 일 년이면 거의 천오백만 원에 육박한다. 설령 엄마의 예상처럼 올 겨울에도 수도가 터져 며칠 고생 좀 하고 이삼백만 원 쓴다 해도 정말 남는 장사다. 그리고 집을 갖고 있다 보면 여기저기 고칠 일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동차도 그렇다.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교체하고 수리하니까 굴러다니는 건데 그게 귀찮다고 버리고 버스 타고 다닐까.

엄마의 논리는 이렇다. 자동차는 어디가 문젠지 명확하니까 돈만 들지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지 않으냐, 그러나 수도관이 터지는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한 번 터지면 온 식구의 생활이 올스톱되고 어디가 문젠지 찾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 그리고 자동차 문제는 네가 잘 아는 문제지만 수도관 문제는 엄마가 전혀 모르는 문제다..... 그러면 내가 있는 주말에 사람을 불러서 고치거나 내가 반차를 내고 집에 와서 공사를 지켜보겠다고 하면 엄마의 대응은 또 이렇다. 주말까지 어떻게 기다리느냐, 그리고 집안 일로 조퇴하는 걸 너네 사장님이 좋아하겠느냐, 안 그래도 직원 몇 명 정리한다고 들썩들썩하는 마당에.....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엄마는 모든 것이 문제없이 착착 돌아가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두 평 부엌의 살림조차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가스레인지 화구 하나가 고장 나기도 하고 냉장고의 냉기가 약해지기도 한다. 엄마가 평생 해온 작은 세계의 살림도 그런데 하물며 세상 일이야 오죽하겠는가. 세상일은 원래 다 삐그덕 대면서 돌아간다는 걸 왜 납득하지 못할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기다리면 고쳐지는 건데 엄마는 뭐 하나가 삐끗하면 노심초사 난리법석 완벽해질 때까지 잠을 못 잔다. 마침내 모든 게 완전해지면 다시 뭔가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이 돼서 또 잠을 못 잔다. 그러니 맨날 수면제를 먹을 수밖에.

그렇다 해도 너무 무사태평인 것보다는 엄마 성격이 낫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수리비에 대해서다. 엄마는 한 시간이 넘는 거리도 버스조차 안 타고 꼭 걸어 다니고 집 근처에 누군가 버린 아이스박스를 갖다가 싹싹 닦아서 동생에게 반찬을 보낼 때 쓴다. 어버이날 바구니 꽃을 살까 하다가 엄마의 반응으로 고려하여 가슴에 다는 제일 작은 꽃송이를 사 와도 차라리 떡이나 빵을 사 오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꽃을 샀다고 진심으로 화를 낸다. 엄마는 실용성이 결여된, 돈이 드는 모든 물건과 행동을 싫어한다. 나는 그걸 알뜰함의 다소 과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파리바게뜨 빵을 먹고 싶어도 그냥 시장빵을 먹는, 그런 비슷한 많은 일들에 불평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수리비' 앞에서는 돌변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빨리만 고쳐 주세요,라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심지어 그 말이 진심이었다. 아이스박스 하나, 카네이션 한 송이, 파리바게뜨 단팥빵 하나 사는 돈을 아까워하는 양반이 수리비 이삼백만 원을 쓴 후에는 더없이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평생 져 본 적 없지만 오랫동안 독촉받던 빚을 다 갚은 표정이랄까. 정가가 정해진 일도 아니고 그냥 부르는 게 값인 일에서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니, 그런 말을 왜 하냐고 절대 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래야 빨리 고쳐 주는 거라고 했다. 맙소사.


앞으로도 재작년이나 작년처럼 수도관이 터질 확률이 높다고 나 역시 생각한다. 그러면 사람을 불러 고치면 되는 거고 고치다 고치다 안 되면 수도관 전체를 교체하는 공사를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때그때 순리대로 상황대로 해 나가면 되는 거지 그 정도 일에 건물을 팔고 이사를 가자니 참 이해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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