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라는 주식은 오르지 않고 그의 짜증 지수만 급등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5월과 함께 청첩장들이 날아오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오는 전화도 늘었다. 고향집에도 친지들의 청첩장이 일요일 오전의 위층집 공사 소리처럼 난감하게 찾아 드니 전화기 너머 늙으신 엄마의 목소리도 뾰족해졌다. 몇 년 전까지 너는 언제 결혼해서 축의금 회수할 거냐고 하시더니 작년부터는 받지도 못할 이놈의 축의금만 주구장창 내고 있다고 하소연하신다. 드디어 축의금 받을 일을 포기하신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5월 들어 그의 부서에서는 매주 결혼식이 터지고 있다. 따라서 매주 축의금을 두고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런저런 회사 동료일 뿐이니 5만 원만 낼까? 요즘 5만 원 내면 내고도 욕먹는다는데 10만 원은 내야 하나? 아니지, 자기가 신혼여행 가면 내가 회사에서 뺑이질까지 대친 쳐 주는데 오히려 내가 돈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지, 요즘 물가가 얼만데 5만 원이면 내 밥값밖에 안 되겠네, 그럼 5만 원만 송금하고 결혼식에는 가지 말까? 도대체 나는 받지도 않을 축의금을 왜 줘야 하지? 비혼 선언자들에겐 축의금 안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고민들을 매주 하다 보니 진절머리가 났다.
그러던 차에 오늘 직원 게시판에 조회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쉬지 않고 올라가는, 샷추가를 듬뿍한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식곤증을 한 방에 날려 주는 반가운 소식이 올라왔다.
'직원 노조에서는 회사에 비혼 축의금 제도 도입을 요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공정한 문장 아래에 불공정하게도 찬성과 반대의 댓글이 반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의 회사에서는 결혼과 출산이라는 실적을 낸 직원들에게 주는 혜택이 꽤 많다. 결혼을 하면 축의금은 물론 유급 휴가도 일주일 준다. 출산 휴가도 있고 자녀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출퇴근 시간도 조정할 수 있으며 자녀가 대학교에 입학하면 노트북을 지급하고 대학 졸업까지 학자금도 지급된다. 어마어마한 금액 아닌가? 그 돈 중 상당 부분은 그 같은 비혼자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이다.
그는 궁금하다. 사내의 복리후생 제도 대부분이 기혼자를 우대하고 있는데 결혼과 출산은 업적인가? 일을 잘해 포상금과 휴가를 주는 것이야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적인 혜택을 주는 것은 불공정 아닌가? 과거에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회사를 다니다 보면 결국 결혼을 하니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퇴사율도 높고 비혼 선언율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데 왜 제도는 바뀌지 않는가? 게다가 결혼과 출산을 해서 룰루랄라 휴가를 떠난 직원들의 빈자리는 누가 다 메우는데? 애초에 결혼 여부를 복지 수준을 결정짓는 잣대로 활용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회사에서 주는 혜택도 혜택이지만 국가나 지자체에서 주는 혜택도 있는 것으로 안다. 임신 중 혜택이나 출산장려금 등은 쥐꼬리만 하니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아침마다 온갖 불쾌한 신체 접촉이 난무하는 와중에 성추행범이 될까봐 긴장까지 해야 하는 지하철에서 자주 비어 있는, 그는 평생 앉을 일 없는 임산부석을 보면 한숨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또 요즘 심심찮게 출산하면 집 한 채, 출산하면 1억 같은 황당한 구호가 등장하여 결혼 계획이 없는 그에게 박탈감을 안기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심각한 것은 아파트 청약 당첨이라는 황금알을 낳으려면 배우자와 자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내와 아이가 없으면 새 아파트에서 살 생각은 하지 말라니, 결혼을 하지 않으면 새 아파트 당첨은 불가능하다니 이건 정말 너무 불공정하다.
그녀는 출근하자마자 평소처럼 직원 게시판부터 살폈다가 깜짝 놀랐다. 늘 일등으로 출근하는 부장인 그녀보다 빨리 게시판에 접속한 직원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무슨 일이 터졌구나!..... 비혼 축의금? 이건 무슨 소린가? 결혼을 하지 않아야 축의금을 준다는 뜻인가? 결혼을 하지 않아도 축의금을 준다는 뜻인가? 어느 쪽이든 이상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뭘 축하한다는 말인가?
경조금이란 결혼하고 아이를 낳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힘드니까 위로의 차원에서 회사가 주는 돈이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아도 축의금을 준다면 조의금은? 입사하기 전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나 돌아가실 부모님이 안 계서도 조의금을 줘야 하나? 흔히 본 것처럼 지금은 비혼이지만 나중에 결혼할 수도 있지 않나?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에 결혼과 출산도 하나의 업적 아닌가? 우리 같은 은행뿐 아니라 모든 기업이 결국 인구가 줄지 않아야 이익을 창출하는 거니까.
그녀는 미혼이라 한 번도 누린 적 없는 혜택을 기혼 직원들이 누리는 것을 늘 보지만 전혀 부럽지 않다. 입사 시험을 볼 때라든지 입사 후 역할 분담이나 승진 심사 때 그녀는 미혼이라 덕을 본 것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부 민간 기업에서 공정에 민감한 MZ세대들이 입사하면서 비혼 선언만 해도 축의금과 유급 휴가를 준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일하는 은행은 국책 기관이다. 정부에서는 출산 장려를 위해 화수분에서 퍼내듯 돈을 쓰고 있는데 명색이 국책 기관에서 비혼 축의금을 준다? 그녀의 아버지 세대 때는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면 축하금을 주는 것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공부를 못해서 대학 진학에 실패한 자녀를 둔 직원들에 대한 차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자녀가 스무 살이 되면 모두 축하금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녀는 별 관심이 없지만 지금도 대학 학자금 지급을 두고 차별 논란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자식이 없는 기혼자나 미혼자는 누릴 수 없는 혜택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럼 요즘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에 무상급식이라던데 그에 상응하는 돈도 모두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녀는 기혼자들을 부러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볼 때마다 측은하다. 그녀가 에너지를 만땅으로 충전하고 생기 넘치게 출근하는 월요일에 기혼자들은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있기 일쑤다. 그녀가 퇴근 후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식사와 가벼운 술 한 잔을 하거나 자기 계발을 위해 어학원에 갈 때 기혼자들은 저녁 거리를 장만하러 마트로 향하거나 애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학원으로 허둥지둥 달려 가기 일쑤다. 몇 년 전 코로나가 터져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자 입주 도우미를 구하거나 친정과 시댁에 비굴하게 매달리거나 강제 퇴사에 내몰리는 기혼 여직원들도 숱하게 있었다.
국가를 위해서 애를 낳은 것은 아니겠지만 애를 낳아서 고생하는 그들이 국가에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은 맞지 않은가. 결혼만 하고 애를 안 낳을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결혼이라는 것은 출산의 직전 단계인 것은 맞지 않은가. 그런 그들에게 축의금 좀 주고 혜택 좀 준다고 뭐가 불공정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