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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Jul 15. 2022

휘어진 오이

나도 이런 모습으로 자라고 싶진 않았어.

늘씬하게 쭉쭉 뻗은 남들처럼

그렇게 멋지게 크고 싶었다고!


모두가 수군거렸지.

너는 루저야.

너는 멋지지 않아.

너는 실패했어.


누구도

내 속을 들여다보지 않았어.

내 안에 품은 씨앗들.

내일을 꿈꾸는 나를.


학교 텃밭에 오이를 심었다.

앞에는 상추와 쑥갓, 양배추를 심고 그 뒤에 고추와 방울토마토, 맨 뒷줄에 오이 모종 3개를 심었는데 오이가 너무 잘 자란다.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오이 중에는 공간이 좁아 심하게 휘어있는 것도 여럿 있다.


"오이는 쭉 뻗어야 좋은 건데, 저렇게 휘어 자라면 상품 가치가 없지."

학교 지킴이 할아버지께서 휘어진 오이를 보며 말씀하셨다.

'상품가치가 없는 오이'.

왠지 뜨겁게 비추는 햇살 아래서 열심히 자라주고 있는 오이에게는 붙이고 싶지 않은 이름표다.


휘어진 오이 하나를 소중히 떼어내어

오이를 좋아한다는 우리 반 ㅇㅇ이에게 선물했다.

오늘이 생일이라는 ㅇㅇ이는 오이가 말굽처럼 생겨 너무 멋지다고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소중히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

좀 휘어서 자라면 어때?

잘라보면 똑같은데.

맛도 똑같고.


구부러지고 휘어진 모습이지만

생명, 그 존재 자체로 이미 가치 있음을

조용히 다가가 말해주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오이생이

누군가의 인생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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