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길을 걸어 또 하나의 궁궐으로

덕수궁(德壽宮) 가는 길, 대한문(大漢門)

by baekja

경희궁을 다 보고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정동길로 들어섭니다. 한때는 덕수궁 권역이기도 했고, 근대시기 공사관이 가득했던 곳이기도 했던 이곳은 서울에서 근대의 흔적을 쉬이 찾을 수 있는 몇몇 공간 중 하나입니다. 프란치스코회 건물과 1912년부터 있었다는 한성교회를 지나 1945년 만들어진 창덕여자중학교를 지납니다. 서양식 근대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꽤나 오래 된 건물들이고 공간들입니다. 물론 근대 건물만 있지 않습니다. 주한캐나다 대사관과 국토전시박물관은 정동길이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공간임을 보여주는 것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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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창덕여자중학교, 오른쪽 주한캐나다대사관


정동길에서 가장 근대 느낌을 주는 건물은 이화여자고등학교와 신아기념관입니다. 이화여자고등학교는 1886년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만들어진 이화학당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학과가 1910년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이화학당의 근본이 되는 것은 이화여자고등학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1886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국가등록문화재인 심슨기념관(1915 건립)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증명하고 있죠. 100주년 기념관이라는 이름이 정문에 붙어 있는 것만 봐도 그 긴 역사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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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기념관은 1930년대 한반도에 재봉틀을 보급한 미국의 싱거미싱사가 사용했던 사옥으로 해방 후에도 싱거미싱사가 사용하다 1969년 신아일보에 매각 되었습니다. 그 이후 1980년 5공화국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신아일보가 경향신문에 강제 통합·폐간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는 1층에 오드하우스라는 예쁜 브런치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어 많은 이들이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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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기념관을 지나 정동극장에 눈길을 주고 나면 앞에 회전 로터리가 나옵니다. 플라스틱 장미로 만들어진 예술품이 눈길을 끄는데 장미가 있는 언덕길로 올라가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을 볼 수 있습니다. 1928년 지어져 경성복심법원, 경성지방법원으로 사용되다 해방 이후에는 대법원으로 사용되었고, 1995년 서초동으로 대법원이 이전하면서 건물이 비게 되었습니다. 이를 활용하여 2002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으로 사용 중입니다. 미술 전시회를 좋아하다보니 이 정동길에서 가장 자주 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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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덕수궁 돌담길과 마주합니다. 끝까지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로 유명한 이곳은 평일 오후면 직장인들이 산책 겸 걷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주말이면 나들이객과 버스킹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죠. 덕수궁 돌담 아래서 펼쳐지는 각종 소규모 공연들은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궁궐과 민가를 나누기 위한 권위의 상징이었던 돌담이 다양한 공연을 하는 열린 공연장이 되어 누구나 문화생활을 즐기는 곳이 되었다는 곳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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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을 따라 돌면 이제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이 나옵니다. 서울시청을 앞에 두고 서있는 대한문은 이때는 월대 재현 공사 중이어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월대 재현 공사가 끝났다고 하니 부담 없이 대한문의 모습을 제대로 보실 수 있을 듯합니다. 다른 궁궐의 정문들과 달리 대한문에는 가운데에 ‘화(化)’ 자가 없습니다. 이는 원래 대한문이 덕수궁의 정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고종 33년(1896) 덕수궁을 중건하면서 정문은 원래 남쪽의 인화문(仁化門)이었습니다. 하지만, 1900년대 동문인 대안문(大安門) 앞에 방사선의 새 도로가 확장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이 대안문을 덕수궁의 출입문으로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고종 39년(1902) 새 중화전(中和殿)을 지으면서 남쪽 궁장이 확장되며 궁궐 정문 기능을 하던 인화문이 없어졌습니다. 고종 41년(1904) 덕수궁에 화재가 나 내전 일대의 전각들이 거의 불에 탔고, 대안문도 그리 되었습니다. 이에 고종 43년(1906)에 대안문을 중건하고 이름을 대한문으로 바꾸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양이 창대해진다.’는 뜻의 이 문은 이미 국운이 쇠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자주정신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조선과 대한제국은 쇠하였고, 그 시기의 정문이었던 대한문은 당연히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1914년 태평로가 뚫리면서 대한문도 물러나 앉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수모를 지나 해방이 되어서도 대한문은 계속 움직여야 했습니다. 1961년 태평로가 확장되면서 궁 담장이 허물어지고 투시형 담장이 섰고, 1968년, 또 한 번의 태평로 확장으로 궁정과 분리되어 도로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1970년이 되어서야 서쪽으로 밀려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한문을 옮길 때 다 해체해서 옮긴 것이 아니라 기와만 빼낸 후 결구를 묶어 그대로 밀었다고 합니다. ‘대한문이 걸어간다.’고 할 정도였다니 그 모습이 무척 재밌었을 것 같습니다.


덕수궁을 자주 오고, 지나가는 덕에 대한문의 모습을 자주 보지만, 멈추지는 않습니다. 이 근처에서 매일 시위가 일어나고 앞의 공간이 꽤 협소하기 때문입니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행사라도 하면 사람들로 대한문 앞 공간이 가득 차지요. 거기다 최근 한 일 년간은 월대 공사까지 했으니 정말 대한문 앞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월대 재현 공사가 끝난다고 해도 공간이 넓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궁궐의 정문다운 권위만큼은 어느 정도 갖출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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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2019년의 대한문, 오른쪽, 2022년 가림막에 가려진 대한문


이제 정문인 대한문을 보았으니 본격적으로 덕수궁을 관람할 차례입니다. 대한문 옆의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하거나 교통카드나 신분증을 꺼내고 고종과 함께한 근대 궁궐 덕수궁의 권역 안으로 들어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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