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산사에 비만 세찬데

사찰기행-장흥 보림사

by baekja

보림사가 위치한 유치면은 산골 중의 산골로 유명하여 보림사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산골짝에 위치한 보림사는 당연히 여러 산봉우리들로 둘러 싸여 있을 수밖에 없지요. 작은 하천만 앞에 흐르고 그 뒤로는 쭉 산봉우리가 이어지며 보림사가 위치한 평지를 제외하면 전부 산봉우리밖에 없습니다. 원래 이런 보림사를 들어올 때 가장 인상적이었어야 할 진입로는 이미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된 지 오래이며 보림사의 앞마당은 이미 주차장이 되어 버려있었습니다. 사세가 많이 기운 절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겠지요.


주차장에서 내리고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며 걷는데 바로 앞에 장중한 일주문이 있었습니다. 가지산 보림사라고 적힌 일주문을 지나고 보물로 지정된 목조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을 지나 절에 절의 마당에 다다르자 아주머니를 반기는 다른 분이 나오셔서 아주머니를 맞이해주었고 저와는 저절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웬 개들이 달려 나와 반갑다며 뒹굴고 짖더군요. 대부분의 전각들이 불에 타 사라져 텅 빈 느낌을 주는 절의 마당을 개들이 채우고 있는 듯했습니다. 정말 신기한 점은 개들을 전부 풀어 키우고 있었다는 점인데 이 점만 봐도 이 절에 사람들이 얼마나 적게 찾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면 개들을 묶어놓아야 했을 테니까요.


그런 반가운 개들의 인사를 뒤로 하고 넓디넓은 보림사의 모래 마당을 쭉 살펴보았습니다. 산봉우리들 아래 자리 잡은 잘생긴 평지. 과연 명당이더군요. 천왕문을 보고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대적광전과 보림사의 동서 3층 석탑과 석등이었지만, 이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오른쪽으로 틀어 대웅보전부터 보았습니다. 보림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온 사람이라면 분명 이 오른쪽에 보이는 2층의 대웅보전에 마음을 크게 빼앗길 것입니다. 한국전쟁 전까지도 국보의 자격을 가지고 있던 이 큰 건물은 한국전쟁 이후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 이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이 산속에 이리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을 지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조선 후기 화엄사 각황전, 금산사 미륵전, 법주사 팔상전과 같은 대형 목조건축이 지어지던 시대에 같이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앞의 건물들이 주는 압도적인 느낌과 아름다운 미감을 생각하면 타버린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하지만, 복원된 건물을 바라보고 있더라도 예전 보림사의 위용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들어본 적조차 없는 절인 보림사는 언제부터 이러한 위용을 갖출 수 있었을까요? 장흥 가지산의 보림사는 남원의 실상사와 더불어 나말여초의 선종 대표절인 구산선문 중에서도 근본에 가까운 절입니다. 이미 나말여초 때부터 그 명성이 널리 퍼진 절이었던 것이지요. 원래는 통일신라대의 전성기에 원표대덕이 인도까지 유학한 후 세운 화엄종 사찰이었지만, 헌안왕이 보조선사 체징을 이곳의 주지로 모신 후 선종의 유서 깊은 사찰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미 통일신라시대부터 거대한 규모였던 보림사는 이후에도 중창과 중수가 계속되면서 조선후기까지도 그 규모를 유지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빨치산의 근거지로 주목되면서 불에 타게 되고 한산한 절이 되었습니다. 그 유서 깊은 절이 한순간에 타버렸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대웅보전 옆의 명부전을 지나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 옆에 보물로 지정된 보조선사 승탑과 보조선사 승탑비가 있음을 알고 그곳으로 천천히 향하는데 갑자기 전에 봤던 개와는 거대한 개가 나타나 저에게 으르렁거리더군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스님이 나타나 개를 잡으러 오시더군요. 개는 스님을 보자마자 어슬렁어슬렁 도망갔습니다. 숨이 차 헐떡대며 달려오신 스님이 개가 물지는 않으니 걱정은 하지 말고 잘 구경하다 가라고 하셨습니다. 스님이 바로 가자마자 당황한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습니다.


계단을 오르자 분홍빛의 꽃이 나타나더군요. 무궁화를 닮았지만, 무궁화가 아닌 것 같아 후에 동생에게 물으니 한참을 찾아서 미국 부용이라는 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당최 미국 부용이란 꽃이 왜 거기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만 분홍빛의 오묘함이 마치 연꽃과 같아 생각보다 절의 분위기에는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꽃 옆의 현대에 새로 세운 비석을 지나쳐 계단을 올라가면 우리는 보조선사 승탑비를 보게 됩니다. 잘생긴 돌거북과 받침대의 구름무늬가 인상적인 보조선사의 승탑비는 보조선사의 행적을 적고 있습니다. 당나라로 유학을 다녀온 후 염거화상의 도를 이어받아 가지산문을 크게 일으켰다는 것이 그 비문이 간단한 요약이 되겠습니다.


사실 승탑비 보다는 돌계단의 위에 있는 승탑이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뒤의 돌담과 나무, 풀들이 에워싸고 있는 승탑은 절의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절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승탑은 완벽하게 보존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육중하고 거대한 느낌을 주어 이 승탑이 보림사를 크게 일으킨 보조선사의 것임을 알리는 무게감이 있었습니다. 지붕돌에 낀 이끼에서는 그 오래된 세월이 느껴졌지요. 오랜 세월 보림사를 지켜온 승탑의 세월이 와 닿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세월과 더불어 이곳을 아름답게 하는 노란 백일홍과 붉은 봉선화는 자칫하면 어둡기만 할 수 있는 세월의 흐름을 조금 밝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승탑의 옆에는 두 손을 말아 쌓은 작은 돌부처가 있었는데 머리는 온데간데없어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대단한 미감을 가진 작품은 아니었지만 제법 귀여운 맛이 있었을 것 같은데 머리가 없다니. 그 와중에 불상의 머리 부분에 돌탑을 쌓아 놓은 이가 있어 그 어울리지 않음에 얼굴을 찡그렸다가 무슨 생각으로 돌을 쌓았을지 궁금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궁금증은 세찬 비가 쏟아지면서 사라졌습니다. 이미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지만,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더군요. 저는 바로 천왕문의 옆에 있는 초가 정자에 앉아 비를 피했습니다. 비를 피해 가방을 풀고 앉는데 옆의 성보박물관을 지키는 개들이 시끄럽게 짖더군요. 몇 분을 그렇게 짖고 나자 제 풀에 지쳐 짖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이미 절밖엔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빗소리만 쏴아아 텅 빈 공간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 정자 앞으로 보이는 대적광전과 두 기의 3층 석탑과 석등이 어찌나 구름 덮인 산과 잘 어우러지는지 감탄하며 여행 중 찾아온 잠시의 고요한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한 30분을 기다렸을까요? 비가 잠시 멎었습니다. 바로 옆의 성보박물관으로 가보았으나 코로나와 우천으로 인해 문을 열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앞에 보이는 3층 석탑과 석등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보림사의 동서 3층 석탑은 통일신라시대 3층 석탑의 기본을 충실하게 따른 아름다운 석탑이었습니다. 또한, 상륜부가 거의 유일하게 완벽히 보존된 석탑으로 다른 통일신라시기 석탑의 복원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사이를 지키고 있는 팔각형의 석등도 거의 완벽한 보존상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 석등 또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제법 안정감을 주는 양 석탑에 비해 석등은 날씬하여 상승감을 주어 서로 대비되는 어울림이 무척 눈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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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과 석등을 한참을 바라보다 대적광전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대적광전도 불에 타고 새로 복원한 것이기에 건축적 가치는 크지 않고 미술사적 가치가 큰 것은 안의 철조비로자나불상이라 하겠습니다. 실상사의 철조여래좌상이 철의 무겁고 둔탁한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단순하면서도 장중한 미가 강했다면 보림사의 철조비로자나불상은 철의 무거움에서도 세련됨을 느낄 수 있다는 미적 예술성의 최고 경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옷 주름 하나하나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었으며 지긋이 내려다보는 듯하면서도 감은 듯한 눈의 표현은 이 세상 만물을 천천히 살펴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조용한 대적광전에 홀로 서서 세련되면서도 무게감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미술을 통해 부처가 보고 있는 또한 존재하고 있는 초월의 세계를 이토록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철조비로자나불상이 주는 감동에 젖어 잠시 절의 한적한 분위기를 느끼며 잠시 절의 경내를 돌아다니다 문득 일주문과 천왕문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천왕문과 일주문은 유일하게 한국 전쟁 때 불에 타지 않은 보림사의 건축물로 둘 다 조선 후기의 건축물입니다. 둘 다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고색창연한 맛이 있어 볼만합니다. 천왕문과 일주문의 건축보다는 사실 보림사의 사천왕상이 훨씬 유명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천왕상으로 유일한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진 사천왕상이지요. 사천왕상의 칠을 새로 해서 그런지 큰 감동을 받지 못하고 저는 바로 일주문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마 원래는 더 컸어야 했을 일주문은 별로 크지 않습니다. 아마 원래 있었을 진짜 일주문은 불에 타고 뒤의 해탈문을 지금 일주문이라 칭하고 있으니 일주문 또한 사세를 따라가는 모양입니다. 다만 가지산 보림사라는 절의 명칭 자체에서 느껴지는 그 전통과 문화의 깊이는 숨길 수 없었습니다. 인도와 중국을 거쳐 그 후의 불교 중심이라는 의미에서 보림사라 칭하고 산을 가지산이라 칭하였으며 불교사적으로는 인도, 중국, 한국의 보림사를 통틀어 3보림이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일주문에 적힌 보림사의 명칭에 담긴 무게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보림사의 문화적, 역사적 깊이를 다시 생각해보고 있으려니 비가 다시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정자에 앉아 한적함을 즐기는데 무언가 보지 않은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보림사의 동승탑과 서승탑이었는데요. 어디 있는지 찾아보니 현 보림사 경내의 바깥에 있었습니다. 보물인데도 불구하고 정확한 위치가 초록창의 지도로 뜨지 않아 곤란해 하던 중 문득 일주문 옆에 있는 관광안내소가 생각났습니다. 관광안내소에 길을 물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우산을 꺼내들고 세찬 비를 맞으며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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