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에게서 느낀 정

사찰기행-보림사~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

by baekja

한 일 분쯤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가 하늘에서 땅으로 쏟아 부어졌다는 표현이 정확할 겁니다. 이미 1분 만에 전부 말랐던 제 바지가 다시 젖었으니까요. 정확히 언제 올지 모를 버스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에도 SUV가 제 옆에 섰습니다. 다시 한 번 창문이 열렸고 이번엔 영어가 들리더군요. 웬 백인이 저에게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어딜 가냐고 묻기에 장흥터미널이라고 대답하니 어딘지는 모르겠고 일단 타라고 말하더군요. 다시 히치하이킹을 당해버렸습니다.


일단 어디든 크게 멀지만 않으면 데려다 줄 테니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라고 하더군요. ‘Jangheung Terminal.'을 치는데 기분이 묘했습니다. 일단 태워준다니 탔고 어디든 데려다 준다니 찍었는데 당최 외국인이 어떻게 보림사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차 안에서는 고요한 명상음악이 흐르고 있었기에 이 사람이 불교를 좋아한다고 대충 생각해두었습니다. 먼저 여행을 왜왔는지를 묻더군요. 제 전공이 역사라서 이런 문화유적지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안 되는 영어로 말하고 제가 제일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떻게 보림사라는 절을 찾아서 왔나요?”라고요.


답변은 제 예상을 상회했습니다. 자신은 저 절이 어떤 절인지 전혀 모른다고 말하면서 그저 자신은 절을 돌아다닐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행은 1주일 전쯤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한 여행이며 현재 코로나가 가득한 지금 바로 프랑스로 갈 수 없어 휴가를 쓰고 전라남도의 절들을 아무거나 찾아다니며 돌아다니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묵직한 답변에 당황했지만, 차를 태워준 그 외국인은 저에게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자신은 불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지만 산사에서 주는 그런 느낌들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총평은 “Good."으로 끝났지요. 사찰에서 주는 초월적인 느낌이 외국인에게도 참으로 많은 감명을 주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후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해 놀랐습니다. 이야기하던 중 그가 하는 일과 그의 조국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었는데 그는 프랑스 북부에서 태어났고 만부지역에서 해군으로 복무하다가 배 관련 엔지니어 일을 하던 경험을 살려 한국의 조선소에 취직했다고 합니다. 그는 울산과 거제를 거쳐 지금은 목포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꽤 오랜 시간 살았는데 한국은 참 좋은 나라라고 하더군요. 중간에 저의 다음 목적지인 광주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광주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어쩌다보니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흥미롭게 들어주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에 대한 마지막 평이었습니다. ‘왜 한국인들은 프랑스의 여러 혁명에 대해서 잘 알고 현대사에 관해 잘 알면서 프랑스인은 한국사를 하나도 모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서양 열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관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프랑스인이 그 정도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매우 놀랐습니다. 그는 참 한국에 정이 많이 들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에게서 남도의 정이 느껴지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니까요.


30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장흥의 시가지로 들어섰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남기고자 같이 사진 한 장 찍자고 말했는데 흔쾌히 받아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내릴 때 차 앞에 있는 번호를 찍어다가 카카오톡으로 자신에게도 보내주라는 이야기까지 하더군요. ‘역시 한국은 카카오톡이지.’라고 속으로 생각하고는 내려서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서로 좋은 경험이었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발하며 가장 길지만 가장 이색적이었던 히치하이킹이 끝났습니다.


터미널에서는 방금 막 광주행 버스가 출발한 참이었습니다. 2시의 광주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대략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기에 주머니에 넣어둔 자두를 꺼내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한 할머니께서 오셔서 자신은 해남을 가고 싶은데 어떤 버스를 타야하냐고 물으시더군요. 아직 시간이 멀었으니 기다리라고 하시고 제 버스보다 먼저 해남 가는 버스가 오니까 제가 알려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눈이 침침하셔서 계속 버스를 물으시던 할머니는 제 친절한 답변에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버스가 오자 가셨습니다. 그렇게 30분을 혼자 있다가 광주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눈 좀 붙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피곤하지는 않았는지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창문 밖으로는 빗줄기가 점점 거세져 오늘이 장마철의 절정이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중간 경유지로 화순터미널을 거쳤는데 물이 불어나 꽤 넘쳐흘러서 이미 터미널 주변의 상가들은 문을 다 닫았더군요. 생각보다 이번 여행의 마무리가 쉽지 않을 것임이 예상되었습니다. 광주 시내를 지나는데 하천은 많이 불어나 하천의 주변에는 경찰관들이 전부 배치되어 있었고 도로에서도 바퀴가 절반 정도 물에 잠기는 곳이 간혹 보일 정도로 비가 무서운 기세를 보여주었습니다.


두 시간 만에 도착한 광주터미널에서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이 있는 금남로 4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타야했는데 광주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농성역까지 채 1km가 되지 않았음에도 신발, 양말, 바지까지 전부 젖었습니다. 인도에 물웅덩이가 없는 곳이 없어 젖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지요. 농성역에서 지하철을 타는데 금남로 근처의 광주천이 범람할 위험이 있으니 대피하라는 경보 문자가 계속 울렸습니다. 저는 심각함을 느꼈지만, 이미 온 김에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을 보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십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금남로 4가역에 내렸습니다. 지하철역에선 꽤 물이 쏟아졌는지 직원 분들이 물을 치우고 계셨고 지상에 나와서는 도로에서 물이 역류되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에 도착하자 그런 걱정은 사라지고 처음 만나는 광주민주화운동의 기록을 만나볼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문을 열고 기록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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