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로의 상처를 보여주는 곳

사찰기행-전일빌딩, 상무관

by baekja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바로 보이는 구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의 높게 자리한 빌딩인 전일빌딩은 사실 5.18민주화운동 사적지로 등재 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등재된 것은 2017년으로 2016년 빌딩을 리모델링하던 중 무언가가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전두환의 헬기 사격명령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준 것인데요. 헬기사격의 선명한 탄흔이 발견된 곳입니다. 탄흔은 총 245발이 발견되어 지금 전일빌딩245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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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는 5.18을 추모하는 몇 가지 미술작품이 보이고 그 위로는 5.18을 보도한 언론들을 기억하는 공간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전일빌딩은 다목적 공간이고 전일빌딩에서 5.18의 상처를 보여주는 공간을 보고자 한다면 10층으로 가야합니다. 하지만, 저는 10층으로 가기 전에 잠시 전일빌딩의 옥상에 올라 그 바로 앞의 구 전남도청을 바라보며 잠시 5.18부터 10일 동안 지속된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였던 그곳을 보며 잠시 5.18민주화운동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상상을 접고 내려오니 대략 6시쯤 되었더군요. 내려오자마자 도슨트를 찾았는데 도슨트 분께서 바로 출발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빨리 쫓아갔습니다. 막 5.18민주화운동의 전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계셨습니다. 전개 과정은 사실 기록관의 설명이 훨씬 자세하였지만, 도슨트가 달랐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었습니다. 기록관에서는 전문 교육을 받은 젊으신 분이 깔끔한 설명으로 5.18에 대해 쉽게 알 수 있게 설명하셨다면 전일빌딩의 도슨트 분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역사를 기억하며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중·고등학생이셨던 도슨트께서는 처음에 홍보를 하며 시위에 참여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시위가 격화되고 유혈사태가 일어나자 10대였던 사람들을 시위대 측에서 집으로 돌려보내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다만 이미 광주의 길목 구석구석을 계엄군이 막고 있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홍보물을 어떻게든 몸속에 어떻게든 숨기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계엄군이 붙잡아 신체검사를 하려고 했답니다. 이에 병원으로 출근하는 길이라고 둘러대어 위기를 간신히 넘길 수 있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홍보물들을 모두 아궁이에 넣고 태워버렸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결국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숨기지 못하셨고 듣고 있던 저와 다른 분들은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문득 1학기 인상 깊게 들었던 강의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이 생각났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날조로 몰아가는 것 자체가 참 웃긴 거야.” 지나가는 말로 하셨지만, 장흥에서 들었던 5.18에 관한 경험과 직접 그 상황을 마주한 경험의 기억들을 들어보니 이렇게 많은 기억들이 있음에도 5.18민주화운동의 의의를 훼손하려는 이들이 많은 것이 너무 가슴 아프고 화가 났습니다.


흔히 역사는 기록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사에 와서는 기록에만 의존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질문이 늘어납니다. 현대사의 사건을 겪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에 따라 기록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기록에 의한 역사가 아닌 기억에 의한 역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제주 4.3사건이나 5.18민주화운동이 아직도 논란이 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이죠. 분명 여러 가지 입장의 기억이 있을 것이고 가장 객관적이고 옳은 입장을 취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다만 어느 부분이 가장 객관적일 것이냐는 것은 항상 문제가 되겠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5.18민주화운동은 적어도 광주의 수많은 시민들이 공유하는 기억과 광주를 넘어 전남의 수많은 사람들의 공유하는 기억들이 있는 한 그 공유하는 기억이 역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마 이 날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역사의 한 조각을 들은 것이겠죠.


역사에 대한 이야기에서 넘어와 전일빌딩의 전시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0층에서 9층까지 전시실이 이어져 있으며 최근에 만들어진 만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과거의 상세한 기록보다는 현재 논란이 되는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쟁점을 중심으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문제점을 던지는 것에 대해 정확히 반박하고 비판하고 있지요. 현재까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당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상처를 보여주며 이 상처를 낸 사건은 이러했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전일빌딩의 전시를 한 바퀴 돌고 제가 급히 도슨트 분을 따라가느라 미처 보지 못한 첫 부분으로 다시 왔습니다. 첫 부분은 헬기 기관총의 탄흔을 볼 수 있게 해둔 곳이었습니다. 탄흔의 크기로 볼 때 기관총의 탄흔이 맞으며 각도나 다른 여러 부분으로 봤을 때도 헬기의 탄흔이 맞다고 국과수에서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저는 그러한 얘기보다 이곳에서 이 총탄을 맞았을 시위대들이 매우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국민을 지키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산 헬기의 총탄을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에게 쏘았으니 모순도 이만한 모순이 없겠습니다. 다만 이런 모순은 진짜로 이루어졌고 그 근거가 바로 제 눈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전일빌딩을 내려와 구 전남도청 앞의 5.18민주광장에 서서 둘러보며 하나하나 5.18민주화운동의 사건들에 짜 맞춰 보며 감상에 젖었습니다. 그러다 옆의 상무관이라는 구 체육관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상무관은 5.18민주화운동이 끝나고 시신들이 안치되어 있던 곳으로 무더운 초여름 날씨에 시체 썩은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음에도 사람들의 통곡이 그치지 않았던 곳입니다. 상무관에 놓인 시체들을 의사들이 사인을 파악해서 정부에게 넘겼는데 이 때 당시 대부분의 사인이 시민군에 쏜 총으로 맞아 숨진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유가 매우 비참한데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하면 전부 불순분자 처리를 했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런 비참함이 있는 5.18민주화운동의 마지막 공간이 바로 이곳 상무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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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관 안에는 크게 다른 것이 있지는 않고 추모하는 검은색 미술 작품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소극장정도의 크기로 지금으로 생각하면 여기서 어떻게 체육을 했나 싶을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이곳이 온통 시체로 가득차고 울음과 통곡소리로 가득 찼으며 비통한 애도와 슬픔의 분위기로 가득 찼음을 생각하면 그저 마음에는 아픔과 쓰림만이 남았습니다. 상무관의 비참함을 느끼며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자 예전에 5.18민주화운동을 배우면서 느꼈던 투쟁과 혁명의 역사보다는 아픔과 슬픔이 먼저 와 닿았습니다. 이런 감정이 밀려오자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보았던 <목련이 진들>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꽃보다 더 하얗고 순결한 영혼, 영혼들이 꽃잎처럼 아프게 떨어진 것을......


비가 매섭게 내리는 8월의 여름날 저는 40년 전 5월의 고통에 사무치게 공감하며 상무관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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