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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Dec 31. 2024

오늘

오늘 상회

 2024년의 마지막 오늘입니다. 매일 오늘을 사는 것이 어떠셨나요? 저는 솔직히 어렵고 힘들고 지쳤습니다. 처음으로 공황에도 시달려 정신과도 가봤고, 박물관 인턴 면접도 떨어졌고, 운좋게 작은 회사에 취직해 회사 생활을 경험해 봤지만, 끝없는 업무에 무척이나 지쳤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열정적이고, 정신없게 하루를 살았습니다. 2024년의 366번째 오늘인 지금 너무도 지친 나머지 불씨를 다시 태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을 붙잡고, 글들을 써나가는 중이죠.


 브런치에서의 제 행적은 올해 가장 게을렀습니다. 서울로 왕복 4시간의 출퇴근 끝에 남은 것은 끝없는 피로였습니다. 회사 이야기를 써보고자 했으나 글쎄요. 제가 이전에 써오던 삶의 고찰과도 같은 글이나 인문학적 소개 같은 글과는 전혀 맞지 않은 장르가 되어서 고민 끝에 단 하나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글들은 올해 전에 이 브런치북을 끝내겠다는 제 자그마한 다짐조차 지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한테 안타깝고 짜증이 좀 나지만, 어쩌겠습니다. 오늘은 저를 기다려주지 않는 걸요.


 오늘을 파는 상점이 있습니다. 저도 가고 있고, 오늘을 보내고 있는 여러분도 가는 상점입니다. 누군가는 처음 오늘을 사러 가고, 누군가는 오늘을 사러 가지 못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흥에 겨워 오늘을 사러 갈 것이고, 누군가는 오늘을 사러 가기 무척 싫을 겁니다. 그럼에도 모든 이는 삶을 지속하는 한 오늘을 사러 가야합니다. 아주 어릴 적 노는 시간들이 즐겁고 세상이 즐거워보이던 아이는 오늘이 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너무 긴 오늘이라 다 기억하지 못해도 너무 짧게만 느껴지던 오늘이 아쉽기만 했죠. 조금 더 커지고 나서는 오늘이 빨리 가기를 바랐습니다. 어른의 자유를 생각하면서요.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만나고 추억이 쌓여가면서 오늘을 마음속에 쌓아가는 습관이 생겨납니다. 삶에 찌들어 오늘이 너무 빨리 지나가도 그속에 숨겨진 빛나는 것들이 오늘을 웃으며 보내게 합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오늘이 지나고, 소중한 사람의 오늘이 더 이상 오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오늘마저도 포기하고 싶지만, 여전히 오늘은 다가오고 그 오늘 속에 삶의 즐거움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슬픔을 딛고 나아간 오늘엔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오늘은 지나갔고, 다가오며,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오늘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자신의 몫이지만, 오늘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집니다. 제 올해 오늘들은 열정적이었지만, 지쳐있었습니다. 활활 타올랐지만, 붉은 빛이 아닌 잿빛 불꽃 같았습니다. 열심히 살았다고는 생각했지만, 정말 간만에 아쉽다고 생각한 한 해였습니다. 작년의 오늘, 정말 이를 악물어가며 써냈던 글들. 마지막엔 글을 읽어가며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고생했다고 다독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뭔가 빈 기분입니다. 아쉽고 서글픕니다. 아홉 수가 눈앞이라서 그럴까요?

 저도 동화의 주인공처럼 오늘이 너무 길어서 즐거웠던 적도 있고, 빨리 가기만을 바랐던 적도 있습니다. 어른이 막 되고 나서는 오늘이 지나가는 것이 아쉬워 지나간 오늘을 붙잡으려 글을 쓰는 데 집중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오늘이 지나가는 것이 아쉽다기 보다는 오늘이 지나가는 것이 너무 빠릅니다. 작년에는 할 일이 많아 오늘이 지나가는 것이 아쉬웠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이 지나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아쉬움이라는 같은 단어를 썼지만, 느껴지는 감정은 전혀 다릅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오늘은 지났는데. 2024년의 마지막 오늘이 와버렸는데. 아쉬움을 즐거움과 보람으로 극복해가는 내년의 제가 되기를 바라며 노력해야겠죠. 저는 다시 오늘을 사러 상회에 가야할 것이고, 오늘을 담는 병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제게 달렸으니까요. 하늘이 참 맑은 오늘입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하지만, 무엇보다도 흔한 오늘입니다. 지나가고, 다가오며 지금 여러분의 옆에 있는 오늘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처럼 아쉬움이 남는 오늘이 아니라 즐거움이 가득한 오늘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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