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석>
구석에 앉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이나 해가 드는 곳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가지각색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든 평생 남에게 보이는 공간에서 살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나만이 좋아하는 공간, 나만이 꾸미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 공간이 어떤 공간이든 간에 나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한 공간이 아닌 내가 나와 관계를 맺기 위한 공간. 그것을 이 책에서는 나의 구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한 구석에 귀여운 까마귀가 앉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구석. 그곳에 앉아있던 까마귀는 하나씩 자신의 물건을 공간에 채워갑니다. 침대, 카펫, 책장, 화분 등등. 하얀 도화지에 색이 채워지듯이 평범한 구석은 까마귀의 공간으로 변해갑니다. 책도 읽고, 쉬기도 하면서 자기 공간에 애정을 채워가던 까마귀는 텅 빈 벽을 바라봅니다. 벽을 밝은 색감의 다양한 무늬로 채워가다 무언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창을 뚫습니다. 따스한 햇볕이 내려오는 구석에서 까마귀는 더 좋은 휴식을 만끽합니다.
따스한 햇볕이 비추는 집안에서 책 한 권. 누구나 생각하는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그 여유를 즐기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일은 많고, 자신을 방해하는 것들도 너무 많습니다. 주말에도 울려대는 전화들. 불현 듯 찾아오는 불안감. 가만히 않거나 누워 책 한 권 읽지 못하게 하는 세상이 밉습니다. 내 공간이 나만의 공간 같지 않습니다. 내 공간에서도 타인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요즘, 침묵과 고요는 내 공간에서 사라집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내 공간을 오히려 벗어나 여행을 갑니다. 타인과의 대화를 줄이고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요. 하지만, 여전히 여행은 SNS로 실려나가고, 여행에서도 여행 이후의 타인과의 관계를 고려하느라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의 공간은 개방되어 타인에게 읽힙니다.
사실 사람들은 깊은 고요함을 찾고 있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고요함마저도 타인에게 소비되는 하나의 이미지로 읽히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많은 교류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고독함을 원하면서도 더욱 외로움을 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타인과의 교류가 많아지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타인과의 표면적인 관계를 유지하느라 자신은 점점 왜곡되어 갑니다. 왜곡된 자신이 만든 나의 공간은 왜곡되어 세상 전체를 삐뚫어지게 바라봅니다.
외부와 연결된 많디 많은 교류를 잠시 접어두고, 온전히 자신을 바라봅니다. 이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온 현대인들이 모든 것을 비우고 자신과 교류하는 순간 자신의 모자란 점부터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 시선에서 벗어나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내가 만든 나의 공간을 천천히 살펴본다면,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나의 장점들도 다수 보일 겁니다. 온전한 나만의 공간은 나를 대변하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구석을 참 좋아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구석만큼 심리적 편안함을 주는 곳을 잘 없었습니다. 구석은 나만 있을 수 있는 공간 같았습니다. 그 구석에 나만 알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구석에 있어도 그런 행복감과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구석에 있는 것이 불안하고 무언가를 더 해야만 하는 압박감이 느껴집니다. 내 공간에서 본 저도 한심하기 짝이 없죠. 내 공간이 내 공간 같지 않습니다. 까마귀처럼 편안하게 내 두 발 뻗고 생각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그곳에서 머무르고 싶습니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있을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입니다. 그 편안함의 공간을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역설적이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현실인 것을요. 올해 목표는 그 언젠가의 그날처럼 따스한 햇빛을 웃으며 맞고, 책장에서 책 하나 꺼내 작은 미소를 띤 채 책을 읽을 수 있는 제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하고자 합니다. 특별한 나의 공간이 무척 기대됩니다. 올해 말엔 그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제가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