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약 10개월 전 겨울의 끝자락에 지하철 구석에서 시작했던 글은 새해의 시작에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훨씬 전에 끝날 줄 알았던 이 글이 지금에서야 끝난 것은 작년이 무척 바빴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제가 많이 게을렀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합니다. 마지막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표합니다.
작년 이 글을 쓰면서 다양한 고민을 했습니다. 처음에야 불현 듯 떠오르는 동화들을 알맞게 쓰면 되었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동화를 고르기도 어려웠고, 거기에 제 생각을 담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제 고민들을 온전히 담아낼 시간은 회사의 고민을 담아낼 시간에 밀려 머리가 텅 빈 채로 쓴다는 느낌에 막막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글을 쓸 생각을 계속 만들어주었던 것은 주말에 아이들을 체험학습시키면서였습니다.
아이들은 저를 정신없게하고 힘들게 했지만, 무척 순수했습니다. 아직도 국립중앙박물관 고려관에서 아이가 한 질문이 기억에 남습니다. “선생님, 고려에서 원나라에 곡식을 바치는 것은 알겠는데 왜 여자를 바쳤나요?(공녀)”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아찔했습니다. 시간을 끌기 위해 “참 어려운 질문이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걸 옆에서 듣던 다른 분들이 웃으며 “그러게 참 어려운 질문이네, 하하하.”라고 말하시더군요. 욕심이 많은 원나라 황제가 부인을 여러 명 두고 싶다고 말하는 것으로 잘 갈무리는 했습니다만, 수업이 끝나고도 참 많은 생각이 드는 질문이었습니다.
아이들과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아이들은 참 순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순수하다는 것이 착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하게 착하든 순수하게 나쁘든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순수함 그 자체였습니다. 부모님의 모습을 순수하게 따라하든 선생님의 말에 순수하게 반응하든 순수한 모습이 계속 보였습니다. 늘 말과 행동의 숨겨진 의미를 고민하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보이는 그대로를 듣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처음엔 무척 어려웠습니다. 단 두 시간의 시간동안 내 말과 행동이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무척 무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사람이고, 저 또한 사람이기에 서로서로 웃으며 해 나가는 것들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런 즐거움 속에서 점점 아이들의 시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어려워하며, 역사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싫어하는 아이들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등등. 그 과정에서 제 어렸을 때와는 또 다른 교육과정을 아이들이 밟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많은 아이가 돈에 관심이 많았으며, 역사적으로는 현 역사 학계의 방향과는 반대로 민족주의적 교육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이전의 학습 방식이 책과 강의에 가까웠다면, 체험과 영상을 이용한 시각 체험 위주의 학습이 많이 늘어났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 예전에 읽었던 전래동화나 소위 고전이란 것들이 이제는 시대의 의견을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읽어야 할 것은 이제 현재의 동화인 것이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개인의 의견의 소중함, 차별의 부당함, 어른의 관점이 아닌 아이의 시선에서 본 세상이 동화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 내용들은 어른인 제게 깨달음을 주기도 했고, 위로를 주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의 세상에서 벗어난 순수함이 마음 깊이 울림을 주었습니다.
제가 본 동화는 유치했지만, 순수했고, 허황되었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이 동화를 읽고 자라난 아이들이 만들어 갈 세상이 기대되었습니다. 굳이 인문학의 여러 관점을 들고 오지 않아도, 어려운 책을 읽지 않아도 동화의 내용을 맘속에 간직하고 자라난다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 또한 어른이기에 이런 의견을 아이들에게 피력하는 것조차 강요가 될까 무섭습니다. 제가 읽어낸 동화의 이야기들은 지극히 어른의 관점이었고, 지극히 사적인 관점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어른이 본’ 아이들의 시각인 것이죠. 사실 아이들이 제 글을 볼 일은 없을 듯합니다. 아이들이 보기엔 제 글은 너무 어렵고 복잡합니다. 이런 메시지들을 단순하게 던질 수 있는 아이들은 메시지를 복잡하게 던져야하는 제 글을 이해하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며 동화를 읽고, 아이들을 참고하였으나 아이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아이들만 볼 수 있는 순수한 관점과는 달리 어른의 관점은 나이가 들어가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관점이니까요. 딱 1년 전의 저는 사실 시끄러운 아이들이 귀찮거나 아니면, 웃는 아이들이 귀여웠습니다. 이제는 그 아이들이 정말 하나하나의 인격체로서 온전히 존재하고, 그들의 관점이 정말 순수하고, 세상을 좋게 바꿀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미래를 만들고 있는 동화가 소중하다는 것도 알겠고요.
이제 길을 가다보면 아이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하나하나가 빛나고 멋있어 보입니다. 이 또한 어리석은 어른의 관점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저에겐 아이들이 그렇게 보입니다. 그 아이들이 더 멋있게 성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좋은 환경이겠지요. 그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저는 조금이라도 늘 고민할 것입니다.
모자란 어른이 아이들의 시선을 선망하며 써낸 짧은 글들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며 이번 글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