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그곳을 여행할 타이밍이었다.

호치민, 마음 한켠이 서글픈 곳

by 피카타임

집에 호치민 여행 때 사온 '농'이 있다. 농은 야자나무로 만든 그들의 전통 모자이다.
한국에 와서 '농'을 쓸 일은 아주 없고, 보관하기에도 부피가 꽤 나가지만 버리기엔 또 소중한 기분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념품.

모든 여행이 다 좋을 수는 없었다. 베트남 첫 여행이 그랬다. 첫날 탄다공원에 오후 해가 뉘엿거리자 마음이 서글퍼졌다. 유독 그런 곳들이 있다.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낯선 도시의 모습이 새로움으로 다가오지 않고 불편했으며 호치민의 발전에 고취된 현지 지인의 자부심은 끊임없이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 과거 어디쯤인 모습을 보면서 놀랄 일도 좋다 할 일도 하나도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오토바이로 꽉 찬 그들의 도시를 택시 안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오토바이의 배기통 소리 따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말로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그 기분이 달랐다.
그들의 퇴근길.

우리의 택시는 오토바이 인파에 둘러싸여 파도에 방향 없이 몸이 흘러가듯 그렇게 도로 위를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속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분주한 그들의 일상과 확연히 구분되는 그 공간에서 난 하나씩 그들을 뜯어보며 그 도시가 점점 좋아졌다.


동행인 5명 현지 지인 1명. 타국으로의 여행이라는 상황만으로 우린 매 순간 배꼽 빠지게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난 종종 어떤 면에선 우월감에 싸여있었고, 어떤 면에선 열등감에 힘들어했다.
지인들로 인해 여행지에 내 일상을 싸들고 온 기분이 들어 여전히 지치고 피곤했다.
그 여행을 앞두고 난 현지 지인만 의지해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었다. 나의 여행 기대치와 지인의 기준이 틀려 매번 실망스러웠는데 이상하게도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진 않았다.
이렇게 감정적 모순의 연속인 여행이었다.

집안에 아무렇게나 보관되어있는 베트남 전통 모자 '농'을 보고 있자면 그 여행 당시 나의 심리 상태가 뚜렷한 사진처럼 하나하나 다 떠오른다.

종종 난 다시 같은 코스를 밟으며 모든 걸 업그레이드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곳을 편안함과 넉넉함으로 덮어버리고 싶진 않다. 숙식이 불편했고, 마음이 복잡했으며 여행 메이트들이 맞지 않았지만 그 여행은 그 모습으로 남겨둬야만 할 것 같다.

모든 일에는 적합한 때가 있다. 시간이 흐르고 그 의미가 드러나는 일들도 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는 호치민을 여행할 때였다. 지금은 그때 6명의 멤버가 여행을 위해 다시 뭉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때라서 가능했던 일이 분명하다.

여행을 마치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난 이곳을 맘만 먹으면 곧 다시 올 수 있거나 아님 평생 오고 싶은 맘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둘 다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다시 찾아가 보질 못했고, 그 여행 이후 계속적으로 그 시간들이 그리웠다.

종종 비 오고 바람 부는 날 , 난 푸미흥의 한 커피숍이 생각난다.
호치민의 다른 곳과 사뭇 분위기가 다른 그곳에 앉아 지인을 기다리는데 돌연 바람이 분다. 강풍이다. 커피숍 테라스에 야외 테이블들이 손쓸 새 없이 공중으로 붕 떠오른다.

와... 말을 잇지 못한다. 영화에선 저러고 세상이 멈추던데...
짧은 순간 정말 나에게만큼은 세상이 멈춰 있었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 분명하다. 과거의 그 순간이 완벽히 좋아서 추억이 되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내가 그곳에 있었으므로 추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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