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지갑 하나 더

기분 좋은 기념품

by 피카타임

어떤 물건들은 생각지 않은 곳에서 툭 튀어나와 너무 반가운 나머지 눈물이 핑그르르 돌 때가 있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그런 비슷한 감정이 드는 것처럼.
맘에 드는 여행 기념품이 내겐 그다.

난 여행지에서 동전지갑을 사 오는 습관이 있다. 개인마다 기념품을 고르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바라봤을 때 기분이 계속 좋을 것, 실용성이 있어서 두고두고 가지고 다니며 사용할 수 있을 것, 보관이 쉬울 것.
동전지갑은 그 모든 기준에 부합했다.
우연히 서랍장을 정리하다가 대만 여행에서 만난 동전지갑을 보고는 한동안 행복한 추억에 젖다.
가죽공예를 하는 분이 이름의 이니셜을 물어보고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지갑을 만들어줬다.
지갑을 보는 순간, 그날 비가 와서 우비를 입고 다니느라 고생했던 일, 시장에 꽉 찼던 인파, 이것저것 구경거리가 많아서 그 많은 사람들 속에 더욱이 정신까지 쏙 빼놓고 다녔던 내 상태, 더불어 대만 음식의 향신료 냄새까지.
그렇게 시작된 내 여행지의 추억은 내가 잊고 있었던 장면들까지 다 들추어내며 또 시공을 초월하게 해 주었다.

추억을 들추고 있자니 지우펀 골목에 오카리나 소리가 들린다. 골목 초입에 오카리나 가게. 주인아저씨의 오카리나 연주 소리가 비에 젖은 지우펀 골목을 따라 청량하게 퍼진다.
다른 곳을 갈 수가 없다. 늙어 죽도록 꼬박 그곳에 서서 듣고 싶은 소리.
영화에서처럼 오카리나 소리를 타고 지우펀 속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것 같다.
아저씨께 '이것도, 저것도 들려주세요'.
크기 따라 다른 음역을 내는 그날의 오카리나 소리는 평생토록 잊지 못할 나의 기억 속에 들어오게 됐다.
아기자기한 것으로 골라 오카리나 4개를 사 왔다.
일상 속에서 나는 그것을 제대로 불어 본 적이 없다. 서랍을 정리할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오카리나부터 자리를 잡아둔다.
난 그 여행지를 떠나왔지만 여행지의 일부분을 나의 집에 가지고 왔다. 나의 일상의 일부분에 여행지가 들어있다.

물론 모든 기념품이 그토록 사랑스러운 건 아니다.
어떤 식료품들은 고생스럽게 가져왔는데 한국의 마트에 이미 들어와 있었고,
기념품을 살 땐 현지인의 기준으로 사게 되는 건지, 좋다며 사 가지고 온 어떤 화장품들은 한국의 화장품에 비하면 질이 현저히 낮았고,
얼마 전에는 여행지에서 사 가지고 들어온 연유가 누렇게 상해 다 버려야 했다.


그럼에도 부지런히 그것들을 가지고 오는 이유는 여행의 뒤풀이 같은 거다.

그것들을 펼쳐놓고 얼마간 일상에서 소진하는 동안, 서서히 여행지와 건전한 이별을 할 수가 있다.


기억이 세월과 만나면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많은 것을 지워버린다.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길 간절히 바라는 어떤 일들이 있듯이, 어떤 일들은 이렇게 오래 기억하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아주 나이가 먹어 버린 어느 날에도

툭하고 나온 기념품 하나에

나의 행복한 이야기가 길어졌음 좋겠다.


여행 끝에는 항상 새로운 동전지갑이 내 손에 다시 들려있길 소망한다. 그때까지는 닳도록 쓸거라 늘 같은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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