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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임차, 면책조항, 그리고 CGV

마스터리스는 거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나?

by 고니파더

오늘은 마스터 리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체투자 혹은 부동산 금융으로 대변되는 투자 건들을 검토하다 보면 항상 따라오는 단어가 바로 'Master lease' 입니다.


우리말로는 '책임 임차' 정도로 해석이 되곤 하죠.


물류창고 투자 건이나 대형 오피스 빌딩의 경우, 마스터 리스는 금융비용 납입에 있어 매우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핵심 점검사항이 됩니다.


PART 4. 물류부동산 피해자 속출, 주인공은 대기업 물류 < 중요기사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물류신문 (klnews.co.kr)


참고로 예전에는 이 책임 임차라는 용어를 대기업에 국한해서만 사용했는데, 요새는 말 그대로 '개나 소나' 마스터 리스를 사용합니다.


이와 관련 과거 부천에 있는 한 집합상가 투자를 검토하던 때의 일화가 떠오르네요.


당시 심사역이 해당 웨딩홀이 책임 임차 되어 있기 때문에 금융비용 납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길래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브리핑을 하는데 갑자기 '웨딩업체 중에 규모 있는 곳이 어디있지?' 라는 의문이 생겨서 책임 임차인의 실체에 대해 물어보자 듣보잡 중소 웨딩업체라고 하더군요.


더군다나 해당 업체의 대표이사는 물건 소유자의 아들.


더 들을 것도 없이 심사서 들고 회의장에서 나가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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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화난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보통 책임 임차인이라고 하면 그 임차료 지급보증이 확실히 되는 대상을 말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지고 임차료 지급을 할 수 있는 임차인이 진정한 '책임 임차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반드시는 아니지만 결국 임차인이 '대기업' 혹은 '중견기업' 이라는 조건이 붙어야 상기 조건을 충족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그때 책임 임차인이 사모펀드가 투자한 '아펠가모' 같은 체인점이라고 착각하고 협의회에서 동의하려고 했습니다만, 중소기업 / 개인사업자가 확약한 책임 임차 계약이라니...


책임 임차인의 개념을 제대로 모르고 심사를 한 케이스라 한숨이 나왔습니다.


국내 최대 웨딩홀 아펠가모, 1500억 투자 유치 추진 (sedaily.com)


문제는 이러한 책임 임차가 대기업인 경우에도 종종 문제가 된다는 사실.


저도 처음 경험했던 건으로 '대기업이 책임 임차인이 되어도 이런 경우가 발생할 수 있구나' 라고 깨닫게 해준 케이스라고 볼 수 있죠.


언제나 그랬듯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해 볼까 합니다.


바야흐로 2022년 가을.


지방에 있는 영화관 건물을 담보로 한, 리파이낸싱을 모 지점장이 신청했습니다.


책임 임차인은 영화 산업의 1인자 CJ CGV.


늘 그렇듯이 지점장은 '책임 임차인이 CGV 인데 뭐가 걱정이냐' 라고 말하다더군요.


영업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습니다만, 심사역으로서는 몇가지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무엇보다 리파이낸싱을 주선하는 운용사가 뭔가 매우 급해 보이더군요.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저는 그간 임대료 납입 계좌의 잔액을 가져오라고 확인했고, 거기에서 놀라운 숫자를 보게 됩니다.


바로 통장 잔고가 '0'에 가까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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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임대차 계약서로 보자면 금융비용을 납입하고도 매월 남는 돈이 10백만원 이상이었습니다.


36개월이라는 계약기간을 감안했을때 통장에 적어도 3~4억정도의 돈이 남아 있어야 했는데 없더군요.


Equity 투자자에 대한 배당도 없었는데도 잔고가 없다는 것은 이 사업장이 뭔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다시 처음부터 뒤져 보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말씀드리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방문하는 영화관은 CGV나 메가박스가 직접 소유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해당 건물을 소유한 소유자가 따로 있고 영화관 설비투자를 해당 임차인들이 집행하면서 동시에 일정기간의 책임 임차를 확약해 주는 형태로 계약을 체결하죠.


대부분 문제가 없는 계약이지만 복병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기 마련이죠.


바로 코로나 였습니다.


대외 활동이 전면 금지가 되자 영화관은 그야말로 폭망의 길로 들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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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영화관은 텅 비고 미술관도 문을 닫았다 - BBC News 코리아


'대기업인데 임대료 내는데 문제가 있겠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


한두개도 아니고 전국에 있는 수백, 수천개의 상영관이 문을 닫아 버리니 CGV도 버틸수가 없게 됩니다.


다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니 CJ라는 대기업의 대외적인 평판이 있으니 CGV도 임차료를 연체하는 대신에 임대인에게 먼저 감면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대인들이 '무슨 대기업이 임대료를 깍으려 드느냐' 고 이야기 하면서 감면 제안을 거절하게 되죠.


코너에 몰린 대기업 CGV.


늘 드는 생각인데 뭐든 코너에 몰리면 안 좋습니다.


결국 이것이 트리거가 되었고 '이것봐라' 라고 생각한 임차인 CGV.


괘씸한 임대인에게 배째라 전략으로 돌변합니다.


[시그널] 'CJ CGV, 임차료 못 낸다'…영화관 펀드 운용사들, 소송 채비 | 서울경제 (sedaily.com)


법률적 지식으로 무장한 대기업을 무시한 임대인들은 갑자기 임차인 CGV로부터 '임대료 납입할 의무가 없다' 는 유명 로펌의 법률자문 의견서를 우편으로 접하게 되는데요.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임대차 계약서상 작은 글씨로 체결한 Waiver clause. 혹은 liability waiver 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해석하면 '책임 면제서 혹은 면책조항' 정도가 되겠네요.


이 조항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임대료가 납입되지 않아도 연체로 인정되지 않아서 임대인이 퇴거를 요청할 수 없는 사유가 몇가지 적혀 있더군요.


그중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천재지변'


맞습니다.


똑똑한 대기업들은 코로나를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해석되게끔 (물론 코로나가 천재지변인 것은 맞습니다만) 로펌들을 포섭했죠.


결국 이 조항을 통해서 코로나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임차료 납입이 면제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교묘하게 사용합니다.


심지어는 아래와 같이 임대차계약의 해지도 당당히 요구하게 됩니다.


위워크의 파산과 임대차 계약 해지가 오버랩 되는 순간입니다.


‘위워크’ 믿고 해외 오피스 샀는데...파산에 긴장하는 국내 금융기관-인베스트조선 (investchosun.com)


여기까지 분석하게 되면 이 사업장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데요.


'대기업이 책임 임차를 들어와서 안전한 사업장' 이라는 시각에서,


'대기업이 임차인으로 들어와도 어쩔수 없는 망가진 사업장' 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 주게 되죠.


결국 최종적으로 이건은 부결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난리치던 지점장도 조목조목 하나하나 이야기 하니 결국은 물러나더군요.


...


해당 심사건을 오늘 소개한 이유는 심사에 있어서 '당연시' 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AI 심사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이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분석 능력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그 분석능력이라는 것은 끝없는 의심으로 발전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


제가 심의할 때 제일 싫어하는 말이 '여기는 강남이니까 괜찮아'


혹은


'대기업이 책임 임차했으니까 아무 문제없어' 라는 거였는데요.


이런 생각을 통해 분석을 멈추게 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심사하는 모든 분들이 뼈저리게 느꼈으면 합니다. (물론 저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임)


오늘은 여기까지.


Master lease 라는 신기루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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