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꼬박 찾아볼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것에 열성적인 편은 아니지만, 가끔 인터넷 신문의 헤드라인을 보다 보면유독'나 몰라라…'라고 적힌 표현들이 눈에띈다.
따옴표와 점 세 개를찍어야 느낌을 오롯이 살릴 수 있는그 문장은 두더지 잡기 놀이처럼 정치면, 사회면, 생활면을 막론하고 이곳저곳에 등장하는데피해받는 이만 달라질 뿐 내용은 참 한결같다. 정책 실패로 누군가 고통을 받아도'나 몰라라…', 많은 사람들에게금전적 피해를 입히고도'나 몰라라…', 양육비를 모르는 척 '나 몰라라…', 남에게 상처를 주고'나 몰라라…'. 뻔뻔하기 그지없는 내용이 가지각색이다. 국가고 기업이고 개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짠 듯'나 몰라라'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이가 돌연변이 취급을 받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어린아이들이라고 특별히 다르진 않다. 속이 빤히 보여도 '나 몰라라'의 자세로 퉁치는 아이들이 있고, 요리조리한 회피와 거짓말로 뺀질나게 꼬리를 자르며 도망가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라고 해서 '나 몰라라…'자세의 안락함을 모르진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끔,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책임의 무게를 질 줄 아는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아직은 어린 열두 살 남짓 아이들이 기꺼이 좁은 어깨에 책임을 얹고 일을 해결하고자 고군분투하는것을 보면 나는 이유 없이 숙연해진다. 단지 몇 해 적게 살았을 뿐인 이들의 순수한 성정에 감명받곤 한다. 몇 년 전 만났던 재아와 예지가 떠오른다. 말과 행동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자 한 아이들이었다.
열두 살 재아와 예지는 의도치 않은 자신의 행동이 친구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을 때, 기꺼이 책임지고 싶어 했다.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1인 1역할을 맡고 있었다. 청소나 급식 당번처럼 봉사활동 성격이 아닌 일종의 소소한 단기 적성체험이었는데 예를 들면 태블릿을 충전하고 나누어주는 태블릿 도우미, 매일 수학 익힘 숙제를 검사하는 숙제검사자, 월마다 자리를 바꿀 때 아이디어를 내는 자리배치 담당자 같은 역할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이벤트 기획자였다. 이벤트 기획자는 한 달에 한 번, 학급 친구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한 시간짜리 행사를 계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맡았다. 그 해 5월의 이벤트는 '말미잘 술래잡기'였다. 일반적인 술래잡기와 똑같이 넓은 공간에서 한 명의 술래가 다른 사람을 잡는 놀이인데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잡힌 아이도 중간에 술래가 될 수 있었다. 잡힌 그 자리에서 술래의 도우미가 되어 마치 '말미잘'처럼 팔을 휘적휘적 뻗어서 친구를 잡을 수 있다는 규칙이 추가된 놀이였다. 손꼽아 이 날만을 기다리던 아이들 사이로 이벤트 기획자를 맡은 예지가 말했다.
"얘들아, 혹시 집에 뿅망치 있는 사람 있어?"
"왜? 뿅망치가 왜 필요해?"
"아, 강당이 너무 넓어서 뿅망치 같은 게 있어야 술래가 안 힘들어"
우리 학교 강당이 꽤 넓은 편이라, 이리저리 도망가는 아이들을 잡기 위해 기다란 뿅망치가 있으면 좋을 모양이었다.
"나 있어 나! 내가 가져올게!"
키가 작고 똥글똥글한 영우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다음 날, 영우가 가져온 뿅망치는 나와 아이들이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빨간색의 뿅망치(꽤 큼직하고 삑-삑- 소리가 나는)를 상상했지만 영우의 것은 문구점에서 천 원정도에 파는, 해바라기씨가 담긴 초콜릿 통에 달린 다소 하찮은 모양이었다. 굵기도 얇아서 몇 번 하면 부러지겠다는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안한 예감은 비껴가지 않았다. 놀이를 이십 분쯤 했을까, 뿅망치가 동강- 하고 부러지고 말았다.
초등학생의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1교시에 줄넘기, 2교시에 교실체육, 3교시에 운동장을 다녀와도 지치지 않는 체력의 아이들에게 초콜릿 뿅망치는 너무 가냘픈 것이었다. 친구의 물건이니 조심히 다루자고 약속했지만 놀이 중에 힘 조절이 될 리 만무했다. 술래 몇 명의 손을 거친 뿅망치는 금세 너덜너덜해졌고, 마침 재아가 술래를 할 때 딱-하는 소리와 함께 망치의 머리 부분이 날아가버렸다. 해바라기씨 초콜릿이 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거칠게 쏟아졌다. 시끌벅적하던 강당이 금세 조용해졌다.
"어엇!"
아이들이 식겁한 표정으로 재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뿅망치의 주인인 영우의 얼굴은 당황스러움 반, 속상함 반이 섞여 금방이라도 울 듯했다.
"어떡하지?"
다른 아이들은 부러진 뿅망치를 들고 서있는 영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과 얼른 해바라기씨를 줍고, 영우를 달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 영우야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
운이 나빠 친구의 물건을 부러뜨린 꼴이 된 재아나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속상한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영우나 둘 다 억울한 상황이었다. 다년간 아이들을 지도해 본 결과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에서 서로를 탓하다 감정만 상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하는데, 잠시 머뭇거리던 재아가 비장한 표정을 짓고선 말을 꺼냈다.
"영우야, 이따가 교실 가서 내가 고쳐줄게"
그리고 이벤트 기획자인 예지도 한 마디 덧붙였다.
"나도 도와줄게, 내가 빌려달라고 한 거잖아"
교실로 올라온 재아와 예지는 뿅망치 소생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음매가 아예 부러져버려 이전처럼 완벽히 되돌릴 수는 없는데도 투명테이프를 이렇게 붙였다 저렇게 붙였다, 노란 고무줄을 일자로 묶었다 엑스자로 묶었다 하며 뿅망치를 고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다른 아이들이 하교한 이후에도 재아와 예지는 자리에 남아서 뿅망치를 고쳤다. 이십 분쯤 지났을까, 재아와 예지는 기다리던 영우에게 뿅망치를 건네며 말했다.
"이 정도면 어때? 막 세게만 안 휘두르면 꽤 오래갈 것 같은데"
"맞아. 별로 티 안 나지? 마음에 들어?"
뿅망치를 받아 든 영우가 뭐라고 말했는지 잘 들리진 않았지만 강당에서보다는 훨씬 밝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기어코 재아는 학교 앞 무인판매점에서 똑같은 초콜릿 뿅망치를 사 와서 건네주었다.
사실재아와 예지의 잘못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뿅망치를 들고 있던 재아가 예의상 '미안해' 한 마디하고 뒤돌아서도 뭐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부담하려는 마음,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려는 마음. '나 몰라라'하지 않는 마음. 재아의 그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자기도 관련된 일이라며 함께 남아서 도와준 예지의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열두 살 아이들의 마음속 깊이가 가늠이 안될 때가 있다.
다시 '나 몰라라…'의 인터넷 뉴스로 돌아가보자. 잔뜩 쌓여있는 댓글목록을 눌러보면 '나이만 먹고 어른은 못 됐다'라는 댓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나 몰라라'와 어른이 무슨 상관일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어른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어른[어ː른]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책임이라는 낱말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내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내가 벌인 행동에 정당한 책임을 진다는 것.
나는 어른일까.
나이만 잔뜩 먹고 으스대는 철부지가 되는 것도,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뺀질거리며 살기도 싫다. 그렇다고 막중한 책임감을 머리에 지고 아틀라스의 형벌마냥 평생을 짓눌려 사는 것도 싫다.
그저 다 자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하며 후안무치하게 살지 말자는 다짐을 해본다. 나의 무책임에 마음 아플 이들이 없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