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

담원의 엽서 Vol.2 postcard014

캘리그래피와 그림으로 띄우는 담원의 엽서 - 열 네 번째 엽서

사는 동안 쉬지 않고 꾸준히 해 온 한가지는 나이를 먹는 것이었다.
밥 한끼 쉽게 거르듯, 날씨좋은 날 수업 하나 땡땡이 치듯, 가끔 1년쯤 쉬고 안 먹어도 될 법한 나이는 건너 뛸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망설이다, 귀찮아서, 컨디션이 나빠서, 원치않는 상황 때문에 등등 각종 핑계 혹은 사정으로 맘먹었던 일을 미루는 동안에도 저렇게도 우직하게 나이를 꾸준히 먹은 탓에 누적된 미제사건(?)의 재고량도 만만치가 않다.

여튼 그렇게 나이를 먹다보니 예전같지 않다던 어른들 말씀을 내가 하고 있다. 오늘은 엽서에 뭘 쓸까 고민하며 냉장고를 기웃거리다가(응?) 붙어있는 에너지효율등급 스티커에 눈이 갔다.

전자제품마다 다 붙어있는 저 둥근 스티커에는
얼마나 전기를 먹고 얼마나 성능을 발휘하는가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표시되어있다.

나는 20대때 처럼 하루 20시간 일하지 못한다.
돋보기가 숨어있는 다촛점렌즈 안경을 낀지도 몇 년이 되었다.
천하장사 같던 근력도 쇄해서 장롱을 옮긴다고 설치고나서 탈장수술을 받았다.
철따라 챙겨먹는 음식들이 생겼으며
집과 공방을 붙인 이유 중 제일 큰 게 출퇴근이 피곤해서다.
한마디로 연비가 형편없어졌다.

그런게 서글프지 않다면 솔직히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이, 하루의 작업량 같은 숫자로 정리되는 기준에서 깎인 점수 대신 예전엔 못했던 생각이나 느끼지 못했던 감정 같은 다른 내용들에 추가점을 주고 기기성능(?)을 보완하는 측면을 신체의 유지보수와 더불어 인성을 다듬는 쪽으로 고려한다면
그럭저럭 괜찮게 작동하다 세상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기대했던 어른이 된 나의 모습과 실제로 나이든 나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어서 풀이 죽을 때도 있고 초라해질 때도 있다.
이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게 아마도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면에 공감하는 이와 나 자신을 토닥여 주고 싶다.
우리 인생은 아직 안 끝났다.
기대해 볼 내일이 또 있으니 또 기대해보자.
허약해지는 자신에게 적응해나가며
그 토대에서 되는 대로, 되는 일을 하면 된다.

꿈나무는 새싹이나 묘목만 후보가 아니다.
다 큰나무도 꿈 꿀 수 있다.

담원글, 글씨

#등급은신경끄자 #나는야다큰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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