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습니다. 청소년 소설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출판했습니다(2024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사업에 선정) 당연히 작품 속에 날씨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아침밥은 굶더라도 일기예보는 챙깁니다. 이렇듯 날씨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학 현상이라 중고등 교과서에 많이 나옵니다. 밥보다 중요한 날씨 이야기를 24년간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속 내용 그리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연계하여 최대한 재밌고 쉽게 풀어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빠르게 적다가 K1은 멈칫했다. 남아메리카 연안을 따라 북으로 흐르는 해류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년에게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남극에서 남아메리카 방향으로 항해하다 보면 반드시 만나는 해류다.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K1은 해류의 이름은 비워 둔 채 계속 작전 계획을 적었다.
○○○ 해류를 따라 무역풍 지대인 남위 30도까지 북상한다(발전기로 어창의 냉동장치를 계속 작동해야 하기에, 해류 또는 바람이 일정하게 부는 곳에서는 무동력으로 항해해야 한다).<45쪽>
“북북동으로 조타 핸들을 돌려, 음…….”
K1이 머뭇거리자, 바탈이 소리 질렀다.
“훔볼트 해류!”
그제야 K1의 머릿속에 가물거리던 해류의 이름이 생각났다
.“훔볼트 해류가 흐르는 곳까지 전속력으로 달려라.”<193쪽>
석촌호수에 떠다니던 거대한 노란 오리를 기억하시나요?
2014년 가을 귀여움으로 무장한 노란 오리 한 마리가 대한민국을 행복하게 했다. 아기가 목욕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생긴 고무 오리가, 서울의 강남 한복판에 있는 석촌호수에 둥둥 떠다녔다. 푸른 호수 위에 떠 있는 노란 오리는 멀리서도 눈에 확 띄어 인기가 많았다. 몸통은 노란색에 눈은 새까맣고 부리는 주황색의 앙증맞은 오리는 가로 16.5미터, 세로 19.2미터, 높이 16.5미터로 무게만 자그마치 1톤가량 되었다.
석촌호수 노란 오리
인근 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는 한정 수량으로 만든 3천 개의 오리 인형이 이틀 만에 다 팔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SNS를 통해 석촌호수의 노란 오리 사진은 급속하게 퍼졌고,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까지 노란 오리의 귀여운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이 고무 오리를 만든 사람은 네덜란드의 예술가인 플로렌타인 호프만이다. 그는 2007년부터 이 거대하면서도 귀여운 오리와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대만에서는 5일간 50만 명, 홍콩에서는 한 달간 800만 명, 우리나라에서도 500만 명이 거대 오리를 보기 위해 몰려 들었다고 한다. 이 설치미술 공식 명칭이 <러버덕 프로젝트>다.
러버덕은 1992년 발생한 해양 사고 때 붙여진 이름이다. 노란 고무 오리 장난감 수만 개를 실은 화물선이 홍콩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고무 오리가 가득한 컨테이너가 바다에 빠지는 사고였다. 고무 오리 수만 개가 바다에 표류했다.
미국의 해양학자 커티스 에비스메이어는 10년간 고무 오리를 추적했다. 고무 오리는 장기간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면서 호주, 인도네시아, 알래스카, 남미 등지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해류의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었고, 이 고무 오리를 사랑과 평화를 전해준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러버덕이라고 했다. 2014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러버덕이 8년 후인 2022년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러버덕 이동경로
기후학자들도 인정한 영화 ‘투모로우’ 속 대재앙은 지구의 혈관인 해류 때문
2004년도에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는 꽤 흥행했다. 차가운 공기가 빠르게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모든 걸 급속하게 얼려버린다는 내용이었다. 하늘에 날아다니던 헬기의 날개가 얼어 추락하고, 바다 얼음 속으로 거의 잠긴 자유의 여신상 횃불에 고드름이 뾰족뾰족하게 달렸으며, 건물 안까지 냉기가 스며 들어 사람들은 곧바로 석고상처럼 얼려버리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영화 속 살인적인 냉기가 북반구를 덮친 이유는 해류가 멈췄기 때문이었다. 해류가 멈춘다고 북반구 전체가 급속하게 얼어버린다고? 아무리 영화라지만 너무 억지 아냐? 대중의 시선에서 봤을 때 영화의 설정이 좀 황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빙하기의 재림을 연상케 하는 영화 속 장면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현상이다.
우리나라 가정집 난방은 대부분 온수보일러다. 왜 직접 대기를 가열하면 될걸 물을 데워 집안을 따뜻하게 할까. 이는 공기에 비해 물이 오랫동안 따뜻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다른 말로 물은 다른 물질에 비해 비열이 크다고 한다. 비열이란 어떤 물질 1kg의 온도를 1도만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다.
예를 들면 물 1도 올리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1이라면 구리는 0.09로 아주 작다. 구리를 가열하면 금방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이유다. 모래의 비열도 0.19로 물에 비해 턱없이 비열이 작다.
모래는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차가워져, 바다보다 육지의 일교차가 크다. 지구에 바다가 없다면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너무 춰서 얼어버릴 것이다. 바다는 태양에너지를 저장하여 밤에 다시 에너지를 발산하는 지구의 배터리다.
해류는 바다 위로 강물처럼 흐르는 물줄기다. 해류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정하게 부는 바람(대기대순환 참조)에 의해 흐르는 표층해류와 다른 하나는 바다 깊은 곳에서 흐르는 심층 해류다.
해류는 인간 혈관의 혈액과 비슷하다. 혈관이 막히거나 혈액의 흐름이 멈추면 응급 상황에 직면하듯이, 해류의 흐름이 변하거나 멈추면 기후가 급변하여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기름진 옥토가 사막으로 변하고, 날이 따뜻해져 온갖 전염병이 돌고, 주변이 얼어버리기도 한다.
표층해류가 인간의 동맥이라면, 심층해류는 정맥이다. 표층해류는 빠르고, 심층해류는 느리다.
우리나라 주변을 흐르는 쿠로시오해류가 대표적인 표층해류다. 필리핀에서 북상하여 일본의 동안을 따라 북동쪽으로 흐르는 태평양의 대표적인 해류다.
태평양에 쿠르시오해류가 있다면 대서양에는 멕시코만류가 있다. 멕시코만류도 표층해류다. 맥시코 만에서 발달한 멕시코만류는 대서양 한가운데서 북대서양 해류와 카나리아해류로 갈라진다. 북대서양 해류는 서유럽을 지나 북극 그린란드 근처까지 흘러가고, 카나리아 해류는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한다.
대기대순환과 표층해류
멕시코만류에서 갈라진 북대서양 해류가 계속 북쪽으로 흘러 그린란드 근처에 가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밀도가 높아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쪽으로 갈수록 물이 차가워져서이고, 다른 하나는 얼음이 얼기 때문이다.
물도 대기와 마찬가지로 온도가 낮아지면 밀도가 높아진다, 그런데 왜 얼음이 얼면 밀도가 높아질까. 이는 순수한 물만 얼고 소금은 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바다는 짜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기체나 액체는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밀도가 높은 표층의 바닷물이 심층으로 이동하는 이유다. 심해로 내려간 바닷물은 저위도로 이동한다.
남반구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바닷물은 컨베이어 벨트처럼 지구를 순환한다. 이 순환의 궁극적 원인은 북극과 남극의 차가운 공기와 빙하 때문이다. 정맥과 동맥이 합류하는 곳이 심장이듯이, 남극과 북극은 지구의 심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지구에는 심장이 두 개 있다.
투모로우 영화 속 대재앙은 지구의 북극 심장이 멈췄기 때문이다. 심장이 멈춘 이유는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바닷물의 밀도가 낮아졌기에 심층으로 이동하지 않았고, 남쪽에서 북으로 에너지를 나르던 멕시코만류가 멈춰버려 지구의 북반구가 꽁꽁 얼어버린 거였다.
물론 해류가 멈춘다고 해도 영화에서처럼 순식간에 뉴욕의 모든 건물과 사람들이 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는 영화의 극적인 연출을 위해 시간을 압축하였을 뿐, 빙하기의 도래는 충분히 가능하고, 과거에도 있었다.
지구의 표층해류(붉은색)와 심층해류(파란색)
서울보다 고위도인 런던에서 눈을 볼 수 없는 이유
런던의 중심 좌표는 북위 51도고, 서울은 37도다. 런던이 훨씬 북쪽에 있다. 한반도로 치면 백두산 인근이다. 그런데 런던의 1월 평균기온(1991년-2020년)은 5.6도고, 서울은 –2.0도다. 런던이 훨씬 북쪽에 위치함에도 서울보다 7도가량 따뜻하다.
습도도 런던이 높다. 1월 평균습도는 런던이 81%이고, 서울은 56%가량 된다. 런던이 훨씬 고위도에 있는데도 서울보다 기온과 습도가 높은 이유는 지구의 북극 심장으로 흘러가는 맥시코만류에서 갈라져 흐르는 북대서양해류 때문이다.
맥시코만류의 기원지인 맥시코만은 적도 인근으로 따뜻하다. 물은 비열이 크기 때문에 쉽게 식지 않는다. 따뜻하게 데워진 해류가 서유럽 인근을 지나면서 주변을 따뜻하게 했다. 이처럼 해류가 특정 지역의 기후를 변화시키는 사례가 많다. 해류가 지구의 기후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과서와 함께하는 해류>>
같은 위도에서 동해안과 서해안의 표층수온은 어느쪽이 더 높으며, 그 까닭은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자.(동아출판 과학 2, 236쪽)
⇒ 표층해류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저위도에서 고위도로 흐르는 따뜻한 해류인 난류와 고위도에서 저위도로 흐르는 찬 해류인 한류다. 위 그림에서와 같이 우리나라 동해로는 동안 난류가 흐르고, 서해는 황해 난류가 흐른다. 당연히 표층수온은 동해가 더 높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00 년 전의 빙하기인 영거 드라이아스기 때 해수의 순환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조사해 보자(미래엔 지구과학 1, 120쪽)
⇒ 영거 드라이아스 빙하기는 약 13000년부터 11700년 전 사이에 발생했다. 영거 드라이아스는 발생한 이유는 영화 <투모로우>와 비슷하게 해양 컨베이어 벨트가 중단되어 찾아온 빙하기다. 즉 북대서양에 빙하가 녹은 물 대량 공급, 해수 온도의 증가 등으로 해수의 밀도가 낮아져 심층으로 가라앉지 않아 해류가 멈춰서 일어난 빙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