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기압에서는 날씨가 지랄 같고, 고기압에서는 맑고 쾌청할까?
연재글 소개
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습니다. 청소년 소설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출판했습니다(2024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사업에 선정.) 당연히 작품 속에 날씨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아침밥은 굶더라도 일기예보는 챙깁니다. 이렇듯 날씨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학 현상이라 중고등 교과서에 많이 나옵니다. 밥보다 중요한 날씨 이야기를 24년간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속 내용 그리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연계하여 최대한 재밌고 쉽게 풀어냈습니다.
<남극 펭귄 생포 작전>과 함께 하는 몸풀기
한낮인데도 땅거미가 내린 것처럼 주변은 어둑했다. (저기압의 영향으로)두꺼운 희색 구름이 하늘을 덮었기 때문이었다.<85쪽>
(고기압의 영향으로)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바다는 유리처럼 매끈했다. 맑은 하늘이 바다에 고스란히 담겼다. 물고기 대신, 물속에 뭉게구름이 떠다녔다.<232쪽>
얼마나 높아야 고기압일까?
빛은 어둠을 만들고, 죽음으로써 삶이 존재한다. 골짜기가 파이자 산등성이 만들어지고, 사랑의 행복은 이별을 아픔을 낳았다. 빛이 없으면 어둠이 없고,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고, 골짜기가 없으면 산등성도 없고, 사랑을 하지 않았으면 이별의 아픔도 없듯이, 고기압이 없으면 저기압이 없다.
인간은 혈압이 140mm/hg 이상이면 고혈압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기압은 상대적이기에 기준값이 없다. 빛과 어둠, 산골짜기와 산등성이처럼 주변보다 기압이 높으면 고기압이고 주변보다 기압이 낮으면 저기압이다.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날씨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공기가 무게가 있다고?
2023년 6월 18일 대서양에서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침몰한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잔해를 구경하기 위해 3800m 심해로 내려갔던 관광용 잠수정이 납작하게 찌그러져 탑승객 5명 전원 사망했다. 잠수정이 찌그러진 이유는 강한 수압 때문이었다. 심해 3800m에서는 1㎠당 약 387kg의 힘이 누른다. 이는 백상아리의 이빨 힘보다도 훨씬 강하다고 한다.
이렇게 물이 누르는 힘이 있듯이, 공기가 누르는 힘도 있다. 공기가 누르는 힘을 기압이라고 한다. 물속으로 들어갈수록 수압이 강해지듯이, 지표면에서 기압이 가장 높고, 높이 올라갈수록 기압이 낮아진다, 지표면에서는 평균적으로 1기압이다. 1기압은 1013 hPa로 성인 1명을 10톤가량의 힘으로 누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구보다 기압이 낮은 외계행성에서 살던 외계인이 지구로 오면, 심해에서 찌그러진 잠수정처럼 마른오징어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인간이 기압이 없는 우주에 떨어진다면 10톤의 무게로 갈기갈기 찢길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과 비슷한 재질의 인형을 수십 년간 누르고 있다가 놓는다고 하여 폭발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산소부족, 신체 수분 증발, 강한 복사선과 방사선 등으로 인하여 금방 사망하겠지만.
왜 저기압에서는 날씨가 나쁠까?
하늘이 두 쪽 나도 뉴스 시간 끝날 즈음에 반드시 일기예보를 한다. 일기예보를 보다 보면 기상캐스터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저기압의 영향으로 흐리고 비가 온다'거나, 고기압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전역은 맑고 쾌청한 날씨를 보이겠다'는 내용이다. 저기압의 영향으로 날씨가 맑다거나, 고기압의 영향으로 비가 온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왜 저기압에서 날씨가 나쁠까?
연재 1회에서 우리 우주를 지배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법칙이 있다고 했다. 바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쉽게 말해 우리 우주의 모든 존재는 시간이 지나면 깨지고 흩어지고 부서지는 무질서를 향한다는 법칙이다. 높은 곳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고, 고온에서 저온으로 에너지가 흐르는 게 모두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대기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에너지가 흐른다. 그 에너지를 이동시키는 게 바람이다. 그래서 항상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바람이 분다. 그리고 지구 표면에서 이동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 또 있다는 걸 배웠다. 바로 지구 자전 때문에 발생하는 가상의 힘 전향력이다. 전향력 때문에 바람이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직행하지 않고, 왼쪽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불어 들어간다.
저기압으로 불어 들어온 바람의 방향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하늘 위로 치솟는 것이다. 저기압의 사방엔 고기압이 둘러쌓고, 그렇다고 바람이 지면을 뚫고 땅속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공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데 왜 날씨가 나쁠까?
지구대기는 100m 올라갈 때마다 온도가 0.6도씩 낮아진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싸늘해지는 이유다. 당연히 지면의 따뜻한 공기가 상층으로 올라가면 차가워진다. 차가워지면 수증기 분자들이 쉽게 응결된다. 겨울철 입김을 내뿜으면 하얗게 보이는 것도 이와 같은 현상이다. 응결된 게 구름이고, 구름이 더 짙어지면 중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지면 빗방울이다. 비가 오든 안 오든 저기압에서 날씨가 안 좋은 이유다.
고기압은 저기압과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바람이 불어 나가면 고기압은 텅 빈다. 자연은 공백을 싫어한다고, 텅 빈 곳을 채우고자 위에서 바람이 불어 내려온다. 상층의 차가운 공기가 점차 하강하면서 따뜻해지고 밀도도 낮아진다. 응결된 수증기도 분해되어 자연스럽게 하늘이 맑다.
저기압의 중심에서 위로 올라가는 현상을 상승기류라고 하고, 고기압에서 공기가 아래로 내려오는 현상을 하강기류라고 한다. 상승기류에서는 날씨가 나쁘고, 하강기류에서는 날씨가 좋다. 여름 한낮 뜨거워진 지표면의 공기가 가벼워져 급속하게 상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때 두꺼운 구름이 생기며 소나기가 내린다. 이 또한 상승기류 때문이다.
상승기류가 발생하는 곳이 또 있다. 바로 높은 산맥을 따라 올라가는 공기다. 한반도에서 동풍이 불 때 동해의 습한 공기가 태백산맥 때문에 상승하여 비를 뿌리고, 건조한 공기만 산맥을 넘어오고, 넘어온 공기는 산맥을 내려오면서 온도가 상승한다. 이를 높새바람이라고 하며, 높새바람이 불면 태백산맥의 서쪽이 고온 건조해지는 이유다.
저기압과 고기압의 위치를 표시한 일기도 작성과 보는 법
현재의 저기압과 고기압의 위치를 알고, 그 저기압과 고기압이 어떻게 이동할지 예측하면 미래의 날씨를 알 수 있다. 바로 일기예보다. 물론,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일기예보는 고기압과 저기압 이동 예측만 사용하지 않고, 더 많은 자료를 분석하여 일기예보를 발표한다.
아무튼, 저기압과 고기압의 위치를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게 일기도다. 일기도는 기압이 같은 지점을 연결하여 고기압과 저기압의 위치를 분석하는 것이다. 산의 높이를 지도에 표시할 때 동글동글한 등고선으로 그리듯이, 기압이 같은 선, 즉 등압선으로 일기도를 그린다.
2024년 12월 18일 09시 우라니라 주변 일기도<출처 : 기상청>
H는 고기압의 중심이고, L은 저기압의 중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북서풍이 불고 있다. 이런 기압배치에서는 북쪽의 찬 공기가 서해의 따뜻한 바다 위를 지나면서 응결하여 서해안(충남서해안, 그리고 전북 서해안)에 자주 눈이 내린다.
저기압과 전향력, 그리고 풍향
검은 실선은 기압이 같은 선을 연결한 등압선이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기압이 낮아져 저기압 중심으로 바람이 불어들어간다. 바람의 방향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향한다. 전향력의 영향이 없다면 붉은 화살표처럼 직선으로 저기압 중심으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전향력의 영향으로 굵은 화살표처럼 비스듬하게 저기압 중심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간다.
저기압과 풍향 풍속
저기압을 중심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바람이 불어 들어간다. 산의 높이를 나타내는 등고선의 간격이 좁을수록, 산의 경사가 가파르듯이, 등압선의 간격이 좁은 오른쪽 위는 다른 지역의 같은 거리에 비해 기압의 차가 크다. 이를 기압경도력이라고한다. 계곡을 흐르던 물이 절벽을 만나면 빠르게 곤두박질치듯이, 기압경도력이 크면 당연히 바람이 강하다.
고기압과 풍향
고기압에서는 저기압과 반대로 시계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나간다. 마찬가지로 오른쪽 위 등압선 간격이 좁은 구역에서 바람이 강하게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