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습니다. 청소년 소설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출판했습니다(2024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사업에 선정) 당연히 작품 속에 날씨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아침밥은 굶더라도 일기예보는 챙깁니다. 이렇듯 날씨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학 현상이라 중고등 교과서에 많이 나옵니다. 밥보다 중요한 날씨 이야기를 24년간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속 내용 그리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연계하여 최대한 재밌고 쉽게 풀어냈습니다.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속 문장과 함께하는 몸풀기
편서풍 지대로 접어들면 다시 엔진을 끄고 편서풍에 휩쓸려 가다 보면 서칸쿠공화국에 도착한다.<45쪽>
북극제비갈매기의 수명은 30년가량이다. 1년에 한 번씩 북극과 남극을 오간다. 이동 거리는 7만 킬로미터가량 된다. 그러니까 북극제비갈매기는 평생 210만 킬로미 터쯤 이동한다..(중략).. 살아 있는 기간 대부분 하늘에 서 보내는 새다. 이 새의 서식지는 하늘이다. 인간이 잠시 여행하듯이 이 새는 잠시 북극과 남극 땅에 발을 디딜 뿐이다. 이 새는 날아가면서 쉬고, 날아가면서 먹고, 날아가면서 잠을 자고, 날아가다가 죽는다. "이 새는 날아야 한다. 이렇게 앉아 있으면 지쳐서 죽는다." "쉬는데 지쳐서 죽는다고요?" "이 새는 나는 게 쉬는 거야."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탈의 눈빛이 점차 북극에서 남극으로 기나긴 여행을 하는 북극제비갈매기처럼 아련해졌다.<144-145쪽>
북동무역풍 지대(태평양 동쪽 칠레 인근 해역)에서 다시 엔진을 끄고, 바람에 배를 맡겼다. "배가 제자리에서 맴돌아요." "걱정하지 마, 북동무역풍 지대로 접어들었으니, 지구의 자전이 멈추지 않는 한 언젠가는 태평양의 서쪽 끝에 도달할 거다."<202쪽>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건 한 방향으로만 부는 바람 때문이다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바람 따라 아무 곳으로나 떠나고 싶다는 말을 흔히 한다. 괴롭고 아픈 기억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삶의 터전을 떠나 잠시 모든 걸 잊고자 떠나는 길이니 목적지가 없을 테고, 그래서 정처 없이 바람에 떠돈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얼핏 보면 바람이 사방에서 부는 것 같지만, 큰 흐름은 서에서 동으로 이동한다. 바람 따라 떠돌면 일시적으론 방황할지 몰라도 끝내는 동해에 도달한다. 우리나라에서 바람 따라 떠돌면 언젠가는 동해에 빠져 죽는다.
인류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일이다. 이를 두고 최근까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고 여겼다. 아메리카 대륙에 수천만 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당연히 원주민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은 그들의 행위는 잔혹했다.
아무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콜럼버스 일행은 대서양을 건너 인도에 가려고 하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거였다.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수천 km의 거리를 약 한 달 만에 이동했다는 점이다. 그 이후로부터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왕래가 잦아졌다. 아메리카 곳곳을 식민지화했고,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했다. 이때를 흔히 대항해 시대라고 한다.
날아가면서 쉬고, 날아가면서 자다가, 날아가면서 죽는 북극제비갈매기의 북극과 남극 왕복 이동 거리가 7만 킬로미터가량이다. 북극과 남극의 직선거리는 2만 킬로미터도 안 된다. 왕복해봤자 멀어야 4만 킬로미터다. 그런데 왜 북극제비갈매기의 이동 경로가 7만 킬로미터일까.
긴 여행에서 에너지를 아끼고자 북극과 남극을 오가며 특정한 지역에서 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을 따라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당연히 북극에서 남극으로 향할 때와 남극에서 북극으로 향할 때의 이동 경로가 달랐다.
북극제비갈매기의 이동경로(남극에서 북극까지) 처음에는 남반구의 편서풍을 따라 이동하다가, 적도 인근에서는 편동풍을 따라 이동하고, 다시 북반구 편서풍을 따라 S 모양의 이동했음
우리나라에서 바람 따라 떠돌면 동해에 빠져 죽는 이유는 항상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기류인 편서풍 때문이고, 콜럼버스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끈 건 항상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기류인 편동풍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얼마나 아메리카 대륙을 수탈했는지 편동풍을 무역풍이라고도 한다. 북극제비갈매기가 남극에서 북극으로 이동할 때 S자 모양으로 이동한 이유도 바람을 등지고 날아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다.
이처럼 특정한 지역에서 한 방향으로만 바람이 부는 이유는 지구의 대기대순환 때문이다.
지구의 모든 날씨를 지배하는 대기대순환
지구 저위도와 고위도의 태양에너지 차이와 전향력으로 일어나는 지구 규모의 대기대순환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적도 지방에서는 태양에너지를 많이 받고, 극으로 갈수록 점차 줄어든다. 태양에너지를 많이 받은 적도 지방은 고온이고 극으로 갈수록 저온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의하면 항상 에너지는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한다, 당연히, 적도 인근 달궈진 에너지는 양극(북극과 남극)으로 이동한다.
전향력이란?
그런데 왜 적도에서 극으로 곧장 이동하지 않고 저리 빙글빙글 돌까. 바로 전향력 때문이다. 전향력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지구와 같은 회전체의 표면 위에서 운동하는 물체에 대하여 그 물체의 운동 속도 크기에 비례하고 운동 속도 방향에 수직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속도의 크기에 비례, 운동 속도의 방향에 수직 등 읽어봐도 알쏭달쏭하다. 하지만,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둥근 구(球)인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가상의 힘이다.
회전하는 원판위에 재환이와 현무가 서 있다.
재환이는 원판 안쪽에 현무는 원판 바깥쪽에 있다. 그림처럼 원판이 회전하면 안쪽에 있는 재환이보다 현무가 훨씬 먼 거리를 이동한다.
정지한 지구의 적도에서 중위도로 공던지기
위 그림처럼 자전하지 않는 지구에서 적도 부근에 있는 현무가 중위도에 있는 재환이에게 공을 던지면 직선으로 올라간다.
자전하는 지구에서 공 던지기
자전하는 지구 위에서 공을 던지면 공의 궤적이 왼쪽으로 휘어진다. 이를 전향력이라고한다. 전향력으로 인해 북반구에서는 항상 저기압에서는 왼쪽으로 바람의 방향이 꺾이는 나선형으로 들어오고, 고기압에서는 오른쪽으로 불어 밖으로 나간다.(남반구는 북반구와 반대다)
대기대순환 톺아보기
적도를 경계로 지구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일어나는 대기대순환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북반구를 중심으로 대기대순환을 알아보자.
앞에서도 설명 했듯이 적도에 태양에너지가 가장 많이 들어오고, 북극으로 갈수록 줄어든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달궈진 적도의 대기는 상승한다. 적도의 대기가 북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상승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적도 인근이 무더워도 10킬로미터만 상승하면 영하 50도 이하로 떨어진다. 적도에서 북극까지 수만 킬로미터 가는 것보다, 위로 올라가는 게 쉽고 빠르게 엔트로피를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고 말이다. 적도 지방에서 공기가 상승하면서 공백이 생긴다. 이 공백을 채우고자 적도의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이때 전향력의 영향으로 왼쪽으로 휘어진다. 이를 무역풍이라고 한다.
무역풍을 따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거였고, <남극 펭귄 생포 작전>을 떠난 일행이 남아메리카 인근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필리핀 연안까지 갈 수 있었다.
적도 지방에서 상승하는 대기는 대류권계면에 부딪혀 더는 올라가지 못하고 북으로 올라간다. 높은 고도에서 북으로 이동하던 대기는 점차 차가워진다. 차가워진 공기는 더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30도 부근에서 지표면으로 내려온다.
지표면으로 내려온 공기의 일부는 다시 적도의 공백을 채우고자 아래로 향하고, 일부는 북쪽으로 이동한다. 북쪽으로 이동하는 공기는 전향력의 영향을 받아 서쪽으로 휜다. 이 바람이 우리나라에서 바람 따라 정처 없이 떠돌면 동해에 빠지게 하고, <남극 펭귄 생포 작전> 중인 일행이 태풍을 만나 바다에 표류하지만, 끝내는 공화국 인근에 도달하게 해주는 편서풍이다.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내려와 편서풍과 만나 북위 60도 부근에서 만나 상승하여 지랄 같은 날씨를 보인다. 엔트로피 증가와 법칙과 전향력으로 만들어진 대기대순환 때문에 지구의 기후가 지역별로 특이하다.
태풍의 이동경로2001년부터 2018년 동안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의 이동경로
대부분 태풍의 진로가 오키나와 부근까지는 동쪽으로 향하다가 제주도 남쪽에서 급격하게 휘어져 서쪽으로 향한다. 이는 태풍이 편동풍 지대를 지나 편서풍 지대로 들어가면서 휘어진 것이다. 북극제비갈매기의 이동경로와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사막분포도
적도를 중심으로 북반구와 남반구의 중위도 지역에 주로 사막이 있다. 이 지역이 적도 인근에서 발생한 편동풍이 편서풍을 만나 오른쪽으로 휘어지면서 형성된 고기압 때문이다. 고기압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바람이 불어 나간다. 고기압에서는 하강기류가 발달하여 비가 내리지 않기에 건조하여 사막이 된 것이다.
적도수렴대의 구름 띠
북쪽의 북동 무역풍(편동풍)과 남쪽의 남동 무역풍이 적도로 수렴하여 상승기류로 만들어진 구름 띠다. 적도수렴대 또는 열대수렴대라고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대기대순환>> 우리나라 주변의 해류(동아출판 과학 2, 235-237쪽) 일정한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흐르는 해수의 흐름을 해류라고 한다. 우리나라 주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류는 쿠로시오 해류이다. ⇒ 해류는 크게 표층해류와 심층해류로 나눈다. 쿠로시오 해류는 표층해류로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지구의 자전, 대륙의 분포 등의 영향도 받음) 아래 그림은 쿠로시오 해류의 흐름을 나타낸 것이다. 패턴이 태풍 진로와 비슷하다. 쿠로시오 해류도 편동풍의 영향을 받아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편서풍 지대에서 동쪽으로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마젤란(1519년)과 드레이크는(1577년) 세계 일주를 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대서양에서의 항로가 거의 일치했다. 그 이유가 뭘까?(미래엔 지구과학 1, 114쪽) ⇒ 둘 다 유럽에서 출발했다. 그 당시는 파나마 운하가 없어서, 남아메리카 최남단 푼타아레나스를 돌아 태평양으로 나가야 했다. 그들은 남동 무역풍과 편서풍 사이에 형성된 브라질 해류를 따라 남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