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192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들을 읽고 있다. <삼포 가는 길>.<오발탄>,<꺼삐딴리>를 읽으면서 수십년이 지난 지금이나 그 때나 인간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비슷하구나 싶었다. <삼포 가는 길>에서 갈 곳 없는 영달이 되돌아갈 고향 삼포가 있다는 정씨를 만나 동행한다. 그러나 정씨의 고향은 꿈에 그리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정씨 또한 영달처럼 갈 곳 없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도 마음 한켠이 움푹 꺼지는 허망함을 느꼈다.
<오발탄>에서 철호는 어떻게든 자신의 수많은 역할들을 감당해보려 발버둥치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가정은 풍비박산나고 철호 또한 <삼포 가는 길>의 영달, 정씨와 마찬가지로 되돌아갈 집을 잃고 만다. 철호는 택시를 탔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횡설수설한다. 택시기사가 왠 오발탄 같은 사람이 탔냐고 불평하는데, 철호는 그 말을 듣고 스스로를 '조물주의 오발탄'이라 정의한다.
조물주의 오발탄이라는 단어를 읽으면서 이상하게 공감이 되었다. 때때로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오발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난 날을 쭉 되돌아보면 나는 가족, 가정, 직장, 교회 그리고 건강까지 뭐 하나 정상적이고 순조로운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뚜렷하고, 그 곳으로 향하는 정상궤도 안에 머물면 좋으련만, 인생은 결코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영달과 정씨를 공감할 수 있었고, 철호의 깊은 슬픔 또한 이해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스스로를 '조물주'의 오발탄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사회'의 오발탄이라고 판단했다. 어느날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본주의사회에 유리한 성격은 외향적이고 유행에 민감하며 가정이나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중의 취향을 알고, 시장에서 성공할만한 아이템을 생산해내는 인플루언서들은 대부분 그러한 카테고리에 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는 자본주의사회의 오발탄 같다는 자괴감이 든다.
그런데 나 뿐만이 아니었다. 어릴적 친구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니 그들 모두가 나처럼 스스로를 일종의 사회부적응자로 여기고 있었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 물 속에서는 어떻게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며 헤엄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친구를 위로할 말을 찾다가 <트렌드코리아 2025>에서 읽은 "아보하"가 떠올랐다.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임말이다. 이 책에서 김난도 교수는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일상, '무난하고 무탈하고 안온한 삶'을 가치있게 여기는 태도를 아보하라고 설명했다.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친구야 오늘도 잘 지내~. 우리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아주 보통의 하루를 사는 것에 만족하자. 내게 없는 것을 구하기보다는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멀리 있는 행복을 꿈꾸기보다는 가까이에서 행복을 찾자. 결국 모든 일은 다 순리대로 흘러갈거야."
친구는 내게 "그래. 고맙다. 때로는 힘들고 의문이 들어도 다 이유가 있을거야."라고 대답했다. 예전에 그 친구는 내게 남들이 다 존경할만한 사회적 지위를 얻고 싶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부유한 재력, 좋은 직업, 특출한 능력이 없는 한 사회적 지위를 갖추기 힘들고, 사회적 지위가 없으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무시당할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마흔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더이상 그의 이론을 부정할 수 없었다.
친구는 소설 <꺼삐딴 리>에 나오는 이인국 의사처럼 되는 게 목표인 것 같았다. 친구는 내게도 같이 '꺼삐딴(최고,우두머리)'가 되자고 권했다. 나는 이 제안을 수년간 거절했었지만, 이번에는 한 번 생각해보겠노라 대답했다. 나도 이인국 박사처럼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고, 다른 사람들과 발맞춰나가고 싶은 욕망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철호처럼 갈 곳 잃은 '오발탄'으로 전락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내가 설렁탕을 사달라고 하면 바로 사 줄 수 있는 남편, 개똥이를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아빠는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학생일 무렵만 해도 꺼삐딴리는 '출세와 영달에 눈이 멀어 시류에 따라 변질적으로 순응해 가는 기회주의적 인간'이라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에서 의학대학을 나와 친일파로 득세하고, 광복이 되어 감옥에 갇혔으나 소련의 스텐코프소좌의 환심을 사서 풀려나고, 한국전쟁 후에는 친미파가 되어 큰돈을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사람들이 이인국 박사를 기회주의자라고 평가할지는 의문스럽다. 지금 세태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롤모델로 '이인국 박사'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꺼삐딴 리, 다시 말해 인풀루언서 리가 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혼란스럽다. '아보하'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부분에 있어서 꺼삐딴 리가 되고자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너무 불행하지 않은 삶, 무난한 삶, 안온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적당한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삶을 살아야 올바른 삶이 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정지우 작가의 책 제목처럼 내가 돈 말고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봐야겠다. 큰 욕심부리자 말고, 그저 친구에게 보낸 문자처럼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가까이에서 행복을 찾는 나 자신이 되길, 내 인생이 되길 바란다. 지금 약국에서 앉아 조용히 글쓰는 이 시간이 참으로 안온하다. 눈을 감고 가족과 친구와 나와 약국을 위해 기도했다. 눈을 뜨니 세상이 더 밝고 환해졌다. 아니, 내 마음이 더 밝고 환해졌다. 이런게 '아보하'구나 싶었다. '아보하'는 사람이 더 사람다워지고, 사랑이 더 사랑다워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D제약회사 영업사원이 결제를 받으러 약국에 들어왔다. 이 영업사원은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번 약국을 방문한다. 한 달에 한 번은 수금하러, 또 한 번은 신제품 소개나 주문을 받기 위해 온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영업사원 얼굴을 본 지가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연령대가 나와 비슷해 보인다. 아니 더 적을 수도 있고 더 많을 수도 있다. 사실 얼굴만 봐서는 가늠이 잘 되지 않는 외모다. 키도 작지 않고 얼굴도 깔끔하게 잘 생겼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훈남들의 나이를 잘 맞추지 못한다. 만약 나와 비슷한 나이가 맞다면 다른 지역에서 일하다가 일산으로 발령을 받았거나,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가 D제약으로 이직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만났을 때 그 분은 마치 신입사원처럼 의욕이 넘쳤다. 자주 약국에 들러 신제품 홍보를 하고, 주문할 때까지 약국에 오래 머물러 있다 가곤 했다. 그러다 한 번은 우리 약국이 가장 바쁜 시간에 눈치 없이 와서 버티다가 내게 한 소리 듣기도 했다. 보통 몇 개월 지나면 대화의 깊이가 깊어지면서 서로의 삶을 조금씩 나누게 되는데 이 분과는 그런 대화를 한 번도 나누지 못했다. 코로나가 터졌고, D제약회사의 매출액이 급상승하였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전세는 역전되었다. 나는 감기약을 구하기 위해 그에게 부탁해야 했고,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호황기가 영원히 이어질 수는 없는 법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끝났지만, 회사에서는 영업사원의 매출 목표액을 낮춰주지 않았다. 금리 인상과 길고 긴 불황의 늪을 건너면서 그 영업 사원은 점점 지쳐갔다. 오늘 가까이서 보니 예전의 그 자신만만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예전보다 더 차분하고 겸손해진 태도가 장착되니 느낌이 훨씬 더 부드러웠다.
영업사원은 내가 말하는 반품을 그 자리에서 바로 처리해주었다. 요즘 이런 영업사원은 흔하지 않다. 많은 영업사원들이 반품 요청을 해도 무시하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룬다. 그의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이 내 마음에 닿으니 그를 향한 나의 경직된 사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답례로 나는 D제약에서 취급하는 유명 품목들을 주문해주었다. 그제서야 그의 얼굴은 조금 밝아졌다.
결제도 주문도 다 끝났으니 이제 나는 그가 어서 나가주길 바랐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피곤해서 혼자 있고 싶었다. 사실 늘 혼자 있고 싶어서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일어선 상태로 입을 닫고 가만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나가지 않았다. 손님이 와도 나가지 않고, 계속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 마음이 힘들어서 대화하길 원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약국만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약국도 없을 뿐더러, 나처럼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약사도 드물테니 말이다. 그 영업사원은 요즘 계속 약국 경기가 바닥을 쳐서 매출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매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고, 반대로 약국에 가서는 억지로 제품을 밀어넣어 스트레스를 되돌려줄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런 한계상황이 지속되자 영업사원은 무력함을 느끼고 무언가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세 가지 방안을 알려주었다.
첫째, 영업사원으로 회사에 속해 있지만, 한 개인으로서 인플루언서가 되어보세요. 그럼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신이 홍보하는 약을 구매하게 될 것입니다. 꼭 당신이 담당하는 약국에서 약을 사지 않아도 그 매출들은 온전히 당신의 실적으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당신의 실적이 높아지면 당신은 인플루언서로 독립할 수도 있고, 본사로 옮겨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겁니다.
둘째, 30~40년 제약영업맨으로 일하신 선배들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그 분들은 대한약사회, 지역약사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섭니다. 남들 다 쉬는 휴일에 약사회 일을 도우며 약사님들 한 분 한 분 얼굴을 쳐다보며 책자나 제품을 나눠드립니다. 그렇게 수십년간 한 지역에서 일하신 결과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영업의 토대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버텨보십시오. 회사 일뿐만 아니라 대외적인 업무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보십시오. 언젠가 당신의 근면성실함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셋째, '아보하'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아주 보통의 하루'라고 2025년 트렌드라고 합니다. 김난도 교수는 무난하고 무탈하고 안온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를 아보하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일상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삶, 아주 행복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은 삶, 그런 삶이 바로 아보하를 누리는 삶이지요. 지금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힘들어 보이는군요. 힘들어 보이지만 또 불행해 보이지는 않아요. 건강하고, 가정이 있고, 직장이 있으니까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만족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이 문제가 객관식이라면 저는 3번을 찍겠습니다. 몇 번을 선택하든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우리 함께 잘 해봐요. 저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