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전역한 이후 군대에 재입대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 꿈에서 나는 항상 신병이었는데, 고참들은 모두 내가 힘들게 했던 후임병들이었다. 나는 내가 군복을 입고 있음에 한 번 놀라고, 내무반에 들어가 그들의 얼굴을 보고 또 놀랐다. 눈 앞이 깜깜해지고 소망이 없어지는 그 순간 다행히 꿈을 깨곤 했다.
내가 100일 휴가를 나왔을 때 우리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아빠도 새엄마도 동생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노쇠한 할머니만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가장이 되었음을 직감했고, 내가 지금 군인임에 감사했다. 군대에서는 가족을 만날 일도, 가족에게서 괴롭힘을 당할 일도, 가장 노릇도 안 해도 되었다. 군대가 비록 따뜻하고 편안한 곳은 아니었지만, 군대는 내게 의식주를 제공해주는 엄마이자 나를 외부의 걱정근심으로부터 지켜주는 아빠였다.
5월에 전역한 뒤에 잠시 공장에서 근무했지만 나의 적성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수능을 치기로 결심했고, 6월부터 재수학원을 다녔다. 내게는 다시 없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그만큼 공부는 치열했지만, 나는 늘 불안감에 짖눌려 숨 한 번 편하게 쉬지 못했다. 다행히 원하는 수능성적을 얻었고, 가고 싶어하던 대학 학과에 합격했지만, 6개월동안의 불안과 공포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 수능 시험을 치는 꿈을 꾸게 되었다. 군 입대보다 더 무섭고 떨리는 꿈이었다. 나는 수많은 학생들과 함께 책상에 앉아 있다. 시험지를 받고 문제를 읽는다. 그런데 도무지 정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제 모든 게 끝났어. 내 인생은 망했어. 나는 실패자야. 공부를 안 한 나를 자책하고 절망에 빠져 낙심하는 그 순간 눈을 뜨고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나의 현재는 언제나 불만족스럽다. 그래서 나의 미래는 언제나 불안하다. 어린 시절에는 무지의 공포가 더 크기 때문에 이 불만족과 불안이 꿈에 나올만큼 심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과거로 가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반지의 제왕> 초반에서 간달프가 프로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준 것처럼 말이다.
프로도 : "제가 반지를 파괴하겠어요. 아니면 파괴되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전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위인이 못 되는데 어떻게 하죠? 차라리 반지를 보지 못했더라면 좋았겠어요. 왜 그것이 제게 왔을까요? 왜 제가 선택되었지요?"
간달프 : "어리석은 말 하지 말게.이 반지가 딴 사람에게 가지 않은 것은 자네가 잘나서가 아니라는 걸 자네도 알고 있잖은가? 자네에게 힘이나 지혜가 있어서가 아니야. 어쨌든 자네는 선택되었고, 따라서 자네에게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모두 짜내야 하네."
어둠의 군대는 절대반지를 찾아 힘을 회복하여 세상을 지배하고 파괴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절대반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 임무는 키 작고 약한 호빗에 불과한 프로도에게 맡겨졌다. '절대반지 파괴'는 상상도 하지 못할만큼 위험한 일인데도 말이다.
이 때 프로도가 스스로 그런 일을 할 위인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하기 때문에, 앞날이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에 거절하고 회피했다면, 그 어떤 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도는 이 사명에 헌신했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해 모든 힘과 용기와 지혜를 짜내었고, 동료와 신의 도움으로 사명을 완수해냈다. 불안과 위험 속에서 매일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도전"의 힘은 "절대반지"를 파괴할만큼 위대하다. 20대 초반 갓 제대한 나에게 주어진 절대반지는 '수능'이었고, 앞으로 내가 스스로 생존하고 가장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이 수능을 깨부숴야 했다. 나는 이 도전을 받아들였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지, 내게 특출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6개월간 나는 내가 가진 모든 힘과 용기와 지혜를 짜내었다.
어제 수능시험을 치른 모든 수험생들은 그 도전을 받아들이고 모험을 시작한 것만으로 위대한 탐험가다. 도전하고 몸을 내던진 경험만으로도 그들의 인생은 한 단계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기억해야 한다. <반지의 제왕>으로 치면, 이제 파트1부분인 '반지원정대'가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부딪힐 세상은 학교보다 더 냉정하고 위험한 세계다. 그러나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지 말자. 모험을 포기하지 말자. 당신이 대가를 지불하고 한걸음씩 나아간다면 누군가 당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도움을 베풀 것이다. 간절히 바라고 나아간다면 보이지 않았던 길이 보일 것이고, 결국 당신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만약 내 말이 당장 믿어지지 않는다면, 운전을 배워보라. 위험하고 두려운 운전이지만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 멀리 여행을 떠나보라. 예전에는 당신이 상상하지도 못 했던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