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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Dec 12. 2024

동행

  지난 토요일 알람을 끄고 늦잠을 자고 있는데 따식이가 방문을 열더니 침대로 뛰어들었다. 따식이는 6학년인데 이럴 때는 아직도 6살인 것 같이 너무 귀엽다. 사랑하는 내 새끼가 내년에 벌써 중학생이 된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이 올라왔다. 


  "교보문고 가요" 따식이가 말했다. 원래 아내와 나는 극장에 가서 아이들에게 "모아나2"를 보여주고, 스몹이나 챔피언 같은 액티비티센터에 데려가서 신나게 놀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알아서 먼저 서점에 가자고 하다니! 난 이게 왠 떡인가 싶었다.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였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했다.


  서점에 가서 우리 가족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코너로 곧장 향했다. 아이들은 만화 코너로 가서 '마이히어로아카데미아 41권', '에반게리온 2권'을 고른 뒤에 어린이 코너로 가서 일론머스크와 류현진의 일대기를 다룬 만화책을 샀다. 아내는 엄마를 위한 책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을 샀다. 아내가 고른 책을 조금 읽어봤는데 나는 아직 모르는 노인들의 시선과 해학이 닮겨있어 재미있으면서도 조금 슬펐다. 나는 건강코너로 가서 '장건강'에 대한 책들을 살펴보았으나 구입하지는 않았다.


  책을 사서 신난 아이들은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점으로 가자고 서로 졸라댔다. 따식이는 라멘을 먹고 싶어 했고, 여름이는 연어초밥과 계란초밥을 먹고 싶어 했다. 할 수 없이 아내는 따식이를 데리고 '쿠슈 울트라아멘'으로 갔고, 나는 여름이를 데리고 '은행골'로 갔다. 울트라아멘은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대기줄이 길어 적어도 30분은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보였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느긋하게 음식을 먹고, 한참동안이나 식당에 머물러 있었다. 여름이도 덕분에 배부르게 초밥(계란초밥 6개, 연어초밥 2개, 장어초밥 1개, 찐새우초밥 3개,주도로초밥 1개)을 먹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따식이가 라멘을 한 그릇 더 먹겠다고 해서 여름이와 나는 바깥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여름이는 추운지 카페에 들어가자고 했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코인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여름이는 급밝아졌다. 가자마자 ‘바람의 멜로디’를 예쁘게 부르더니, 두번째 ’뽀로로‘는 괴성을 질러댔다. 크게 소리지르면 100점이 나온다고 했는데 88점밖에 안 나왔다. 따식이가 들어오더니 ‘뽀로로’를 고막이 터질 정도로 크게 불렀다. 음정이 하나도 맞지 않았는데도 100점이 나왔다. 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을 아내는 ‘좋은 사람’을 불렀다. 문득 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밀대를 잡았다. 바닥청소 담당이 나인데 내가 게을러서 몇 주 정도 바닥을 청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청소할 시간이 지금밖에 없겠다 싶어 얼른 밀대를 잡고 유튜브로 위키드의 'loathing'(밥맛)을 틀고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밀대를 앞뒤로 흔들었다. 따식이는 촐랑대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아빠, 왜 그래"라고 말하며 걱정되는 표정을 지었고, 아내는 "그래도 아빠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시잖니"라고 말하며 따식이를 진정시켰다. 


  약국에 도착하니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요즘에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사위로서 해야할 의무를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대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아 부족함을 느낀다. 지난 10년간 내가 참 많이도 변했구나 싶다. 안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좋은 점을 하나 꼽자면 주님의 보호하시는 은혜를 더 많이 경험했다는 것이다. 어둠 가운데 있을수록 빛은 더 환하게 나를 비추었다.


  주일날 설교를 듣고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이스라엘로 와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께 경배하는 장면을 묵상했다. 저 멀리 파르타고에서 동방박사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들고 베들레헴의 초라한 마굿간으로 향했다.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보자면 절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약 이 이야기가 합리적으로 들리려면, 베들레헴의 마굿간에 뭔가 굉장히 새롭고 특별하고 핫한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 유튜브로 올리면 '아파트'를 능가하는 조회수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대단한 것이 시골의 마굿간에 있을 리가 없다.


  무엇이 동방박사들로 하여금 위험을 무릅쓰고 시간낭비, 돈 낭비처럼 보이는 어리석은 헌신을 하게 한 것일까? 바로 말씀이다. 그들은 민수기에 나오는 발람의 예언,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의 예언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 모두는 유대인의 왕이 탄생하길 고대했을 것이다. 동방박사들은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준비했고, 하늘의 빛이 그들을 비출 때 겸손히 엎드려 순종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은 이스라엘백성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 않았다. 말씀으로부터 멀어지니 말씀을 믿지 않게 되고, 예언의 성취 또한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하늘을 올려보던 그들의 눈은 점차 땅을 향하게 되었고, 그들의 눈은 이 땅의 어리석은 근심걱정, 끝이 없는 욕망, 추악한 죄성으로 가려져 더 이상 하늘의 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곧 그들은 어둠에 익숙해져서 빛을 거부하며 빛 가운데로 나아가지 않았다.


  말씀이 선포될 때 주님의 빛이 이스라엘 같은 나를 비추는 것 같아 몹시 부끄러웠다. 목사님께서 오직 하늘만 두려워하는 삶, 좁은 길로 나아가 떳떳하게 사는 삶,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가슴에 품는 삶을 살아내자고 호소하셨지만 나는 솔직히 나의 어둠을 보이고 회개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주님께 긍휼을 구하고 용서를 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타인을 긍휼히 여기고 용서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보겠노라 결단했다.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와 말씀 묵상에 대한 목마름이 내 마음을 감쌌다.


  사랑방 식구들이 한 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를 하면서 그런 마음은 더욱더 커졌다. 한 해동안 함께 하면서 사랑방 식구 한명 한명이 참 귀하고 선한 그리스도인 같아 자랑스러웠다. 특히 사랑방 식구들 모두 저마다의 사연과 아픔이 있지만, 주님 안에서 이겨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급한 기도제목도 있었다. 사랑방장님이 수요일에 녹내장 수술을 하는데 이번에 깔끔하게 치료되어 더이상 걱정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주님의 일하심을 믿는다.


  주일 저녁, 조금의 여유가 생기자 나는 달리기가 하고 싶어졌다. 주변 경치를 바라보며 달리는 순간과 달리기를 마친 뒤의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따식이와 여름이에게 함께 근린 공원으로 나가자고 설득했다. 다들 싫다고 할까봐 나가면 특별 보너스를 선사하겠노라 약속했다. 고맙게도 여름이가 자전거를 타고 나가겠다고 했다. 내가 앞장서서 달렸고, 여름이는 자전거를 타고 뒤따라왔다. 길가를 따라 3킬로미터를 달린 뒤에 근린공원 다섯바퀴를 돌았다. 추운 날씨에도 불평하지 않고 따라나서 준 여름이가 고마웠다. 여름이는 두꺼비집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고, 나는 두 바퀴만 더 돌고 오겠다고 말했다.


  내가 두 바퀴를 돌자 여름이가 "아빠!"하고 불렀다. 솔직히 몰래 한 바퀴 더 뛰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여름이는 땅을 파고 모은 흙으로 자기 왼손 위에 두꺼비집을 짓고 있었다. 내가 화장실에 가서 물을 받아오고, 여름이는 그 물을 조심스럽게 두꺼비집 위에 부었다. 내가 손바닥으로 두드려 흙을 단단하게 뭉치자 여름이는 아빠가 정말 잘 한다며 좋아했다. 그렇게 우리는 해가 지고 초승달이 우리를 비출 때까지 운동장 흙바닥에 모여 앉아 집을 짓고 동굴을 만들고 물길을 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상하게 전혀 춥지 않았다. 땀을 흘린 뒤라 추워서 몸이 덜덜 떨려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운동장의 추위가 그리웠다. 오늘 여름이와 함께 만든 이 추억이 내 평생 가슴 한 켠에 자리잡을 것 같아 뭉클했다. 부모는 자녀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자녀의 작은 동행 하나만으로도 부모는 감동한다.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상상했다. 주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꼭 거창한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주님의 자녀로서 주님이 걸어가시는 그 길을 함께 걷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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