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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 Aug 24. 2022

재혼 상대로 아이 있는 이혼남을 고르라는 말


 이혼이 여전히 나에게 '상처'로 남아있었던 시절, 문득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식구들이 있었다면 그래도 좀 북적이는 유년시절을 보냈을 내 아들의 주변이 무척 조용했기 때문이다. 한부모의 삶을 지나치게 걱정한 나머지 이혼을 반대하다가 나와 사이가 틀어져버린 친정식구들도 한몫했다. 아들에게 소개해 줄 만한 지인도 없었다.


 지금까지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도, 대학시절을 보낸 곳도, 직장생활을 한 곳도 아니다. 그저 전남편의 직장과 가까이 있는 지역일 뿐. 아이와 둘이 살게 된 지금에 와선, 굳이 이 지역에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교류하며 지내는 사람은 한 손에 꼽는다. 그중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를 기르는 사람은 전무했다. 결국, 아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선 내가 먼저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서 친구 찾기에 집중했다.


 처음엔 육아카페에서 알게 된 아기 엄마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그들이 건넨 인사('남편은 무슨 일 해요?', '다음번엔 남편이랑 같이 만나요~'같은)에 대꾸할 말이 없어지자 자연스레 그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취미생활 모임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아기 엄마들 여럿을 알게 되었지만, 그들은 육아보다는 취미생활에만 관심이 있었다. 아이를 남편이나 친정에 맡기고 엄마들끼리 모이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여기도 아니구나 싶었다. 한두 명 정도에게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된 상황을 오픈하고 깊은 교류를 하는 건 어떨까 고민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서두에도 말했다시피 그 시기의 나에게 이혼은 상처로 남아있었으며, 타인에게 알린다가정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별 일이 없다면 나와 아들은 그 동네에서 쭉 살게 될 텐데, 혹시라도 성장한 아들의 생활에 방해될만한 소문이 날까 겁이 나기도 했다. 모임에서 가끔 남편이 있는 애 엄마처럼 굴 때도 있었지만, 곧장 후회가 몰아쳤다. 거짓말을 하고 누군가를 속인다는 그 자체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서다.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가능하면 '거짓말'이란거 자체를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았다. 거짓말은 하기 싫고, 진실을 알리기도 곤란한 상황.


 그러다 우연히 어떤 단체 카톡방(단톡방)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미 이혼한 사람들이 각자 아이를 데려와서 공동육아 비슷한 걸 하는 모임이었다. 한부모 가족들의 공동육아라니!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멤버 전원이 이혼 경험을 안고 있다면 내가 갖고 있던 대부분의 고민이 해결되는 셈이니까.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단톡방에 접속했다.


 가입을 위해서는 이혼 판결문과 결혼식 사진이 필요했다. 어디에 뒀는지도 모를 자료들을 찾아 겨우 제출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톡방에 인사를 했다. 거기에는 이혼 후 본인이 아이를 키우는 사람도 있었고, 양육비만 보내주다 주말에만 아이를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접속하고 얼마 안 있어 공지글이 하나 올라왔는데, 오프라인 모임을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신청자가 하나 둘 몰려들었고, 얼결에 나도 가겠다고 말해버렸다. 절반 정도는 자녀와 함께, 나머지는 홀로 참석을 희망했다.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모임 당일 아이의 손을 잡고 현장을 찾았다.


 모임장이 미리 받아둔 참가비로 저녁식사를 주문했고, 다 함께 음식을 차리고 있으려니 하나 둘 멤버들이 들어왔다. 나는 내내 긴장한 채 구석자리를 맴돌았고, 그런 나와는 정 반대로 아들은 사람들의 중심에서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원체 목소리가 큰 아들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었고, 최연소 참가자의 이런 활발함에 모두 웃으며 반응해주었다. 넘쳐나는 웃음소리와, 그 가운데 선 아이를 보고 있으려니 좋은 선택을 했다는 뿌듯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애가 낯가림이 없고 참 예쁘네요."


 제일 일찍 와서 상차림을 돕던 한 여성분이 내게 말을 건넸다. 시선은 승오를 향한 채, 약간의 그리움과 반가움이 묻어나는 미소를 띤 채.


 "네, 그렇네요. 이런 곳에 처음 와봐서 들 뜬것 같아요."


 "친척집에 자주 안 가나 봐요?"


 "아, 그게..."


 어차피 서로 비슷한 사정에 숨길 게 뭐가 있으랴 싶어 대부분의 사정을 오픈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상대도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그녀는, 현재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특별히 친정엄마 집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온 거라고. 술과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긴장이 풀어진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져서 수다를 떨었다.


 "애들이 둘 다 말을 너~무 안 들어. 어쩜 그럴까?"


 "맞아요, 언니. 첫째가 사춘기면 너무 힘들 거 같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애들한텐 원망만 듣고..."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내쉰 후, 그녀는 돌연 눈빛을 빛냈다.


 "그래서, 자기는 오늘 와 보니까 어때?"


 "어떻다니... 뭐가요?"


 "사람들 말이야. 여기 분위기나..."


 "전 처음 왔는걸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나도 여긴 처음이야, 얘."


 그녀는 어딘지 쓸쓸한 표정으로 하하 웃었다. 이어지는 설명은 이러했다. 이런 모임이 여러 군데 있는 모양으로, 그녀는 여러 모임에 의욕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중이라고.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나로서는, 홀로 이런 모임을 찾아다니는 행동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런 번거로운 일을 반복하는 이유를 묻자,


 "응, 외로워서."


 라는 답이 돌아왔다.


 "애들 아빠는 진작 재혼했거든. 애들 보고 싶지도 않은지, 연락 끊긴 지 한참 됐어. 양육비? 그런 거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어. 애들은 말을 안 듣지, 나는 의논할 곳도 없이 망망대해 혼자 떠있는 것 같고... 그러니 아무래도 아빠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 여기 사람들 대부분 짝지 찾으러 온 걸 텐데? 자기는 어떤 사람이랑 재혼하고 싶다 그런 거 없어?"


 나보다 이혼한 지 오래된 한부모 생활 선배의 질문에 말을 잃었다. 결혼이라면 지긋지긋하고 이가 갈릴 정도라 '내가 이 짓거릴 한번 더 한다면 그건 뇌에 뭔가 문제가 생겨서 그런 걸 거야!'라고 주변에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혹시 나도 나이가 더 들고, 아이가 자라면 저런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을까? 아니, 그보다 여기 한부모 가장들 모여서 공동 육아하는 곳 아니었냐고...


 "네에...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할만한 상황 되면... 하겠죠."


 "그러면 안 돼! 나이도 아직 젊고 애도 어린데, 빨리 새 가정 꾸려야지. 자기 정도면 좋은 사람 충분히 만날 수 있을 거야."


 어쩐지 익숙한 레퍼토리에 어색하게 하, 하하 웃었다. 주변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재빨리 눈동자를 돌려보니 승오는 누나, 형아들과 함께 장난감 방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그래, 이거지. 내가 바랬던 게 바로 이런 분위기였다. 애들은 애들끼리 놀고, 어른은 어른들끼리 놀고, 비슷한 처지에 친구가 되어 꽃피는 우정 그런 거. 그런데 설마, 우정에서 사랑으로, 사랑하다 가족이 되는 그런 엔딩을 다들 꿈꾸는 건 아니겠지..?


 ".. 만약 제가 연애를 하게 된다면, 아들과 잘 놀아주고 제 말도 잘 듣는 연하남을 만날 거예요. 그렇다 해도 재혼은 절대 안 할 거지만요."


 "본인보다 어린데 이혼경력 있는 사람 찾기가 어려울걸."


 "에이... 이혼은 무슨 결혼 경험도 없는 사람 만날 건데요."


 죽어도 재혼에 관심이 없음을 어필하려다 보니 절로 비아냥거리듯 말이 나왔다. 상대는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려 했다.


 "애도 한 번 낳아본 사람이 잘 키운다고 하잖아. 내 새끼를 꼭 자기 새끼처럼 키울 순 없겠지만, 서로 상처도 보듬어 주고 하려면 애 아빠인 상대가 재혼하기 좋지."


 정말로 그럴까요?

 아픈 사람들끼리 서로 보듬고 사는 게 가능할까요?


 불행에 불행을 더해서 더 큰 불행이 되지는 않을까요?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서 할 말도 아닌 것 같았고, 논쟁한다고 결론이 나는 문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후에 나는 이혼 경력은커녕, 결혼 경력도 없는 연하남을 만나 편안한 연애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딱 한번 갔던 '이혼한 부모의 공동육아 모임'은 알고 보니 누구의 말마따나 '재혼 상대 찾기 101'같은 거였단 걸 알게 되었고, 결국 모임에서 탈퇴했다.

 

 그날 내 아들은 몇몇 누나, 형들과 친해졌지만 나는 다시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고, 자연히 일회성의 즐거운 놀이로만 기억에 남았다. 만약 그 모임에 계속 나갔다면 '비슷한 경험이 있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 아들의 친구 만들어주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나를 예비 신부로 보는 그 시선들이 분명 불편해졌을 거다. '비혼 주의자'는 이혼자들 사이에서도 비주류였다.


 이혼이 나에게 ‘상처’가 아니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사건들이 필요했다. 이제 나는 누굴 만나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만나는 모두에게 상황을 오픈하고 지낸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어떤 경우 남편이 있는 애 엄마처럼 굴 때도 있지만, 그게 나에게 아무런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애도 있는데 이혼하지 말고 참고 살지...’라던가 ‘너 정도면 좋은 남자랑 재혼할 수 있을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니가 뭘 알아!?’라며 분노하던 마음이 이제는 올라오지 않는다.


 이왕 재혼을 할 거라면, 이혼 경험이 있는 애 아빠를 고르라던 그 언니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쩌면 원하던 재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글은 육아 초보인 남자 친구가 내 아들과 어떻게 놀아주는지를 자세하게 묘사하려 했던 글이었는데, 이미 주제에서 많이 멀어진 것 같다. 다만 이 말은 꼭 쓰고 싶다. 연인에게든 친구에게든 기대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홀로 견디기에 짊어진 짐의 무게가 지나치게 무겁거나, 상처가 헤져서 아픔이 이성을 잠식할 때가. 그럴 때 타인에게서 잠깐의 위안이야 얻을 수 있겠지만, 내 아픔을 누군가에게 대신 견뎌달라고 하는 식으로는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없다. 불행에 불행을 더하면 큰 불행이 될 뿐이니까.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내려앉으면, 비슷한 불행의 경험이 없는 이들과도 서로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다. 좋은 관계란 게 반드시 공통된 분모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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