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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May 30. 2021

두 번째 외도. 골프!

낮도 없고 밤도 없고.

이번 글이 냉소적이고 비아냥거리는 느낌이 가득한 건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올해의 잔인한 환절기 때문입니다. 절 간병하는 딸과 제 눈치만 보며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강아지 아들 콩이를 생각해 가능하면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아픈 사람이 안주인으로 있는 집의 분위기가 너무 싫어 힘들고 아파도 항상 웃고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정말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 ( 남은 시간이 얼마큼 인지 알 수 없어서 더 소중하다 느껴지는 거라 생각되기도 합니다.)합니다.

제가 표현하지 않는다고  아이들도 아니겠지만 굳이 제가 입 밖으로 "어디많이 아파" "아! 오늘 어디 너무 아프네." 이런 식으로 무심결에 나오는 소리는 거의 무의식까지 침범한 통제할 수 없는 지독한 통증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 일들을 제외하곤 여타 다른 일반적인 가정집보다 더욱 많은 웃음과 개그 코드와 틋함이 넘치는 게 지금 우리 가족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요 근래의 잔인한 봄의 날씨는 항상 예고도 없이 눈물이 가득 차 오르게 만들 몸을 덜덜 떨만들 방비한 상태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게 만들어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결국엔 한 움큼의 마약진통제를 먹어야 됩니다. 거기에 우울도 깊어져 평생 부모에게도 못해봤던 징징대는 소리를 자신도 아프면서 아픈 엄마를 돌보는 딸에게 해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걸 감당하고 돌봐주는 딸에게 항상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제 글을 읽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독자 분들에게도 심으로 감사합니다♡.




사실 상담이 우리 식구의 불화를 잠재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던 건 나도 마찬 가지였다. 대부분의 모든 일이 그렇듯 속마음을 털어놓고 서로를 다독인 후엔 그에 따른 새로운 계획과 또한 그 계획에 걸맞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무엇이든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라면 한 가지도 빠짐없이 가열 노력에 노력을 더하 우리의 이스방은 역시 나와 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상담 따위가 웬일이냐 싶었던 것처럼 더욱더 박차를 가해 실망을 시키기 위해 몸을 갈아 바치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 큰돈을 상담에 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딸이 원했던 대로 여행이나 다녀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은 들어 후회에 후회를 거듭했다.




남편은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나중에 그 많은 잘못들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럴까 하는 생각에 한동안 궁금한 적도 많았었다.

남편이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만약 그렇게 까지 했더라면 진작에 친정에 알리고 이혼을 선택했을 것이고 그때의 친정아버지가 모든 걸 아셨다면 우리 이스방 갈기갈기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리셨을 것이다. 결단코!! 


상담을 하는 동안 기복이 있긴 했어도 날이 섰던 집안 분위기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고 나 또한 남편에 대한 마음이 편해진 건 아니었지만 딸이 사춘기를 편하게 넘어갈 수만 있다면 못할 게 없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남편과 나의 불화가 아이 사춘기의 큰 불안 요소 이긴 했지만 아이들의 사춘기를 어떻게 딱! 꼬집어 한 가지 이유로만 얘기할 수 있었겠는가.

남편과 내 사이가 겉으로 드러나 보이기에 평화롭게 유지됨 과 동시에 딸은 다른 여타 여러 가지 사유를 들어 분란을 일으켰고 아직은 커가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다 컸다는 이유를 대며 여러 가지로 작고 큰 event들로 날 새벽 기도로 하게 했다.

큰 사건이 있었다면야 물론 남편과 상의를 하고 해결을 했을 테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식을 키우는 일에 좋고 행복한 일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일도 남편과 함께 나누길 당연히 원했다.

하지만 남편은 조금이라도 딸과 불편한 사이가 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딸과 멀어지는 길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딸은 수위를 넘지 않는 자잘한 일들로 나를 힘들게 했을 뿐 머리를 노랗고 빨갛게 물들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뛰쳐나가 불량한(?) 오빠들이 모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앉아


"오빠, 밟아. 좋아. 달려. 이야~~~ 호!!!" 

 라바 라바라 밤~~

이런 소리를 지껄여 대지는 않았으니 그것 만으로도 양호한 사춘기를 지낸 것도 같았다.

또 아이의 사춘기로 인해 힘들고 답답한 마음이야 한도 끝도 없었지만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함께 한 동에 살던 동생조차 사춘기 아이를 기르는 경험을 해 본 적도 없면서


"니, 지니 저렇게 내 버려둬도 괜찮은 거야?"


같은 답답한 소리만 하고 있는 상황에 남편조차 상담 몇 번으로 모든 일을 다 해결한 것 마냥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었으니 내 속은 까맣다 못해 재가 돼버리고 말았다.(동생에겐 나중에 별다른 말 없이 "아무 말도 거들지 말고 조카가 크면 직접 겪고 얘기하자"라고 좋게 얘기했습니다. 물론 이제 그럴 일도 없지만^^.)




나와 아이가 마음으로 몸으로 부딪히고 싸우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사이에 남편은 기가 막힌 두 번째 외도 상대를 찾게 되었다.

남편이 하던 일에는 소위 말하는 '접대'라는 것이 존재하는 세계다.(혹시 생각하시는 밤 업계, 깍두기 아저씨, 사채업자 이런 거 아닙니다. )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엔 현금으로.

그리고 호롱불로 바느질하던 시절엔 술 접대로. 그리고 전기가 들어온 이후론 골프 접대로.

하..... 아.....!


이스방께서 아이가 사춘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프를 배워야겠다는 얘기를 지하게 했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골프! 그게 반드시 필요한 거야? 그거 안 하면 돈 못 벌어?"

"어. 여보. 요즘은 술 접대보다 회식이나 워크숍 때 찬조해 주거나 골프장 잡아서 라운딩 도는 걸 더 좋아해. 그래서 골프채도 준비하고 여기 집 앞 연습장에 레슨도 좀 받고 해야 될 거 같아."

"여보. 회식도 좋고 골프도 좋고 다 좋은데 지니 신경은 쓰고 있는 거야? 지금 마음 쓰고 안 챙겨주면 당신 조금 있으면 완전 왕따 돼. 알아? 내가 아빠 먼저 챙겨야 된다고 백날 얘기해도 당신이 집안일 안 챙기고 바깥으로 만 돌면 나중에 당신 낙동강 오리알 된다고. 지금도 엄마 아프게 한 게 당신이라고 보기만 하면 눈부 뒤집는데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얘기를 해봐. 둘이서. 그런 자리도 내가 만들어 줘야 돼? 애야? 당신이 알아서 해. 당신 자식 놓칠 건지 잡을 건지 생각해서. 그리고 골프도 어떻게 할 건지 대충라도 계획을 세워와서 이렇게 하고 싶다, 저렇게 하고 싶다 의논을 해야지. 내가 당신 후배야. 맨날 통보식이게. 제대로 설명해 줘!!


하고 어깃장을 놓았다.

그리고는  순서가 그게 아니니 지니를 먼저 신경을 써주고는 골프를 치던 선수로 나가던 알아서 적당히 하라는 얘기를 건네고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 

일하는데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배우는데 찬성이었지만 골프 연습장이 코 앞인 집에 살면서 저녁 이후로는 남편 얼굴을 볼 수 없어졌다

저녁에도 골프 연습, 밤에는 물론이고 새벽에도 골프 연습, 주말과 주일에는 필드로 나가고 연휴나 공휴일이 겹쳐 있으면 무조건 가까운 중국,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지 골프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이스방 새로 배운 놀이에 아주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니가 중학교 1학년이던 무렵 친정에선 오래 살고 계시던 곳은 건축을 위해서 집을 비우서울 근교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가 당첨이 되 이사를 하게 되다. 그 바람에 온 가족이 주말만 되면 소고기, 갈비, 돼지고기 제육불고기, 오징어 양념구이, 새우구이 할 것 없이 매주 바비큐 파티를 벌여 주셨다.

마루가 깔려있고 주변을 나무로 가꾸어 정원처럼 만들어 놓은 테라스는 뒤는 산이고 앞은 터진 형세여서 한집이 고기를 굽기 시작하면 참지 못해 이 집 저 집 너도 나도 고기를 구워 먹고는 했었다.

아이에게는 잊히지 않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열에 한, 두 번이나 아빠가 있을까 말까 한 불완전하고 채워지지 못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딸과 나 만으로도 충분히 충만해져 버리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젠 남편이 돌이키려 하면 할수록 반감과 저항은 더더욱 거세지게 돼버리고 말았다.

딸은 이제 완전한 김 씨가 어가고 있었다.

이 씨인 남편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듯 보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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