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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Jun 14. 2021

상처받은 마음, 희귀 난치 질환으로 자리 잡았다.

베체트병, 그리고 합병증....

남편이 처음 저질렀던 잘못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았던 나였지만 남편과 이혼을 하지 않겠다 마음먹은 후론 주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작정했었다. 얘기해 봐야 내 얼굴에 침 뱉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는 데다 이혼을 하지 않은 이상 굳이 남편의 허물을 떠버리고 다니며 나쁜 놈을 만든다고 좋을 것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만한 나이였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그리고 사실은 누구에게 어떻게 내 상황을 털어놔야 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다.

한 번도 내 얘기를 남에게 해본 적이 없었 

한 번도 누군가에게(부모님 포함) 어떤 일을 겪고 있는 순간, 그 당시에 의논이나 조언, 위로 같은 것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난 항상 누군가에게 꼭 그런 사람이 돼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난 24시간 영업을 멈추지 않는 lisrener 역할에 몰두하게 된 건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물론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이 그런 면이 더 많다는 걸 알지만 말입니다.)


그때 누군가라도 내 변화를 조금이라도 눈치채고 내게 생긴 문제에 조금의 관심을 보여 줬더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표는 오랜 시간을 두고 나를 생각게 하고 나를 괴롭혔다.


내가 달리 생각했더라면.

내가 달리 마음먹고 행동했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내 위주로 결정했더라면. 

내게 내 고충을 털어놓고 의논을 할 사람이 있었다면.

누구라도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결혼 후에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로(남편의 큰 잘못, 아주버니네의 이민, 어머님의 갑작스러운 병환과 별세, 아버님의 지나간 무수한 외도와 사실혼. 딸의 사춘기, 남편의 무심함-골프로 탈출과 이기심...)  그래도 병약해졌던 몸에 이상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처음 남편의 일로 갑상선 질환과 부정맥을 진단받고 병원을 다니고 신앙을 가지면서 일정 부분 몸상태가 나아지기는 했지만 한 번 무너진 몸의 발란스는 처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엔 내게 평생 함께 가야 할 반갑지 않은 친구를 만들어 주고 말았다. 


지니를 낳을 때 비명을 지르지 않고 오랜 시간을 혼자 참고 기다려야 했었.

(그때는 진통 시에 가족이 함께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분만 대기실에서 혼자 꼬박 32시간을 참고 기다려 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땐 그게 제가 겪는 가장  고통 일 줄 알았는데... 이젠 분만 통 정도는 껌인 병을 가지고 살고 있네요.) 그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 약간의 후유증이 남았었다.

출산 당시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고 온몸의 땀구멍이 열린 듯 땀을 뻘뻘 흘리며 배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휘둘리고 골반 양쪽 위로는 코끼리가 올라선 듯 뼈가 벌어지다 못해 짜개질 것 같이 아파져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졌을 때 침대의 틀을 손으로 붙들고 힘껏 매달렸다.

그때는 너무 아파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지만 나중에 몸조리를 할 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침대 틀을 붙들고 늘어졌던 손가락 관절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아이를 양육하며 몇 년간 심하게 고생을 했지만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어느덧 손가락의 아픔도 점차 잊으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가면서 처음 앓았던 병과는 비교할 수도 없던 큰 병이 내게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날씨 탓이거나 전날 먹은 야식 탓이려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손의 붓기는 점점 더 심해지고 손가락에 운동선수들이 끼우는 보호대 같은 것을 끼우지 않고서는 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손가락의 통증을 참을 수 있는 정도가 지나쳐가고 있을 때부터 파라핀 치료기를 사서 아침에 손을 담그지 않고서는 젓가락질 조차 할 수 없어졌다. 음식을 먹기 위해선 포크를 사용하거나 가벼운 나무젓가락으로만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됐고 그 무렵부턴 다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안에 구내염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처음엔 한 두 개씩 4~5일.

그리고 그것이 다 낫기도 전에 다시 대 여섯 개씩 생겨 이번엔 일주일이 넘도록.

그리고 그다음엔 한 달이 넘도록.

후엔 구내염처럼 피부에 궤양이 생겨 허물어지는 것이 생식기에 생기기 시작했다.

앉는 것도 고통이고 화장실을 가는 것은 더 고통이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불면증도 다시 심해지고 안이 엉망이라 물 한 모금 삼키는 것도 힘이 들어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면 살이 쭉쭉 빠졌다.

웬만한 일엔 눈 하나 깜박 안 하고 뭐든지 자신의 일이 우선이던 남편도 3~4주 간에 급격하게 달라지는 내 모습을 보고는 뭔가 다르다고 느꼈던 것 같았다.

남편의 가까운 거래처를 시작으로 네다섯 군데의 병원을 전전했지만 뚜렷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몸은 점점 더 초췌해져 가고 병명은 알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던 중에 마지막으로 찾아갔던 병원에서 '류머티즘 관절염'인 것 같다는 소견을 내놓았고 마지막 희망으로 찾아간 '삼성 서울 병원'에서 자가 면역 질환이면서 희귀 난치 질환인'베체트 병'을 진단받았다.


*베체트 병
베체트병은 반복적으로 입 안에 궤양이 생기고, 성기부에 궤양이 발생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눈 안에 염증이 발생해서 시력을 잃을 수도 있는 만성 염증성 질환입니다.
-전신성 혈관염으로 분류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픈 것도 아픈 거였지만 너무 억울하고 기가 막혔다. 잘못을 저지른 건 남편이고 나를 힘들게 한 건 다른 사람들인데.

그 잘못을 덮어주고 끌어안고 참아주고 이해해 준건 난데 왜 내가 아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교회를 다니며 가슴 깊이 주님을 믿었다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울컥 솟아오른 생각이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실망이었고 억하심정뿐이었다.


남편에게 향한 억울한 마음은 설명할 길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네가 내게 그런 짓 만 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내가 이런 불치병에 걸리지도 않았을 텐데....'


내 건강이, 남편과의 갈등이, 우리 가정이 통째로 다시 한번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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