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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Jul 05. 2021

미국에서 돌아온(여행 온) 큰 아주버니네

꼴값도 가지가지

드디어 시아주버니네가 불법체류자의 신분을 벗고 영주권을 얻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휴가를 내어 한국으로 잠시 들어온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관광비자로 미국으로 들어가 불법 체류자로 자리 잡았지만 형님의 미용기술로 자격증을 따서 '미용실'을 차려 돈을 벌었고 아주버니는 한때 '스시바'를 운영해 그 사이에 큰 조카딸을 결혼도 시키고  제법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16년 만이었고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6년이 난 후였다.

형님은 한국에 있을 때도 미용실을 운영했었어요. 본인 말로 운이 좋아 필기 통과했고 손재주는 워낙 좋아 미용실은 원래 한국서도 문전성시였어요.
조카딸 결혼식은 초청도 안 했는데 그 결혼식에 굳이 굳이 갔다 온 분 우리 집에 한분 계십니다. 철가면 막무가내 이스방이요. 그때 막 제가  베체트 병 걸려 많이 아플 때였는데. 정말 미웠습니다. 어머님 병간호 남편이 전적으로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제 몫을 안 할 수 있나요? 제 몸 아픈 거 내색 없이 주말 빼고 일주일에 두 번씩 간병하시는 분 반찬까지 해서 차 없이 전철 타고 낮에 간병 다녔거든요. 제가 그땐 장롱 면허라. 어머님이 간암 말기로 투병하시던 때에 아버님 660만 원, 아주버니네 600만 원.
남은 병원비와 장례비는 모두 우리 집이
떠안았습니다.  사실 상관없었는데 그때 한국에 나와 상관있어지게 만들 더군요!




아주버니가 입국한다고 알려온 날짜에 마침 나는 심해진 베체트 염증 증상과 갈수록 붓고 불편해지는 손가락 관절의 기능 검사, 냄새만 맡아도 구토가 날 정도로 나빠진 위장기능의 재 검사, 내시경, 지금 하고 있는 무지막지한 구토가 단순히 위의 문제인지 아니면 두통 때문으로 인한 구토인지 밝히기 위한 뇌 MRI 검사, CT 검사, 뇌 척수액 검사, 안과에서 동공 확대 후 눈을 통해 종양 유무를 확인하는 검사 등등을 받아야 하느라 입원한 상태였다.

게다가 입원하자마자 처음 한 혈액검사 후에 기가 막힌 소리를 들어야 했다.

'영양실조'

먹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너무 잦은 구토를 했던 탓에 몇 달 만에 몸무게가 15kg이 소실됐었고 기초적인 전해질도 모두 부족한 상태여서 우선 급하게 링거로 영양제를 놓기 시작했다.

링거를 놓기 시작하고서야 심하던 근육통도 조금 가라앉고 구토 방지제 덕분에 몇 달 만에 구토가 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간병하던 남편이 기가 막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여보, 낼모레 새벽에 형네 들어올 때 내가 데리러 가야 될 거 같아. 그리고 당신 지금 병원에 있으니까  우리 집에서 지내도 된다고 얘기했는데 괜찮지? 그리고 여기 있는 한 달간은 내가 운전수 노릇 좀 해줘야 할 것 같아."

 

난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그때는 우리 딸 지니가 고3이 되던 봄방학 무렵이었다. 

내가 아파 공부하는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돌봐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해 미칠 노릇이었는데 아이 케어는 고사하고 마중을 나갔다가 우리 집을 숙소로 사용하겠다고?

게다가 운전수? 진짜 꼴값을 떨고 있다.


소리 지를 기운은 물론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싸늘한 목소리로


"아주버니가 이민 가면서 우리 지점서 대출받은 거 정리 제대로 안 하고 가서 내가 얼마나 곤란했고 개망신당했었는지 다시 얘기 안 할게. 그리고 당신한테 차 주고 간다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고 그 차 할부도 다 안 갚은 차라 결국엔 팔고 시가서 그 돈 다 가져간 것도 그냥 넘어갔고 , 어머니 아프실 때 돈 없어 쩔쩔매도 아버님 돈 쥐고도 안 주시고 아주버니 딱 100만 원씩 6번 보내고 입 닦고 장례까지 내 손으로 다 했어.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내가 못 고치는 병 걸렸데도 전화 한 통 먼저 안 하던 사람들을 왜 내 돈 주고 산 차로 마중 가서 내 돈 주고 산 집에 재워야 되는데?

하물며 지니는 고3이고 난 입원해 있는데!! 당신 제정신이야? 절대 안 돼. 절대!! 그리고 운전수? 운전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 병원에 눕혀 놓고 열받아 죽으면 얼마나 빨리 살려 놓을까 테스트? 꿈도 꾸지 마."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남편에게 얘기했다.


부탁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사정과 여건을 생각해서 하는 것이 정상이고 염치라는 것이 있는 사람의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면 그 잘난 시아버지(새시어머니와 알콩달콩 사시는)가 계시는 곳으로 갈 것이지 제수씨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고 고3 입시를 앞두고 있는 수험생이 있는 집에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머무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정상 인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밉던 곱던 남편의 하나밖에 없는 형제의 가족이고 16년 만의 만남이니 마중을 가서 어머님을 모셔놓은 곳에 갔다가 새로 정한 숙소에 데려다주는 것까지는 하라고 얘기를 했다.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지만 모질지 못한 내 마음이 문제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주버니네가 입국하는 날의 아침이 밝아왔다.

병원 밥을 받아먹는 둥 마는 둥 끄적거리고 있던 7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지금 차 타고 공항 빠져나왔어. 다 같이 병원으로 가고 있어. 당신 보고 엄마 모신 데로 가자고 하네. 조금만 기다려."


앗. 이 미친.... 누가 오라고 했나? 누가 보고 싶댔나? 진짜 여러 가지 한다. 스피커 폰 일지도 몰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를 악물고 얘기했다.


"여보. 그냥 엄마 모신 데로 먼저 가. 나 검사받으러 언제 내려갈지 몰라. 여보. 여보...."

"알겠어. 지금 빨리 갈게. 검사면 조금 기다리지 뭐. 금방 갈게."


아.... 정말 이 인간을 내가 죽일지도 모르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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