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믿고 사랑하는 완전한 순간(2023.12)
코로나로 인해 입원이 쉽지 않아 진지 벌써 3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진단을 받고 처방된 마약성 진통제, 여러 합병증과 기존 질환으로 인해 복용한 독한 약물들과 신경안정제가 몸에 쌓여 수많은 부작용이 찾아왔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만큼의 발작통이 덮쳐온다.
뼈가 부러지는 듯, 살이 찢어지는 듯, 온몸은 매 순간 내 존재를 부정하듯 비명을 질러댔다.
이 고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삼킨 수많은 약물들은 오히려 신경을 더 날카롭게 벼려 놓았고, 몸 안에 쌓인 독은 감각을 짓이겨 더욱 괴로운 파도로 되돌아왔다.
피부는 스치기만 해도 칼날에 베이는 듯 아팠다.
언제나 그랬듯 콩이가 무심히 다리 위에 올라앉기만 해도 고관절이 골반에서 빠져나오는 듯 아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머릿속에서는 망치질이 끊임없이 울려대고, 배는 역류와 구토로 숨을 도둑맞은 듯했다. 먹는 즐거움은 사라졌고, 차라리 먹지 못해 살이 빠지는 편이 더 낫겠다 싶을 만큼 몸은 붓고 달아올랐다. 심술 난 두꺼비 마냥 온몸이 울뚝불뚝 붓기로 빵빵하다.
백일을 지난 아기도 아니건만 밤낮이 뒤바뀐 채로 수면제를 먹어도,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도대체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으니 사람이 할 노릇이 아니다. 조금을 자더라도 밤에 자야 하고 잠시 깨어 있더라도 낮에 깨어 있어야지 올빼미도 아니고 부엉이도 아니고.
3일, 4일을 못 자고 꼬박꼬박 수면제를 챙겨 먹어도 다들 자고 있는 고요한 밤과 새벽 시간이 지나도록 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엔 출근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강아지들의 아침밥을 챙기는 딸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잠시나마 쫓기듯 잠에 든다. 그 마저도 혼곤한 꿈에 젖어 잠꼬대 반, 앓는 소리 반으로 채운 잠을 자고 일어나는 시간은 언제나 늦은 오후가 되고 만다.
한동안 미루어 왔던 입원으로 제때에 Wash out 이 이루어지지 못해 몸에 쌓인 많은 약물들로 인해 탈억제가 일어났고 내 몸과 마음은 모든 치료와 약물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몸은 감각 과민으로, 정신은 예민과 까칠을 넘어서 조울증과 심한 불안증으로, 혼자서는 문 밖을 나서지도 못하는 광장 공포증을 앞세운 공황 발작과 심한 기억 상실로 나 스스로를 절망으로 잡아 끌어내리고 있다.
2019년 2월 13일.
지독한 고통과 그보다 더한 삭막한 냉대와 사무친 외로움에 지쳐 죽음으로 내던져졌던 쓸쓸한 내 목숨이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기를 빌고 또 빌며 난 그악스럽고 지독하게 삶과 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었었다.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고 해도 살아있는 삶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연속이며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신(해리성 기억장애)으로 불안과 공황, 우울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건 매 순간이 공포이고 악몽이 된다.
이 모든 것에서 잠시나마 도망칠 수 있는 순간은 잠을 자는 순간뿐인데. 매일 셀 수없이 기절하는 것과(자율신경 실조증) 잠을 자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자지 못하고, 먹지 않아도 잠을 자지 못한 이후로 다시 수면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아니다.
사실 수면제를 모으지 않았던 때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어느 땐가 더 잘 견뎌 보겠다는 마음으로 한동안 많이 모아 두었던 수면제를 딸에게 내어 준 적도 있었다. 매일 먹어야 하는 수면제를 지켜보는 보호자가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많이 모을 수 있는 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얘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병이 많은 환자들이 사고를 칠 수 있는 구멍은 생각보다 여기저기 많이 있다. 다만 입밖에 내어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이미 많이 모아진 수면제가 아니더라도 잠깐이나마 내 판단력을 흩트려 놓을 만한 약은 집에 차고도 넘친다.
또 약이 아니더라도 그런 순간은 언제나 내게 넘쳐난다.
무너진 판단력에 저지를 일들이 나 스스로를 두렵게 만든다. 오랜 병으로, 또 많은 병으로 지치고 힘에 겨워 쉽게 굴복하고 무너지기 위해 약을 모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만 버티고 이겨내 살아내서 마침내 생존자가 되고 싶은 마음 한편에 편한 잠 한 번 실컷 자보고 싶은 소망도 한가득이다.
하지만 내가 수면제를 먹지 않고도 잘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저기 안 쪽 깊숙이 숨겨놓은 한 뭉텅이의 수면제를 보기 좋게 내던져 버릴 수 있을 거라 믿고 싶다. 그날이 꼭 병이 낫는 날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믿고 더 아끼고 사랑해 주어 나 스스로를 절대 버릴 수 없는 날이 오길 바란다.
숨 쉬며 사는 매 순간이 고통과 두려움만이 아니길 바란다.
나 스스로를 살해하려는 끔찍한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사실을 바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