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픈 것도 서러운데-민간 보험사의 횡포

본인부담상한제(2023.09)

by 강나루

우리나라는 국민 건강 보험 제도가 잘 발전된 나라다.(국민 건강 보험이란, 질병이나 부상으로 발생한 고액의 진료비가 가계에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국민이 평소에 보험료를 내고,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를 관리·운영하며 필요할 때 보험급여를 제공하는 사회보장제도다)

물론 우리나라보다 더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추어진 선진국 중에는 치료비를 전혀 내지 않고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나라들에서는 암과 같이 시급한 질병의 경우 진료 순서가 밀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정특례를 인정받은 질병의 경우, 환자가 등록 절차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하면 본인부담률을 10%로 낮출 수 있다. 질병마다 부담률은 다를 수 있으며, 해당 질병으로 인한 합병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물론 비급여 항목(고액 신약, 2인실 이상의 상급 병동 등)이나 100% 본인 부담 항목은 예외다. 그럼에도 의료보험공단이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환자는 비교적 적은 부담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나의 경우 첫 번째 희귀 난치질환인 베체트 치료 도중 산정특례 적용을 받게 되었다. 당시엔 그 의미를 잘 몰랐지만, 병원의 안내에 따라 신청했고, 나중에야 제도의 정확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또 우리나라에는 본인부담상한제라는 제도도 있다.
본인이 부담한 의료비가 일정 상한선을 넘으면 초과 금액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환급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인해 의료비 취약계층이 생기지 않도록 마련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 이런 제도가 없었다면 우리 집은 이미 길거리로 내몰렸을 것이다.

아니, 사실 이미 집 한 채쯤은 말아먹었다는 게 맞는 말이다. 그나마 그런 제도가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치료를 이어 올 수 있었다 생각한다. 그만큼 산정특례와 본인부담상한제는 나와 같은 환자에게 실질적인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산정특례는 해당 질환과 그로 인한 합병증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내가 앓고 있는 수많은 다른 병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두 번째 희귀 난치질환인 CRPS 이후로 생긴 합병증과 부차적으로 겹쳐 온 스무 가지가 넘는 질환들은 여전히 내 힘으로 감당해야 한다. 만성질환을 오래 앓다 보면 면역력이 무너지고, 작은 병들도 고질로 자리 잡아 결국 또 다른 부담이 되어 돌아온다.

게다가 산정특례가 있더라도 2인실 이상의 병실, 고가 신약, 특정 시술은 여전히 비급여 항목이라 100% 본인 부담이다. 특히 신약은 가격이 상상을 초월해, 환자에겐 막대한 경제적 압박으로 다가온다.

보험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 있었다. 갑상선 항진증과 그 합병증인 심장병이 발병한 이후라, 어떤 민간 보험사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의지할 수 있는 건 나라의 국민건강보험뿐이었다. 만약 이 제도의 도움조차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치료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히 딸은 미리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내 간병을 하던 딸아이 역시 힘든 시간들을 견디며 애쓰던 중에

MS(다발성경화증)라는 희귀 난치질환을 얻게 되었다. 약값은 매우 비싸고, 증상에 따라 약의 종류가 달라져 치료비 부담은 엄청났다. 국민건강보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고, 민간 보험이 없었다면 치료를 이어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MS는 흔히 ‘외국인 병’이라 불릴 정도로 아시아에서는 드문 질환이다.(우리나라 전체 환자 수가 2,500명 내외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구화된 생활습관과 극심한 스트레스 탓에 최근 환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딸 역시 뇌 속에 번져 있는 회백색 반점의 분포만 보면 이미 중기를 넘긴 상태였지만, 다행히 증상은 심하지 않아 2021년까지는 자가주사로 치료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팔다리에 마비 증세가 오거나 극심한 두통 후 시야가 흐려지는 재발이 잦았다. 결국 2021년에 다시 검사를 받고 1차 약에서 2차 약으로 변경해 치료를 이어갔다.


문제는 약값이었다. MS는 아직 데이터가 부족해 임상 시험 단계의 신약이 많다 보니, 산정특례를 적용받아도 수백만 원에 달하는 약값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게다가 나 역시 오랜 세월 많은 약들을 복용하면서 구강 건조증으로 임플란트 시술을 여러 차례 받아야 했다. CRPS 특성상 극심한 통증 때문에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병원비와 약값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딸의 치료비와 나의 치료비가 겹쳐 가정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딸은 현재 두 차례 입원과 약제 변경을 거쳐 2차 약을 복용 중이다. 이번 약이 잘 듣는다면 4년간의 휴약기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런데 올해 2차로 고가의 신약을 처방받고 민간 보험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을 때 민간 보험사에서 지급받은 돈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환급해 준 본인부담상한제 환급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뿐이었다. 약관에 명시된 내용이라며 추가 지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약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산정특례와 본인부담상한제 환급금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대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결국 나라에서 의료비 취약 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를 빌미로, 민간 보험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고 있었다.

아프고 힘들 때 도움을 받으려고 들었던 보험이 오히려 뒤통수를 치는 아이러니.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이야기이고, 언제든 병을 얻을 수 있는 당신의 이야기이며, 아직 어리지만 언제 다치고 아플지 모르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병들고 아픈 이들을 짓밟는 민간 보험사들에게, 나는 적절한 제재와 책임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이 챙겨간 이익만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돌려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