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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도카인 부작용

Wash out입원기 2

by 강나루

오전 4시 40분.

처음 시야가 가려졌을 때는 두 눈 모두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장막처럼 눈앞을 가린 막이 걷히고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대로 보이게 되었지만, 이게 결코 ‘괜찮아진 것’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병원에 바로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순간의 나는… 솔직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문제가 생겼음을 간호사에게 즉시 말했어야 했는데,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뒤엉켰다.

주렁주렁 달린 링거줄을 다 떼어내고 당장 퇴원해 버리고 싶다는 충동, 이 모든 상황이 너무 피곤하다는 감정, 만약 병원에 알리면 시작될 각종 검사와 더 길어질 입원 기간에 대한 걱정까지.
그냥…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고 해서 안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 이후 나는 몇 시간 동안 눈을 감지 못했다.
혹시라도 잠시 감았다 뜨는 사이에 또다시 어둠이 찾아올까 봐, 그 두려움이 너무 커서 눈꺼풀을 내리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도 긴장한 상태는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억지로 버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잠시 잠에 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번엔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시야가… 완전히 깜깜해져 있었다.
앞도, 옆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발바닥과 윗입술에서는 찡하고 심하게 조여 오는 듯한 이상한 감각이 함께 찾아왔다.

숨이 턱 막히는 패닉 속에서 허공을 허우적거리다 침대 머리맡의 버튼을 마구 눌렀다. 간호사 호출 버튼이었다. 곧이어 여러 명의 간호사가 우르르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입원하던 날 간호사실에서 체중과 키, 혈압을 재던 중 한 번 실신했던 난 안 그래도 요주의 환자인 상황이었다.

그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거의 비명처럼 소리쳤다.
눈이 안 보여요! 하나도 안 보여요!
지금 맞고 있는 리도카인 당장 멈춰 주세요!
진짜 안 보인다고요... 흐윽...
말을 내뱉는 동시에 울음이 툭, 하고 터졌다.
도저히 담아둘 수 없던 공포가 한순간에 무너져 흘러내렸다.


보호자 없이 병원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새삼 서럽고 외롭다 느껴졌다. 놀란 가슴에 떨리는 몸은 멈출 줄 모르고 울음 역시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마음으로 이렇게 고통뿐인 몸에 눈까지 안 보이면 차라리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런데 눈이 안 보이면... 어떻게 죽어야 하지?

짧은 순간에 너무 많은 생각이 나를 패닉에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맞고 있던 리도카인은 즉시 중지 되었고 당직 중이던 전공의가 찾아왔다. 그는 교수님과 상의했다며 내게 말했다.

몸 말단부의 저림은 리도카인 부작용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시야이상은 리도카인 부작용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서 조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증세가 호전되지 않으면 MRI를 찍어볼까 고려 중이기도 합니다. 일단 리도카인을 씻어내면서 증세가 진정되는지 지켜보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의사의 말을 들었지만,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은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는 현실 앞에 생각을 줄이고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려 했다.


퉁퉁 부운 팔에서 주사라인을 제거하고 다리에서 다시 라인을 잡아 몸 안에 많이 남아 있을 리도카인을 제거해 줄 링거를 맞기 시작했고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건 리도카인을 멈추자마자 몸이 저린 증상은 빠르게 사라졌는 것이다.



흐릿하게나마 다시 보이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약 9시간 뒤인 저녁 무렵이었다. 시야가 아주 조금이라도 돌아왔다는 사실에, 나는 얼마나 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내 한숨이 지구 핵을 뚫고 반대편 나라에 도달하지 않을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만큼, 그리고 조금 나아진 상황에 잠깐이나마 여유를 되찾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그새 농담할 여유가 생겼구나 싶었다.


새벽처럼 여전히 눈앞은 검은 비닐막이 가리고 있었고,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눈가를 따라 검은 잔상이 짙게 남았다.

하지만 이제 보였다.

희미하게나마, 또렷하진 않아도, 세상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눈앞의 막은 점점 옅어졌고, 밤이 깊어갈 즈음엔 눈가에 잔상만 남는 정도로 회복되었다.

살았...

그제야 비로소 마음 깊은 곳에서 그런 말이 조심스레 떠올랐다.




교수님은 MRI를 찍어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고 싶어 하셨다. 또 증세가 호전된 만큼, 하루 동안 중단됐던 리도카인 시술도 재개하며 입원 일정을 더 늘리기를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일주일 동안 병원에 머무르며 산전수전, 아니 공중전까지 겪은 몸과 마음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더는 병실에서 버틸 힘이 없었다.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혹시 다시 시야가 흐려지거나 보이지 않는 일이 생긴다면 바로 응급실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는 그렇게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도 눈가에는 잔상이 남아 있다.
그날의 공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리도카인으로 Wash out을 하며 진통제와 안정제를 줄여도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었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위안이 되었다.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고통으로 얼룩진 이 몸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러니 부디... 제발... 더 이상은 이 길 위에 더 큰 고통과 시련이 놓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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