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혼자 교정을 걷다가 벽보에 붙은 외대 문학상 공모전을 우연히 보게 됐다. 벽보를 멀거니 응시하고 있던 깡마른 대학생. 당당하지 못하고 잔뜩 주눅 들어 있던 스물두 살의 외로운 등이 지금 내 눈에 꼭 보이는 것만 같다. 동기들이 알까 봐 학교 근처 PC방에서 몰래 내 시들을 출력했다. 그때는 온라인 응모라는 것이 없고 직접 출력해 등기로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그게덜컥 입상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던 길, 지하철에서 입상 전화를 받고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난다. 말하자면 전국 단위의 문학 공모전에서 또 유명한 시인님께 인정을 받은 것인데, 그런 사실들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상금 오십만 원. 서울에서 자취하며 단 돈 만원이 귀했던 때라 입상을 한 사실보다 상금이 반가웠다. 나는 얌체처럼 상금만 계좌로 받고 시상식에도 가지 않았다. 김용택 시인님과 신경숙 소설가님을 볼 수 있었던 그 귀한 자리를, 누군가는 간절히 소원했을 그 자리를,
단지 부끄러워서 가지 않았다.
마땅히 입을 옷이 없어서, 낯선 대학 강당에 엉거주춤 앉아서 얼뜨기 표정을 하고 있을 내가 싫어서, 내 시가 부끄러워서. 그 부끄러웠던 나의 청춘, 나 스스로가 얼마나 빛나는 존재였는지 몰랐기 때문에,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참 어둡고 못났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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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약간은 평이하나, 시로서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사물과 세상에 대한 겸손함이 몸에 밴듯하여 이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을 따사롭게 쓰다듬어 준다. 여러 가지 큰 장점들을 지닌 시임에 틀림없다. 이 시를 쓴 분은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월드컵으로 세상이 온통 시끄러웠고, 기숙사에 남아있는 건 나뿐이었다. 시상식은 안 갔으면서도 기숙사 침대에 처박혀 책이 닳도록 심사평을 읽었다. 어릴 때부터 늘 숨기고 싶었던 나의 어두움과 세상과의 불화, 나의 결핍,벗어던지고 싶은 못난 내면이 시인의 눈에는 ‘겸손함’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저 혼자 울고 아파하는 내 시가 따사롭다니. 믿고 싶었지만, 믿기지 않았다.
이십 년을 돌아 다시 시가 쓰고 싶어 졌을 때 빛바랜 책을 들춰보았다. 그제야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잊고 살았던 스물두 살의 고독한 청춘이 생각났다. 어쩌면 시인님은 이야기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절망했던 사람만이 타인의 절망을 이해할 수 있고, 고통에 빠져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의 내 시는 아직 어설프고 부족했지만 언젠가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해 주신 것은 세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라는 가장 귀한 조언이었다. 너는 바닥까지 외로워 봤으니 외로운 사람을 안아줄 수 있을 거야…….
아래는 시인님의 전체 심사평 마지막 부분인데, 당시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내용이다. 지금의 내가 쓰고 싶은, '시'에 대해 가지는 모든 감정이 응축되어 있다. 꼭 나를 위해 덧붙여놓은 것만 같다.
시는 우주의 일이다. 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기도이며, 사랑이며, 자유다. 사람들로부터 멀어진다고 서러워할 일이 아니다. 이럴 때, 시인은 탄생한다.
정말 시인이 된다면, 시인님을 꼭 한 번만 뵙고 싶다. 이십 년 전 부끄러워 시상식에도 못 간 못난 청춘이 시인님의 예언대로, 결국에는 시인이 되었다고. 감사하다고 큰 절을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