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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 Jun 11. 2024

아키타에서의 마지막 날

2024.02.04.

 아침에 우리는 ‘지구 끝의 온실’에 와 있었다. 물론 진짜 온실은 아니고 ‘적거문고(赤居文庫)’라는 이름의 카페다. 밖에서 건물 외관만 봤을 때는 너무 오래되고 허름해 보여서 과연 맞게 찾아온 건지 약간 수상쩍기까지 했다.

 하지만 망설이기에는 날이 너무 추웠다. 우리는 휘몰아치는 눈발을 헤치고 카페로 들어갔다. 과연 반전이 있었다. 카페 안은 널찍했고, 바닥 타일과 테이블, 한쪽 벽면에 들어선 책장 모두가 원목으로 돼 있어 전체적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기에 하나같이 앳된 얼굴을 한 직원들이 공장 작업복 콘셉트으로 유니폼을 차려 입은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꽤나 이질적인 조합인데도 어색한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흥미로웠다.

  가게 안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메뉴판을 확인하고 모닝 세트를 주문했다. 상큼한 딸기잼을 곁들인 토스트와 달걀프라이, 요거트, 그리고 따듯한 아메리카노로 구성돼 있었다. 커피잔 받침 위에, 웃고 있는 해 그림과 함께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적힌 메모지가 딸려 나왔다.

 나는 먼저 토스트에 딸기잼을 발라 한입 베어 물고서 커피를 마셨다. 바삭하면서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 몸이 따듯하게 데워지는 기분이었다.

 “아깝다. 여길 여행 마지막 날에 오게 되다니.”

 “그치? 진즉에 알았으면 분명히 책 한권 챙겨가지고 저녁 때 한번 더 왔을 것 같아.”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얹었다. 저녁 시간대에는 칵테일도 몇 종류 곁들여 파는 모양이었다.

 손님들 대부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닝 세트를 먹고 있었다. 더러 혼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일요일 아침과 잘 어울리는 여유로운 풍경이었다. 우리도 게으른 고양이처럼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카페를 나와서 두 번째 목적지는 ‘아키타견 스테이션’이었다. 아키타역에 도착한 첫날, 역사에서 큼지막한 인형으로 아키타견을 마주했던 순간부터 꼭 가봐야지 싶었던 장소였다. 정해진 요일과 시간대에 맞춰서 가면 아키타견을 볼 수 있었지만, 개의 컨디션에 따라서 예외가 발생하기도 했다. 바로 며칠 전 우리의 상황이 그랬다. 개가 아파서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만날 수 있으려나? 남편도 나도 개를 좋아해서 은근히 기대가 컸다.

 우리는 11시가 조금 못 되어 아키타견 스테이션 앞에 이르렀다. 유리벽 바깥으로 아이를 데려온 부모와 관광객 몇 명이 서 있었다. 이윽고 정시가 되자 유리벽 안쪽에서 회색 털이 섞인 아키타견 한 마리가 센터 직원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와! 내 앞에서 양갈래로 머리를 묶은 꼬마가 환호성을 터뜨렸다. 개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때까지 십여분 가량을 머물렀다가 자리를 떠났다. 잠깐 동안 주어진 일을 한 것이다. 개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과 돌봄을 받기 위해서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는 개. 갑자기 생각이 먼 데로 튀었다. 모든 존재는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서로의 존재를 고맙게 여기고 노력해서 아껴줘야 한다.

 

 아키타견 스테이션에 있는 기념품숍에 들려 클리어 파일 두 개를 샀다. 다음으로 바로 옆에 현립 미술관이 붙어 있어 지체 없이 이동하기로 했다. 회백색 콘크리트로 지어진 외관이 눈에 익숙하게 들어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이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은 오래 전에 시코쿠 나오시마에 있는 베네세 하우스를 통해 처음 접했다. 이후에 한국에서 강원도의 뮤지엄 산과 제주도의 본태 박물관에도 가 보았는데, 건축물의 구조가 모두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키타 현립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은 단연 후지타 쓰구하루의 ‘아키타의 행사’이다. 길이가 20미터나 되는 벽화로 전시실 입구에서부터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아키타의 사계절과 축제 장면, 문화적 특색이 정교한 필치로 화폭에 담겨 있어 쉽게 시선을 떼기 어려울 정도였다. 미술관의 방침 상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게 무척 아쉬웠다. 굳이 금지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일본은 꽤나 보수적’이라는 고정관념이 한층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전시를 관람한 뒤에 미술관 카페에 잠시 머물렀다가 밖으로 나왔다.

현립 미술관 카페

 마지막 코스로 ‘무겐도’라는 우동 전문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시코쿠에 사누키 우동이 있다면, 이곳 아키타에는 이나니와 우동이 있었다. 사누키 우동과 상반되는 얇고 부드러운 면발이 특색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우동만으로 배를 채우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한 감이 있어서 아키타 지역의 향토 음식으로 알려진 기리탄포-밥알을 으깨 가래떡처럼 뭉친 형태다-를 추가했다. 입에 넣었을 때 단맛이 돌긴 했지만 내 입맛엔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하이볼과는 궁합이 제법 좋은 편이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다시 도쿄로 돌아가서 이틀밤을 보낸 뒤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 첫 문장의 ‘지구 끝의 온실’은 김초엽 작가의 장편소설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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