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취향
알록달록 기억이야기 20240404
과일가게 안이 알록달록 예쁜 색깔들로 화사하다.
오늘의 메인 컬러는 오렌지빛이라고 해야겠다.
오렌지, 천혜향, 한라봉이 주를 이루고 아직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는 딸기, 사과와 배, 초록과 보랏빛의 포도,
노란 망고, 붉은빛 애플 망고 등등 밝고 고운 빛깔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과일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딱히 나의 기호는 없다.
겨울의 딸기와 한 여름 더울 때 갈증을 풀어주는 수박 정도 아니고선 그냥 제철에 나오는 과일이면 초록사과 상큼해 보이네 딱딱한 복숭아가 나왔구나, 단감철이구나 한다.
누군가 썰어서 딱 내 앞에 놓아주면 먹겠지만
내가 먹겠다고 과일을 사는 일도 내가 먹겠다고 과일을 씻고 깎는 일도 거의 없다.
주말 아버님 생신에 드릴 과일을 고른다.
기호가 있으면 취향이 있을 테고 취향이 있으면
과일을 고르는 안목도 있을 텐데
특별한 취향도 보는 눈도 없으니 사장님의 의견을 따른다.
요즘은 뭐가 맛있어요?
어른들이 좋아하시는 걸로 추천해 주세요.
내가 열심히 고르지 않는 것이 조금 성의 없나 하는 생각이 들어 유심히 살펴보기로 한다.
아버님은 사과를 좋아하시고 망고도 좋아하시지.
근데 애플망고가 나을까 그냥 망고가 나은가.
내가 선호하는 건 없지만
가족들이 좋아하고 잘 먹는 과일은 머릿속에 있어서
그 과일들은 어느 정도 고르게 되었다.
엄마가 되었기에 아이들을 위해서 바뀌었을 뿐이고
내가 챙겨야 할 사람들이 생겨서이다.
갓 나오기 시작할 때가 딸기는 제일 맛있지.
딸기는 온 가족이 좋아하니 빨간 딸기만 보면 사다 나르기 바쁘다.
한 입 깨물면 주스만큼 과즙이 시원한 귤은
까서 입안에 넣어주면 없어지고 넣어주면 없어지니 까고 나면 손끝이 노래진다.
사각사각 사과는 우리 둘째가 좋아하니 담고
종종 간식으로도 좋지만 혈압을 낮추는데 좋다니 남편 생각에 바나나도 산다.
보랏빛 블루베리는 씻어다가 요거트에 넣어주면 냠냠 잘 먹지.
달달하고 소화에도 좋은 배는 울 아빠 생각이 나고
엄마가 좋아하는 단감은 보기만 하면 울 엄마 생각이 절로 나서 눈이 가고
엄마가 때문에 좋아하는지 달아서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임신에 좋다니 많이 먹었던 노오란 참외는 첫째 생각에 손길이 간다.
참외는 싫어해도 초록멜론은 잘 먹는 아들 생각에 발길이 멈춘다.
엄마가 손녀 좋아하는 청포도 사 오랬더니
마트 몇 곳을 돌고 돌아 결국 찾아낸 곳에서, 청포도에만 꽂혀 색깔이 초록색이라며 사 오신 샤인머스캣.
우리도 그런 이름이 있나 몰랐을 만큼 그 품종이 갓 나왔을 때다. 두 송이 4만 원인가에 깜짝 놀라도 취소도 못하고 사 온 아빠를 놀리며 달디 단 맛을 즐겼던 샤인머스캣.
여름날 갈증 나면 꼭 수박을 반으로 잘라 숟가락으로 퍼먹고 싶다고 하는 딸내미의 성화에 넷이서 숟가락으로 퍼서 먹지만 결국 다 먹은 적은 없는 반통수박.
남편이 포도주스를 좋아하기에 휴롬에다 몇 송이를 넣고 즙을 내도 반컵 밖에 안되네 하며 건넨 포도즙.
마시고 내내 속이 쓰려하던 신혼의 기억이 담긴 보랏빛 포도.
아기 때 대봉감의 껍질을 벗겨 숟가락으로 줬더니 하트눈으로 먹던 손녀를 기억하고
가을마다 일부러 사서 보내주시는 시아버지의 대봉감.
하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으니 까먹고 익혀서 먹으려 보면 상하니 마음도 상해 택배 오면 나눔부터 하는 대봉감.
털 있는 과일은 만지기 싫다 하시는 시어머니께 깎아 내드리면 맛있게 드시는 키위와 복숭아.
어떤 과일을 담아볼까.
알록달록 빛깔 과일가게에서
알로록달로록한 기억들을 꺼내본다.
부모님의 입에서 단 과일들이 살살 녹아들길 바라며 하나하나 고른다.
"사장님, 요걸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