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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복이야 Mar 18. 2024

이런 낭패가 있나

변명과 다짐 그 언저리 - 20240318       

11시 58분.

아.. 이제 남은 시간은 2분!!

매일 브런치 글을 연재하기로 스스로 약속하고 지키고 있었다.

77일 동안 하루도 어기지 않고 해내고 있었는데.

말 그대로 힘을 짜내며 해내고 있었는데.

안된다, 이러면 안 된다. 곰도 백일을 견뎌 지 꿈을 이뤘는데.

안된다, 이러면 안 된다. 365일이 목표인데.

마음은 급하고 맞춤법 검사도 해봐야 하고 대문 사진은 마음에 안 드는데 이를 어쩐다.

이제 11시 59분.

어!! 안되는데.. 설마.. 어.. 에라 모르겠다.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도 모르게 온 얼굴이 찡그려졌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민망하다.

12시 00분.

이런 낭패가 있나....



'벼락치기인생'

어려서부터 시험공부는 늘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시작했다.

어떤 때는 불이 떨어져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가 시작한다.

그러고는 뒤늦게 불붙어 아쉬운 마음이 커지면 다음에는 꼭 미리 해야지 다짐한다.

그렇지만  늘 비슷한 상황과 똑같은 다짐뿐.

나의 MBTI는 게으름의 상징 ISFP.

소파와 한 몸이면 너무 편안하고 

약속이 취소되면 나름 안도감에 행복해하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있는 걸 심하게 좋아한다.

요즘 종종 보이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 정말 반가웠다.

이거 모두 내 기인데, 누가 이런 대단한 생각을 해낸 것인가.

그래 나는 게으른 것이 아니라 완벽주의자였어.

그냥 시작하기까지가 힘든 것뿐이야.

나는 아직 완벽한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하지 않은 것이고

더 잘할 수 있는 능력과 최적의 기회가 오지 않았기에 시작하지 않은 것뿐.

남들에게 번듯하게 보이지 못한다면 아예 시도조차 않을 것이야.

생각이 많아서 결정을 못하고 있을 뿐이야.

나의 게으름을 설명할 그럴싸하고 멋진 말들이 생겼다.

보통 하다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냥 그만둬 버린다.

그렇게 나에겐 첫 페이지만 화려한 노트가 수두룩 했다.



글을 써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해보지 않은 글쓰기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것 투성이었다.

거기다 생활은 늘 큰 변화가 없었으므로 내 속에서 꺼낼 것도 없다 싶었다.

그날의 나의 느낌을, 매일의 생각을 풀어놓고 싶어 미리 쓰지도 않았다.

하기사 미리 쓸 여력도 능력도 사실 없기도 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듯  글을 올렸다.

말들이 넘쳐나는 날들은 간혹이었고 대부분은 식탁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너무 유치한 말들을 올리고 혼자 진저리를 칠 때도 있었고

때때로 이런 말이 내 속에서 나왔어? 라며 보고 또 보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아직 어린아이를 키우는 나이 든 여자에게  일과를 끝낸 10시 이후의 시간은 체력이 남아 있지를 않았다.

어떤 날 나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11시가 다 돼야 잠들면  없는 체력과 약한 정신력은 한계에 다다라 짜증만 남은 모습으로 앉았다. 노트와 펜을 들고.

그래도 신기하게 앉아 있다가 아이가 툭 던진 한마디에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예전 사진을 보다가도 갑자기 이야기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랜덤 장난감 기계를 돌리고 무엇이 나올까 기대하는 것처럼

쓰다 보니 매일 나오는 이야기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생기는 이야기들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내 글이 17일 자가 아니라 18일 자로 등록이 되면서 3월 17일은 비어버렸다.

그것이 못내 속상하기도 하고 뭔가 흠집이 생긴 듯 마음이 불편하다.

어제의 마음이었다면 그만둬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민낯을 보이는 듯한 민망함을 꾹 누르고

글을 올린다.

이것 또한 내가 해보지 않은 일중 하나가 되리라.

의존적이고 순종적이던,

그래서 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던 내 삶을  

내가 살아내고 싶어 마음을 변화시키고 있다.

마흔여덟 내 나이에, 꼭 사춘기 아이의 겉멋 든 말 같아

좀 머쓱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의 진심이고 간절함이 있기에

낯간지럽고 부끄럽고 숨이 차고 답답해도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그만두지 않으려 한다.

길고 긴 변명과 다짐의 마음을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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