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스쳐 가는 사람들, 머무는 사람들
겨울밤, 계동리의 문이 열릴 때마다 찬 공기가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하지만 가게 안은 여전히 따뜻했다. 바 뒤에서 주인장은 커피머신을 조용히 작동시키며 잔을 닦고 있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춥네요.”
코트를 여미며 들어온 사람은 최소현이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창가 자리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 그녀의 작은 루틴이었다.
“오늘도 커피 드릴까요?”
주인장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네, 따뜻한 걸로요.”
그녀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기타를 둘러멘 김민석이었다.
그는 익숙한 듯 가게 안을 둘러보고는 바에 기대어 앉았다.
“오늘은 안에서 부를까요?”
그가 주인장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면 부탁할게요.”
주인장은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김민석은 기타를 가볍게 튕기더니, 계동리의 조용한 밤을 음악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공간을 부드럽게 감싸며 흐르고 있었다.
최소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커피잔을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문득 며칠 전, 자신이 그에게 건넨 쿠키와 명함을 떠올렸다.
그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녀는 문득 시선을 돌려, 김민석이 기타를 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김민석과 그녀의 시선이 짧게 마주쳤다.
그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그녀는 놀란 듯 잠시 시선을 피했지만,
어느새 그 미소가 자신에게 남긴 여운이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이번엔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중년 남성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젊은 청년이었다.
둘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서로에게 익숙한 듯했다.
“여기 앉을까?”
중년 남성이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말했다. 젊은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장은 바 뒤에서 그들을 살펴보다가 조용히 다가갔다.
“무엇을 드릴까요?”
“따뜻한 차 두 잔 부탁드립니다.”
중년 남성이 대답했다.
차가 나오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조용히 대화가 시작되었다.
“오랜만이네.”
“그러네요, 아버지.”
순간, 계동리의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주인장은 자연스럽게 히터 방향을 조정하며, 그들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물러났다.
“이제라도 이렇게 같이 술 한 잔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차를 시키셨잖아요.”
“그렇지.”
짧은 침묵이 흐르다가, 중년 남성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넌 여전히 나한테 마음이 안 풀렸겠지.”
젊은 남자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아버지가 너무 늦게 오셨잖아요.”
그 한마디에, 중년 남성의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계동리의 작은 테이블 위에서, 오래된 감정들이 조용히 풀리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차가 식어갈 때까지, 그렇게 대화를 나누었다.
한편, 바 옆에서는 방송국 PD 이희재가 조용히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잔을 기울이며, 주인장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런 순간들이 참 많네요.”
“어떤 순간들이요?”
“오래 묵혀둔 이야기들이 풀리는 순간들.”
주인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계동리는 그런 곳이니까요.”
이희재는 다시 잔을 기울이며 작게 웃었다.
“그 다큐멘터리, 더 찍고 싶어졌어요.”
그 말에, 주인장은 아무 말 없이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계동리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