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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계동길

12화 조용한 위로, 따뜻한 한 모금

by 나바드


늦겨울의 공기가 계동리의 유리창을 살짝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밖에서는 찬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가게 안은 따뜻한 조명과 커피 향으로 가득했다.

작은 원목 테이블 위에는 잔이 하나둘 채워지고 있었고, 손님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주인장은 여느 때처럼 바 뒤에서 잔을 닦으며,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조용한 미소를 보냈다.


1. 취업 준비생과 자영업자의 밤


문이 열리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코트를 벗어 걸고 자연스럽게 창가 자리에 앉았다. 계동리를 자주 찾는 손님 중 하나인 취업 준비생 강도윤이었다.


그는 조용히 메뉴판을 들춰보다가 주인장에게 말했다.


“오늘은… 따뜻한 차 한 잔 부탁드려요.”


그의 말에, 주인장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기운이 없어 보이네요. 힘든 하루였어요?”


도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서류 탈락 메일을 오늘만 세 통 받았어요. 그야말로 하루 종일 좌절 모드였습니다.”


그의 말에,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가구 공방을 운영하는 전지운이었다.


“취업 준비하시는구나.”


그녀가 말을 건네자, 도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계속 도전 중이긴 한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네요.”


전지운은 와인잔을 손에 들고 가볍게 흔들었다.


“저도 예전에 대기업 다니다가 나와서 창업했어요. 처음엔 막막했죠.”


“근데 어떻게 버텨내셨어요?”


그녀는 천천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걸 계속 붙들고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아볼지 고민했어요. 하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걸 선택했죠.”


그녀는 자신의 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지금 이 손으로 가구를 만들면서, 매일 후회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게 남아 있다는 게 좋아요.”


도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요…”


그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2. 머무는 손님, 그리고 ‘계동리 사람들’ 노트


그때, 문이 또 열렸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 명은 정년을 앞둔 가장, 다른 한 명은 그의 오랜 친구였다.


그들은 나란히 앉아 맥주를 한 잔씩 시켰다.


“벌써 정년이라니, 실감이 안 나네.”


한 남자가 잔을 들며 말했다.


“그러게. 우리는 아직 서른 살 같은데.”


두 사람은 피식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그들은 오랜 친구였다. 하지만, 이렇게 단둘이 앉아 술을 마시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가만히 바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두툼한 노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계동리 사람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노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에는 익명의 손님들이 적어둔 글들이 빼곡했다.


“여기서 마시는 위스키 한 잔이, 내일을 버티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술을 마셨다. 대화는 서툴렀지만, 이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는 잠시 글을 읽다가, 조용히 펜을 들어 노트에 한 줄을 적었다.


“살면서 내가 남긴 흔적이 몇 개나 될까. 오늘 이곳에서 한 잔을 마시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노트를 원래 자리에 조심스럽게 두었다.


주인장은 말없이 그들의 잔을 다시 채웠다.


“계동리는, 그런 공간이에요.”


그가 조용히 말했다.


3. 김민석의 노래, 그리고 작은 변화


잠시 후, 기타를 멘 김민석이 들어왔다.


그는 바 한쪽에 앉아 주인장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뭘 마실까요?”


“오늘은… 커피 한 잔 주세요.”


그의 말에, 주인장은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왠지 오늘은 술보다 커피가 땡겨서요.”


그는 피식 웃으며 기타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계동리의 공기 속에서, 가만히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밤을 건너고 있는지도 몰라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살면서”


노래가 흐르는 동안, 손님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최소현이 조용히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시켰다.


김민석의 노래를 들으며, 그녀는 살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조용히 작은 종이 한 장을 남겼다.


“노래 잘 들었어요.”


그는 그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상하게, 그녀의 글씨체가 낯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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