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종로구 계동길

14화: 지나가는 사람들, 머무는 마음들

by 나바드

늦겨울, 계동리의 조명은 여전히 따뜻했다.

창밖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가게 안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나무 테이블 위에는 손님들이 남긴 흔적이 쌓여가고 있었다.


오늘도 누군가는 이곳에서 위로를 받고, 누군가는 흔적을 남길 것이다.


주인장은 바 뒤에서 조용히 잔을 닦으며, 오늘의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 스쳐 가는 손님, 그리고 낯선 대화


문이 열렸다.


처음 보는 손님이었다.


그는 두꺼운 코트를 벗으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주인장이 다가갔다.


“무엇을 드릴까요?”


그는 가만히 메뉴판을 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따뜻한 위스키 한 잔 주세요.”


주인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위스키를 준비했다.


그때, 다른 테이블에서 한 여성이 손을 들었다.

가구 공방을 운영하는 전지운이었다.


“사장님, 오늘 와인 한 잔만 주세요.”


그녀는 스케치북을 꺼내 들고 조용히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는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의 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유난히 피곤해 보였다.


“힘든 하루였나 봐요.”


지운이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 그런가 보네요.”


그는 가볍게 잔을 기울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하루 종일 거래처를 돌아다녔어요.

결국, 아무 소득도 없이.”


그의 말에 지운은 피식 웃었다.


“저도 가구 디자인할 때 그래요.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으면, 하루 종일 고민만 하다가 그냥 허무하게 끝나버리죠.”


그는 조용히 그녀의 스케치북을 바라보았다.


“뭐 그리고 계세요?”


지운은 가볍게 웃으며 스케치북을 살짝 돌려 보였다.


거기에는 계동리의 전경이 연필로 그려지고 있었다.


“이 공간을 좋아해서요.”


남자는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 저도요.”


그들은 조용히 잔을 부딪쳤다.


이곳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도, 낯설지 않았다.


2. 건축가와 싱어송라이터, 서서히 가까워지는 두 사람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최소현이 들어왔다.

늘 그렇듯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잠시 후, 문이 또 한 번 열렸다.


이번에는 기타를 멘 김민석이었다.


그는 주인장을 향해 가볍게 인사하며, 바 한쪽에 앉아 기타를 조용히 튕겼다.


그들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최소현은 피식 웃으며, 테이블 위에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조용히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는 테이블 위에 메모를 한 장 올려두었다.


“오늘도 노래 들을 수 있을까요?”


김민석은 그것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너와 나, 지나가는 바람이 될까

아니면 여기, 오래 남을 이야기일까”


그의 목소리가 계동리의 밤을 채웠다.


최소현은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그 노래를 들었다.


오늘은, 어쩌면 오래 기억될 밤이 될지도 몰랐다.



3. ‘계동리 사람들’ 노트에 남겨진 글


바 한쪽에 비치된 노트,

‘계동리 사람들’


한 남자가 그 노트를 조용히 펼쳤다.


그는 천천히 손끝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누군가가 남긴 글을 읽었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조용히 펜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한 줄을 남겼다.


“다음에 또 이곳을 찾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밤, 나는 여기 있었다.”


그는 조용히 노트를 덮고, 잔을 기울였다.


계동리는, 그렇게 또 하나의 흔적을 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