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종로구 계동길

15화: 마음이 머무는 공간

by 나바드

겨울밤, 계동리의 창문에는 노란 조명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밖에서는 찬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가게 안은 언제나처럼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나무테이블 위에는 손님들이 남긴 흔적이 쌓여가고 있었다.


오늘도 누군가는 이곳에서 위로를 받고, 누군가는 흔적을 남길 것이다.


주인장은 바 뒤에서 조용히 잔을 닦으며 오늘의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 H건설사 직원들의 한숨, 그리고 위로의 한 잔


문이 열리자, H건설사의 오경식, 최준혁, 최소진이 들어왔다. 그들은 피곤한 얼굴로 테이블에 앉더니, 가방을 툭 내려놓았다.


“오늘 하루… 정말 길었어요.”


최소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도 야근?”


주인장이 묻자, 경식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야근이 아니면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모일 수 있겠어요?”


그는 넥타이를 살짝 풀고,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주인장은 말없이 차가운 맥주잔을 그들 앞에 놓았다.


“오늘은 무슨 일로 그렇게 힘들었어요?”


최준혁이 가볍게 잔을 들며 말했다.


“보고서가 엉망이었어요. 클라이언트한테 한참 혼났죠.”


“그리고, 설계 변경이 또 들어왔어요.”


최소진이 덧붙였다.


그들은 가볍게 잔을 부딪치며,

지친 하루를 털어냈다.


그 순간,

주인장이 조용히 작은 접시를 그들 앞에 놓았다.


따뜻한 견과류 한 줌과 크래커.


“힘든 날에는, 단 게 좀 필요하잖아요.”


그들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이곳에서는 작은 위로조차, 의미가 있었다.



2. 취업 준비생과 방송국 PD의 대화


그때, 다른 쪽 테이블에서 취업 준비생 강도윤이 조용히 노트를 펼치고 있었다.


그는 오늘도 이력서를 검토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이희재 PD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요즘 취업 준비 어때요?”


도윤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쉽지 않아요.

서류 합격해도, 면접 가면 다 떨어지고요.”


그의 말에 희재는 조용히 잔을 흔들었다.


“나도 취업할 때 생각해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미래가 불안했던 것 같아요.”


도윤은 의아한 듯 물었다.


“방송국 PD가 되는 것도 힘들었나요?”


희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방송국은 오히려 들어오고 나서가 더 힘들죠.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재미없으면 바로 폐지되니까.”


그는 조용히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말이죠.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찾으면, 그 과정이 조금은 덜 힘들어져요.”


도윤은 그 말을 조용히 곱씹으며,

노트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3. 김민석과 최소현, 조용한 대화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최소현이 들어왔다.


그녀는 늘 그렇듯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바 한쪽에 앉아있던 김민석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기타를 조용히 내려놓고,

그녀를 향해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녀도 작은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도 노래할 건가요?”


그녀가 먼저 물었다.


김민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타를 다시 들었다.


“네. 근데 오늘은 조금 다른 곡을 해볼까 해요.”


그는 조용히 기타를 튕기며,

새로운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밤을 건너고 있는 걸까

같은 공간에서, 같은 기억을 쌓아가는 걸까”


그녀는 조용히 그 노래를 들으며,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그의 기타 옆에 조용히 작은 종이 한 장을 남겼다.


“오늘 노래, 좋았어요.”


김민석은 그것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4. 계동리 사람들, 그리고 작은 흔적들


주인장은 바 뒤에서 조용히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각자의 이유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

지친 직장인, 취업 준비생, 그리고 서로를 알아가는 사람들.


그는 조용히 ‘계동리 사람들’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 남긴 글을 발견했다.


“이곳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는 가만히 미소 지으며, 노트를 덮었다.


오늘도, 계동리의 밤은 따뜻하게 흐르고 있었다.

keyword